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나 하나쯤은 괜찮겠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한 피해는 막대합니다. 내가 예약한 식당에 못 가게 됐는데 취소하지 않으면 누군가 꼭 가야 하는 사람이 못 가게 될 수 있습니다. 병원 예약을 해 놓고 나타나지 않으면 촌각을 다투는 누군가의 생명을 위태롭게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노쇼(No-Show)’라고 합니다. 사전적 의미는 ‘예약을 해 놓고 취소 연락 없이 나타나지 않는 현상’입니다. 흔히 ‘예약 부도’라고도 합니다. 주로 외식, 항공, 호텔 업계에서 사용하는 용어입니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주요 서비스업의 노쇼 발생률이 15% 수준입니다. 통상 4∼ 5% 수준인 선진국에 비해 높습니다. 노쇼로 인한 매출 손실은 연간 4조5000억 원, 고용 손실은 10만8000명으로 추정됩니다.
지금까지 노쇼는 소비자의 예약 부도를 일컫는 말로 쓰였습니다. 하지만 서비스 공급자의 차질로 소비자에게 피해를 준 노쇼도 있습니다. 지난해 세간을 시끌벅적하게 만든 ‘호날두 노쇼 사건’입니다.
세계적인 축구 스타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5·유벤투스·사진)는 지난해 7월 26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 선발팀과 이탈리아 유벤투스의 친선 경기에 출전하기로 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행사 주관사인 더 페스타는 계약서에 호날두가 최소 45분 출전하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고 홍보했습니다. 입장권 6만5000여 장이 순식간에 매진되는 등 반응 역시 뜨거웠습니다. 하지만 호날두는 당일 경기장에서 몸도 풀지 않은 채 벤치만 지켰습니다.
경기 뒤 일부 팬은 이 문제에 대해 소송에 나섰습니다. 최근 나온 민사소송 결과 재판부는 팬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4일 인천지법 민사51단독 이재욱 판사는 이모 씨 등 2명이 유벤투스 친선경기 주최사인 더 페스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더 페스타는) 이 씨 등에게 각각 37만1000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습니다. 이는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 30만 원이 포함된 금액입니다. ‘호날두 사태 소송 카페’ 회원 87명도 지난해 8월 더 페스타를 상대로 1인당 95만 원씩 총 8280만 원을 배상하라는 취지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냈습니다. 앞으로 줄소송이 예상됩니다.
이 판결에 대해선 해외 언론도 반응을 보였습니다. 4일 영국 BBC는 “한국 법원이 유벤투스의 방한 경기에서 호날두가 출전하지 않은 것에 대해 주최사가 팬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며 상세히 보도했습니다.
노쇼는 본질적으로 계약 당사자들 간에 신의성실 의무를 위반하는 행위입니다. 그로 인한 사회 경제적 피해가 가볍지 않습니다. 예약은 민법상 계약 행위입니다. 계약의 전제는 신뢰입니다. 소비자가 예약 취소를 미리 알리는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할 윤리입니다. 마찬가지로 공급자 역시 소비자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도록 약속을 철저히 지켜야 합니다. 이번 노쇼 사건의 교훈은 사람 간의 믿음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원칙’의 재확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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