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다슬(18)의 손을 떠난 공이 거짓말처럼 상대 골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순간 그는 왼손을 번쩍 들어올리며 온몸으로 환호했다.
“50골을 먹어도 ‘한 골’만 넣는 게 목표”라던 한국 여자 수구 대표팀의 첫 골이 터지자 관중석은 “대~한민국”을 연호하는 소리로 가득 찼다. 마치 우승이라도 한 것 같았다.
한국 대표팀이 여자 수구 역사상 첫 골을 성공시켰다. 한국은 16일 광주 남부대 수구경기장에서 열린 2019 광주세계선수권대회 러시아와의 여자 수구 B조 조별리그 2차전에서 1-30(0-7, 0-9, 0-8, 1-6)으로 완패를 당했다. 하지만 경다슬이 넣은 한 골에 경기를 마친 선수들은 서로를 얼싸안으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일부 관중도 함께 눈시울을 붉혔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사상 처음으로 결성된 한국 여자 수구 대표팀은 14일 헝가리와의 데뷔전에서 역대 세계선수권대회 최다 점수차 기록인 0-64의 대패를 당했다.
이날도 강호 러시아에 3쿼터까지 무득점으로 꽁꽁 묶였다. 하지만 0-27로 뒤지던 4쿼터 3분44초에 기적처럼 골이 터졌다. 경다슬이 골대 오른쪽에서 러시아의 수비를 뚫고 던진 슛이 러시아 골문 오른쪽에 꽂혔다. 두 경기 91골을 먹은 끝에 나온 극적인 ‘한 골’이었다.
선수들의 눈물에는 이유가 있었다. 개최국 자격으로 사상 첫 세계선수권 자동 출전권을 따낸 여자 수구 대표팀은 5월 말에야 선발전을 거쳐 결성됐다. 6월 2일 첫 훈련을 시작했으니 함께 손발을 맞춘 것은 40여 일 밖에 되지 않았다.
북한과의 단일팀 결성이 추진되면서 팀 구성이 늦어진 탓이다. 수구는 이번 대회 유일한 구기 종목인데다 북한의 여자 수구 수준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북한이 끝내 이번 대회에 불참하면서 허겁지겁 팀을 급조했다. 13명의 선수 가운데 고교생 9명과 중학생 2명이 포함됐다.
수구라는 것을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경영 출신 선수들로 구성된 대표팀은 좌충우돌했다. 골키퍼 오희지(23)는 연습 도중 공에 맞아 코뼈가 부러졌다. 손가락을 삐거나, 팔꿈치를 다치고, 어깨가 빠진 선수들도 속출했다. 연습 상대가 없어 남자 고교 팀과 연습경기를 해야 했다. 갖은 고난 속에서 그들의 꿈은 오직 하나, ‘한 골’을 넣는 거였다.
왼손잡이라는 게 높은 점수를 받아 대표팀에 선발된 평영 선수 출신 강원체고 졸업반 경다슬은 이날 12차례 슛 시도 끝에 한국 여자 수구의 새 역사를 썼다. 그는 “온 힘을 다해 던졌는데 정말 들어갈 줄은 몰랐다. 목표했던 한 골을 넣은 만큼 다음 경기부터는 다른 선수들이 골을 넣을 수 있도록 돕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날 대회 심판 중 한 명이었던 디온 윌리스 씨(남아공)는 역사적인 첫 골을 축하한다며 경다슬에게 남아공 국기 모양의 열쇠고리를 선물하기도 했다. 경다슬은 러시아와 중국 언론과도 인터뷰를 했다.
한국 선수들은 이날 헝가리와의 1차전보다는 공수 양면에서 훨씬 좋은 움직임을 보였다. 헝가리전에서 단 3개의 슛 시도에 그쳤던 한국은 이날 30차례나 슛을 쐈다. 홍인기 대표팀 코치는 “이날 한 골이 한국 여자 수구의 발전에 좋은 계기가 됐으면 한다”며 “꾸준히 실력을 쌓아 내년 도쿄올림픽 예선에 출전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세계선수권만을 위해 구성된 여자 대표팀은 대회 후 해산이 예정되어 있다. 이상원 대한수영연맹 수구 이사는 “정식 국가대표가 되기 위해서는 정책적으로, 행정적으로 해결해야 할 부분이 많다. 여자 수구팀의 기적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도록 연맹은 더 노력할 것 ”이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