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달린다, 메달보다 나만의 인생 개척하기 위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8일 03시 00분


패럴림픽 女크로스컨트리 서보라미

2018년 평창 겨울패럴림픽에 출전하는 서보라미는 한국 장애인 크로스컨트리 스키 여자 1호 국가대표다. 그는 “안방에서 대회가 열리는 만큼 자신감이 넘친다”고 말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2018년 평창 겨울패럴림픽에 출전하는 서보라미는 한국 장애인 크로스컨트리 스키 여자 1호 국가대표다. 그는 “안방에서 대회가 열리는 만큼 자신감이 넘친다”고 말했다. 대한장애인체육회 제공
서보라미(32)는 병실 한구석 간이침대에 쭈그려 자고 있던 어머니 이희자 씨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 여고 3학년이었던 2004년 4월. 당시 계단에 넘어져 척수를 다친 서보라미는 하반신 마비라는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받았다. 머릿속엔 극단적인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주변이 온통 죽을 길로만 보였던 그를 어머니가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때 직장 일도 그만두시고 오로지 저를 위해 살았어요. 본인의 삶을 제게 나눠준 셈입니다. 태어났을 때 한 번, 그리고 그때 또 한 번 저를 세상에 나서게 했습니다.”

한국 장애인 크로스컨트리스키 여자 1호 국가대표 서보라미가 어머니 눈앞에서 질주를 꿈꾼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을 시작으로 이번이 세 번째 패럴림픽이다. 그는 극한의 스포츠로 손꼽히는 장거리 12km를 포함해 크로스컨트리 4개 세부 종목에 출전한다.

첫 패럴림픽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나섰다. 2007년 우연히 참여한 스키캠프에서 스키와 인연을 맺은 지 3년이 채 못 된 시점이었다. “그땐 다른 장애인 선수를 보며 새로운 세상에 눈뜨던 배움의 시간이었어요.”

두 번째 대회인 소치 겨울올림픽(1km 15위·5km 14위)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의지는 넘쳤지만,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는 자평이다. 국내 유일의 크로스컨트리 선수로서 그를 제대로 지도해줄 훈련 환경이 마련돼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장비 숙련도도 높아졌고, 레이싱 노하우도 쌓였다.

“어떤 자세로 스키를 탈지조차 몰랐던 과거와는 달라요. 이젠 혼자 장비를 상황에 맞게 다룰 줄도 알고요. 무엇보다 안방에서 열리다 보니 자신감도 넘칩니다.”

서보라미는 본받고 싶은 선수로 한국 여자 크로스컨트리의 간판 이채원(37)을 손꼽는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부터 평창까지 16년 동안 묵묵히 올림픽에 출전해온 그의 끈기에 감명을 받았다. “(이)채원 언니는 자신의 갈 길을 끈기 있게 걸어왔잖아요. 메달을 꼭 따지 않아도 그렇게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간 것이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또한 누가 알아주든 말든 이채원처럼 묵묵히 자기만의 인생을 달리고 싶다. 겨울 훈련 때 하반신 마비로 아픔을 느끼지 못해 수도 없이 동상에 걸리기도 했지만, 서보라미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를 보며 희망을 키우는 장애인도 늘었다. ‘1호 선수’라는 타이틀은 어느새 무거운 책임감으로 그의 어깨를 누르고 있다.

“이 종목이 어려워 들어왔다가도 나가는 사람이 많은데 제가 진득하게 자리를 잘 지키고 있어야 명맥이 유지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서보라미는 처음으로 패럴림픽 경기장을 찾아 딸의 경기를 직접 응원할 어머니를 생각한다. “이번만큼은 눈물로 경기를 놓치지 말고 딸이 설원을 헤쳐 나가는 모습을 봐 달라”고 말했다.

“매번 어머니는 제 경기를 보고 우셨어요. 그래서 또 눈물로 제 경기를 볼까 봐 걱정입니다. 이번엔 제가 달리는 모습을 꼭 지켜봐 줬으면 해요. 그간 어머니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제 온몸으로 증명해 보고 싶습니다.”

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서보라미#패럴림픽#크로스컨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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