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에미리트(UAE)에서도 이어지는 ‘박항서 매직’의 원동력은 실리 축구다. 잔뜩 움츠렸다가도 필요할 때는 칼날을 꺼내들면서 베트남 축구 역사상 최초의 토너먼트 첫 관문 통과라는 역사를 썼다.
박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은 20일 오후 8시(한국시간)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 알막툼 스타디움에서 열린 요르단과의 2019 UAE 아시안컵 16강전에서 연장전 포함 120분 간 1-1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4-2로 이겼다.
베트남은 5백으로 경기를 시작했다. 실점 없이 전반을 마친 뒤 후반에 승부수를 걸겠다던 박 감독의 공표대로였다. 11월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을 시작으로 3개월 넘게 손발을 맞춘 베트남 선수들은 유기적인 움직임으로 요르단의 발을 묶었다.
전반 39분 박 감독의 구상이 어긋났다. 세트 피스에서 바벨 압델 라흐만에게 절묘한 오른발 감아차기로 득점을 헌납한 것이다. 위험 지역에서의 불필요한 반칙이 실점으로 이어졌다.
지고 있는 팀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많지 않다. 내일이 없는 토너먼트라면 더욱 그렇다. 상황이 꼬이면서 베트남은 후반 들어 공격의 비중을 높였다. 수비에 무게를 뒀던 사이드백들도 좀 더 높은 위치에 자리했다.
베트남의 변신은 후반 6분 결실을 맺었다. 응우옌 트룽 호앙의 크로스를 응우옌 콩 푸엉이 넘어지면서 오른발로 마무리했다. 수비 뒷공간을 향하는 날카로운 크로스와 마무리 능력이 만들어낸 합작품이었다.
동점골 한 방으로 베트남은 다시 여유를 찾았다. 공격적인 흐름을 이어가면서 뒷문 정비에도 힘을 쏟을 수 있게 됐다. 결국 베트남은 안정적인 수비로 연장전까지 추가 실점을 막은 뒤 승부차기로 8강 진출이라는 대업을 완성했다.
베트남의 아시안컵 8강 진출은 큰 의미를 지닌다. 동남아시아를 제패하긴 했으나 아시아 최강팀들이 모두 모이는 이번 대회에서는 고전이 예상됐다. 과거에 비해 나아졌지만 신체 조건은 여전히 경쟁팀들에 비해 떨어졌다. 베트남 선수들의 평균 신장은 175㎝로 이번 대회에 출전한 24개팀 중 가장 작다.
박 감독은 열세를 인정하고 이에 맞는 전술을 준비했다. 3백을 기반으로 하면서 상황에 맞게 5백을 병행했다. 선수들은 한 발 더 뛰는 축구로 신체적인 어려움을 타계했다. 많은 활동량은 쉽게 뚫리지 않는 끈끈한 수비의 구축으로 이어졌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지나친 수비 축구라는 비판을 하기도 한다. 폭스스포츠가 최근 기사를 통해 “박 감독의 수비적인 축구가 스즈키컵에서는 성공을 거둘 수는 있었지만 아시안컵에서는 효율이 떨어진다”고 지적한 것이 대표적이다.
요르단전 승리를 거둔 박 감독은 기사를 작성한 언론사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폭스스포츠 기자가 수비 축구를 한다면 한계에 봉착한다고 혹평했다는 기사를 봤다. 우리는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나는 수비 축구라고 인정하기 싫다.”
박 감독은 무분별하게 수비만 하는 것이 아닌 의미있는 수비와 매서운 반격으로 결실을 맺는 ‘실리 축구’로 불리길 원했다. “우리는 철저히 실리 축구를 한다. 수비 축구라고 말하지 말고 실리 축구라고 해달라.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 지금 하는 축구”라고 강조했다.
베트남은 일본-사우디아라비아전 승자와 24일 8강전을 치른다. ‘실리 축구’가 또 다시 통한다면 4강 신화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