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장에서 시도 때도 없이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는 피겨 선수들에게는 일종의 흉기나 다름없다. 일부 팬들은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관중석에서 플래시를 터뜨린다. 하지만 이는 연기 중인 선수, 특히 점프 중인 선수에게는 치명적인 위협으로 다가온다.
지난 4일부터 6일까지, 서울 목동 아이스링크에서는 KB금융그룹 코리아 피겨스케이팅 챔피언십(제67회 전국 남녀 피겨스케이팅 종합선수권)이 열렸다. 아직 어린 노비스 선수들부터 김연아(23·고려대)와 박소연(16·강일중)-김해진(16·과천중) 등의 시니어 선수들까지 모두 참여하는 이번 종합선수권에는 4천여명의 관중들이 스탠드를 가득 메웠다.
하지만 객석 중간중간에서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가 선수들의 안전을 위협했다. 주최측인 대한빙상경기연맹은 “카메라 플래시를 꺼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안내방송을 거듭했지만, 잠시 잦아드는듯 하던 플래시들은 선수들이 은반에 올라서 연기를 할 때면 군데군데서 어김없이 터졌다.
이에 몇몇 진행요원들은 ‘테러범’ 추적에 나섰다. 한 진행요원은 동아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이 구역에서 계속 플래시가 터진다는 지시를 받았다”라며 “선수들이 위험하다는데 왜 계속 저러는지 모르겠다”라고 불평을 토했다.
의식있는 팬들은 자체 정화에 나섰다. “플래시 주의해주세요”라는 자성의 목소리는 “플래시 좀 꺼요!”라는 짜증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몇몇 팬들은 해당 구역 번호를 직접 외치며 플래시를 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차츰 플래시의 수는 줄어들었지만, 근절되진 않았다. 마지막 순서로 ‘여왕’ 김연아가 등장하자 그 수가 다시금 늘어났다.
피겨 팬이 도리어 선수들을 위협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보다 성숙한 관전 의식이 필요하다. 빙상연맹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플래시를 꺼달라고 부탁드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플래시를 압수하거나 경기장 밖으로 퇴장시킬 권리는 우리에게 없다”라고 안타까워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