살짝 고개 든 도도한 김여정… 김영남이 ‘상석 앉으라’ 권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10일 03시 00분


[평창올림픽]김여정 방남… 2박 3일 남한 일정 시작

김씨 일가 68년만에 남쪽 땅 밟아 북한 김일성 일가로는 68년 만에 처음으로 남쪽 땅을 밟은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9일 인천국제공항에서 KTX 공항역을 향해 걷고 있다. 검정 코트 차림에 옅은 화장으로 수수한 
모습을 선보인 김여정은 귀걸이나 목걸이 등 액세서리를 하지 않은 대신 머리를 곱게 빗어 꽃핀으로 묶었고(왼쪽 위 사진), 손목시계를 
찼다(왼쪽 아래 사진). 김여정의 체구와 피부, 얼굴선 등이 김정은과 그의 생모인 김정일의 셋째 부인 고용희(오른쪽 사진 얼굴)의 
20대 때 모습을 쏙 빼닮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인천=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뉴스1·뉴시스
김씨 일가 68년만에 남쪽 땅 밟아 북한 김일성 일가로는 68년 만에 처음으로 남쪽 땅을 밟은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9일 인천국제공항에서 KTX 공항역을 향해 걷고 있다. 검정 코트 차림에 옅은 화장으로 수수한 모습을 선보인 김여정은 귀걸이나 목걸이 등 액세서리를 하지 않은 대신 머리를 곱게 빗어 꽃핀으로 묶었고(왼쪽 위 사진), 손목시계를 찼다(왼쪽 아래 사진). 김여정의 체구와 피부, 얼굴선 등이 김정은과 그의 생모인 김정일의 셋째 부인 고용희(오른쪽 사진 얼굴)의 20대 때 모습을 쏙 빼닮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인천=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뉴스1·뉴시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31)이 9일 평창 겨울올림픽 개회식에 참가하는 북한 고위급 대표단 일행으로 한국 땅을 밟았다. 6·25전쟁 이후 김일성 일가의 첫 방남이다. 전날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건군절 열병식에서 연설 중인 오빠 뒤에 나타났다가 황급히 기둥 뒤로 숨었던 김여정은 하루 뒤 한국에 와서는 고개를 살짝 치켜든 도도한 모습으로 일관했다.

○ “실세 단장은 나”

9일 오후 1시 47분 김정은의 전용기인 ‘참매 1호’가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편명은 ‘PRK-615’. ‘PRK’는 북한을 의미하며, ‘615’는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1차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던 6월 15일을 뜻한다는 해석도 나왔다.

도착 10여 분 뒤 공항 VIP접견실에 가장 먼저 들어온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멈춰서 문 쪽을 뒤돌아보며 잠시 초조한 모습을 보였다. 이어 김여정이 들어온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웃으며 방향을 돌려 소파로 향했다.

착석할 때도 비슷한 모습이 나왔다. 김영남이 김여정에게 상석에 앉으라고 손짓을 하자 김여정이 환하게 웃으며 ‘사양’하는 손짓을 한 것. 결국 잠시 승강이 끝에 김영남이 그자리에 앉았다. 김여정은 김일성의 피를 직접 이어받고 북한의 고위 관료들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김정은의 최측근. 김영남이 북한 헌법상 ‘국가수반’이지만 북한 체제에 비춰 볼 때 김여정이 양보하는 것은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라는 분석이다. 일각에선 외국에서 오래 생활한 김여정이 과거 북한 권력자들과 다른 유연한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영접을 나온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귀한 손님들이 오신다고 하니까 날씨도 거기 맞춰서 이렇게 따뜻하게 변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김영남 위원장은 “우리 동양 예의지국으로서 알려져 있는 그런 나라임을, 이것도 우리 민족의 긍지의 하나라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김여정은 시종일관 고개를 살짝 든 도도한 모습이었다. 조 장관을 보며 살짝 눈을 흘기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 엷은 화장에 별 액세서리 없어

김여정의 모습은 수수한 편이었다. 칼라와 소매에 모피가 달린 검은색 롱코트 차림이었다. 머리는 별다른 액세서리 없이 꽃핀으로 단정하게 묶었고, 옅은 화장으로 공개석상에 나타났다. 어깨에 멘 체인백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검은색 가방이었다.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이 명품으로 추정되는 가방을 연달아 선보이며 화려함을 과시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모습이 베일에 싸여 있던 김여정은 2011년 12월 아버지 김정일의 영결식 때 처음 모습을 드러낸 이후 오빠를 수행하는 장면이 여러 번 목격됐다. 하나같이 검은색 투피스나 짙은 회색 점퍼 등 디자인이 단순하면서도 짙은 색 계열의 옷들을 즐겼다. 예술인 출신으로 패션 감각을 뽐내는 올케 리설주와도 패션 취향이 거리가 있는 것이다. 다만 다소 아담한 체격의 김여정이 이번 방문에서는 북한에서 신었던 것보다 높은 굽의 구두를 신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 ‘김정은 친위대’의 경호

