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1988년 이후 30년 만에 한국에서 패럴림픽이 열려 어느 때보다 장애인 선수 관련 기사가 쏟아졌다. 그런데 이들의 소식을 전하는 언론에서의 표현은 어땠을까. 패럴림픽 기간 동안 10대 일간지에 보도된 장애인 관련 기사 전체를 모니터링했던 김민정 장애인정책모니터링센터 연구원은 개선이 필요한 내용을 5가지 유형으로 분석했다.
첫째는 장애인을 ‘인간승리의 드라마’ 혹은 ‘감동의 원천’으로 묘사하며 지나치게 과장하는 경우다. 오른팔이 없는 선천성 장애인 선수에게 ‘팔 대신 날개가 있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등 장애인 선수의 활동을 지나치게 과장하는 것은 그렇지 못한 대다수의 장애인에게 성공에 대한 사회적 압박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장애인 선수들의 활동을 전하면서 ‘이들 앞에서 고난과 좌절을 말하기 부끄럽다’는 표현도 있었는데 이는 장애인의 노력을 부각하기보다는 장애인을 비장애인의 희망이나 위안으로 삼으려 했다는 점에서 부적절했다는 분석이다.
둘째는 ‘소아마비를 딛고’처럼 ‘장애 극복’을 강조하는 경우다. 장애를 극복되어야 하는 불행한 상태나 비정상적인 상태 정도로 취급하기보다는, 장애를 다양성의 한 측면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필요하며 ‘극복(overcoming)’해야 할 것이 아닌 그냥 ‘있는(with)’ 것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신체 손상을 상세하게 부각하거나 장애와 질병을 동일시하는 경우다. ‘뇌전증(간질) 장애를 앓고 있는’ ‘뇌성마비를 앓는’처럼 장애인과 환자를 구분하지 않고 장애를 ‘앓는다’고 표현하는 것도 피해야 할 점으로 지적됐다. 신체 손상의 이력을 지나치게 강조하며 정작 중요한 선수 개인의 업적이나 노력을 소홀히 하는 경우도 많았다.
넷째는 장애를 무기력함, 불행, 절망을 기반으로 묘사하는 점이다. ‘죽는 게 낫다며 실의에 빠져’ 등의 표현은 장애인에 대한 거부감을 조장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다섯째는 장애인 가족을 죄인 또는 영웅으로 묘사하는 경우다. 이는 장애인을 가족의 도움이나 희생이 없으면 안 되는 존재로 인식시킬 수 있다.
김 연구원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처럼 이들의 업적 그 자체를 강조하기보다 장애인들의 눈물이나 고통을 극대화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렇게 패럴림픽 선수들을 인간승리의 드라마나 감동의 원천으로 묘사하는 것은 사람들에게 장애인을 희망과 용기를 주는 대상으로 보게 한다. 장애인들을 주체가 아닌 객체로 만드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윤삼호 장애인정책모니터링센터 소장 역시 “모든 스포츠는 자기 도전을 위해 하는 것이다. 유독 장애인만큼은 타인에게 용기를 심어주기 위해 하는 것처럼 감정이입이 과장된 기사가 많다. 이는 선의의 편견”이라고 덧붙였다. ‘장애’ 그 자체가 아닌 ‘장애가 있는 인간’으로서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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