쇄신하며 일본답게…모리야스 재팬, 날개를 달다

  • 뉴스1
  • 입력 2019년 1월 29일 10시 24분


코멘트

이란 3-0 완파하고 결승진출… 단단한 기본기로 색깔 지키며 성장

“눈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선수들 기량은 역시 일본이 아시아 톱” “한국이 추구하는 ‘빌드업 축구’는 일본처럼 ‘기본기’가 갖춰졌을 때 가능하다”

29일 오전(한국시간) 일본과 이란의 ‘2019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4강전이 끝났을 때 국내 축구팬들의 반응이다. ‘사실상의 결승전’이라 불릴 만큼 우승후보들의 대결이었으니 누가 이긴다 해도 이변이나 사건은 아닌 결과였다. 하지만 일본이 3-0으로 대승을 거둔 것은 예상치 못한 시나리오다.

이번 대회에서 가장 안정된 전력을 보인 팀은 분명 이란이었다. 이란은 8강까지 5경기에서 총 12골을 넣는 동안 실점은 단 하나도 없었다. 게다 이라크와의 0-0(조별리그 3차전)을 제외하고는 모두 시원시원하게 이겼다. 첫 경기에서 예멘을 5-0으로 대파한 이란은 2차전서 박항서 감독의 베트남을 2-0으로 꺾었다. 이어 16강에서 오만을 2-0으로 제압했고 8강에서 리피 감독의 중국을 3-0으로 가볍게 쓰러뜨리고 준결승에 진출했다.

반면 일본은 5전 전승이기는 하나 매 경기가 힘겨운 내용으로 1점차 신승에 그쳤다. 조별리그 1차전에서 투르크메니스탄과 3-2 난타전을 벌인 일본은 오만을 1-0, 우즈베키스탄을 2-1로 꺾고 토너먼트에 올랐다. 그리고 16강과 8강에서 각각 사우디아라비아와 베트남을 1-0으로 꺾었다. 상대를 압도한 경기는 없었다.

이란은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의 장기집권과 함께 정점에 올랐다는 평가를 받았고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이 약 6개월 전에 지휘봉을 잡은 일본은 만들어가는 단계였다. 아무래도 추는 이란 쪽으로 기울었다. 그런데 뚜껑을 여니 달랐다. 앞선 5경기에서는 전력을 감췄다는 듯, 일본은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축구로 이란을 요리했다.

언뜻 주도권을 쥔 쪽은 이란으로 보였다. 이란은 힘과 스피드를 앞세운 선 굵은 공격을 펼치며 큰 흐름을 지배하는 듯 했다. 하지만 일본은 특유의 섬세하고 정확한 패스로 점유율을 높이면서 야금야금 경기장을 장악해 나갔다. 마치 스펀지에 파란 물이 스며들 듯, 차근차근 ‘사무라이 블루’가 영향력을 넓혔다.

이란의 플레이에는 힘이 넘쳤고 압박 강도 역시 아시아 톱클래스였다. 하지만 일본 선수들은 언제 어느 위치에서 공을 잡아도 침착하게 대응했다. 아무리 빠르게 공이 움직여도 패스를 보내는 이는 방향이 정확했고, 받는 이는 정확한 퍼스트 터치로 공을 돌려세웠으니 짧은 패스들이 물 흐르듯 이어졌다. 이란 선수들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터프함을 넘어 비신사적인 몸싸움을 걸어온 것은 그만큼 일본이 얄밉게 잘했다는 방증이다. 집중력도 높았다.

0-0 균형이 깨진 것은 후반 11분이었다. 왼쪽 측면을 돌파하던 미나미노가 상대와 충돌한 것이 단초였다. 이란 선수들이 파울 여부를 확인하느라 심판에게 따질 때 넘어졌던 미나미노는 벌떡 일어나 골라인 근처에서 공을 잡아냈고 곧바로 크로스를 올렸다. 이를 문전에서 오사코가 정확한 헤딩 슈팅으로 연결해 골망을 흔들었다. 이번 대회 이란의 첫 실점이었다. 미나미노의 집념, 택배 같던 크로스 모두 박수가 아깝지 않았다.

일본은 이후 마음 급한 이란을 자신들 뜻대로 컨트롤했다. 그리고 후반 17분 페널티킥 추가골로 승기를 잡았고, 후반 추가시간 역습상황에서 쐐기골을 터뜨려 완승을 장식했다. 이란의 철옹성이 이 경기에서만 3실점했다. 일본다운 축구로 대회 5회 우승에 성큼 다가섰다.

일본은 지난해 러시아 월드컵 직전 바히드 할릴호지치 감독을 경질하고 니시노 아키라 감독 임시체제로 본선을 치른 바 있다. 당시 할릴호지치가 경질된 다양한 이유들 중에는 ‘일본 축구의 색깔을 없애고 있다’는 반발이 꽤 컸다. 할릴호지치 감독은 일본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전까지의 섬세하고 정교한 축구 대신 선 굵은 축구를 가미해야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런 방향이 JFA나 선수들과 갈등을 빚었고 결국 경질이라는 강수로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일본은 자신들의 축구로 러시아 월드컵 16강에 올랐다. 16강에서도 당시 FIFA 랭킹 3위에 빛나는 벨기에를 상대로 2골을 먼저 넣는 등(2-3 역전패) 상당히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당연히 ‘일본답게’라는 깃발은 더 높이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대회 후 지휘봉을 받은 모리야스 감독 역시 일본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결승까지 올랐으니 모리야스 재팬은 더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특히 이번 대회는 그간 ‘사무라이 블루’를 대표했던 카가와 신지, 혼다 게이스케, 오카자키 신지 등을 빼고 임한 대회다. 전면 세대교체까지는 아니나 일본의 현재와 미래를 혼합시킨 스쿼드였는데, 경기를 거듭하면서 더 발전하는 모양새다.

결과적으로 여러 마리 토끼를 잡고 있다. 자신들의 축구 철학을 지키면서, 오래도록 고여 있던 팀도 쇄신하면서 성과까지 내고 있으니 금상첨화다. 뿌리 깊은 나무는 잘 흔들리지 않는다. 단단한 기본기를 발판으로 일본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서울=뉴스1)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오늘의 추천영상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