4명이 밀착경호 9일 오후 북한 고위급대표단 자격으로 방남한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철통경호’를 받으며 평창 겨울올림픽 개회식 참석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평창=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4명이 밀착경호 9일 오후 북한 고위급대표단 자격으로 방남한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철통경호’를 받으며 평창 겨울올림픽 개회식 참석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평창=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김여정이 이동할 때는 철벽 경호가 따라붙었다. 인천공항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올 때 장신인 북측 경호원 4명이 앞뒤좌우를 에워싼 통에 김여정은 눈만 겨우 보일 정도였다. 검은색 양복과 선글라스, 푸른색 넥타이 차림에 귀에 무전기 리시버를 꽂은 북측 경호원은 상대적으로 나이가 있어 보이는 팀장 격이 앞에 서고 나머지 짧은 머리의 건장한 청년 3명이 ‘역삼각형’으로 김여정을 둘러싸며 이동했다. 양복 상의에 동일한 배지를 단 이들은 김정은을 비롯한 김 씨 일가에 대한 근접경호를 담당하는 호위사령부 소속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 때 찾은 황병서 총정치국장 경호에 2명이 투입된 것을 감안하면 이번엔 최소 두 배 이상으로 경호가 강화된 셈이다.

김여정의 최근접 경호는 북측 요원들이 맡고, 청와대 경호처 요원들이 좀 떨어진 거리에서 이중의 경호를 펼쳤다. 사실상 국가 정상 수준의 경호가 벌어진 것. 김여정 일행 주변 지역은 휴대전화와 카메라 영상 전송용 장비 등의 통신이 일시 먹통이 되기도 했다. 김여정 등 북측 대표단에는 제네시스(EQ 900) 4륜 구동 차량이 제공됐다. 이 차량에는 방탄 기능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어머니 고용희 쏙 빼닮아

김여정의 모습은 그동안 북한 매체가 편집해 공개하는 짧은 영상이나 해상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사진을 통해서만 대외에 공개됐다. 이날 제대로 얼굴이 공개된 김여정의 모습은 생모인 고용희의 젊은 시절을 쏙 빼닮았다는 평가들이 나온다.

김여정과 두 오빠인 정철 정은의 생모인 고용희는 김정일의 셋째 부인이다. 1953년 일본 오사카 인근에서 태어난 재일교포 무용수였고 1971년 북한 만수대예술단에서 활동하다가 김정일의 눈에 들었다. 하얀 피부에 비교적 아담한 체구, 갸름한 얼굴선과 비교적 수수한 인상 등 고용희의 20대 때 활동 모습이 이날 김여정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다. 고용희는 1990년대 후반 유선암 수술을 받았지만 완쾌되지 못하고 앓다가 2004년 결국 사망했다.

○ 극도로 말 아낀 김여정

김여정은 언론 등 대외에 노출된 장소에서는 말을 극도로 아꼈다. 인천공항 접견실에서 조명균 장관과 김영남 위원장이 인사말을 하며 분위기를 띄울 때도 입을 꾹 다물고 엷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인천을 출발한 지 2시간 10분 만인 오후 4시 47분 김여정 등 북측 대표단을 태운 KTX가 진부역에 도착했다. 북측 사진기자가 먼저 열차에서 내린 뒤 이어 하차하는 김여정의 모습을 담기도 했다. 이 기자는 수시로 김여정에게 근접해 사진을 찍었다. 북측 기자는 개회식에서 김여정과 김영남이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나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함께 있는 장면을 다수 촬영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사진을 대내외에 보내 ‘정상 국가’임을 선전하려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여정은 한국 기자들이 ‘기분이 어떠신가’ 등 가벼운 질문을 던졌지만 옅은 미소만 띤 채 아무 말도 하지않았다. 김여정은 개막식 이후 서울로 이동해 호텔에서 대표단과 1박을 했다.

황인찬 hic@donga.com·신나리 / 인천=황금천 기자
#평창올림픽#김여정#방남#북한#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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