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꽃이 흐드러진 대학 캠퍼스가 돌연 술렁였다. 여기저기서 휴대전화를 꺼내들어 사진을 찍어댔다. 인기 연예인이 찾아온 듯한 열기였다. 1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교정에 젊은이들의 우상이나 다름없는 두 사람이 나타났다. 청춘의 멘토로 도전과 위로의 상징이 된 한비야 유엔 중앙긴급대응기금 자문위원(54·월드비전 세계시민학교 교장)과 김난도 서울대 교수(49). 이들은 동아일보가 창간 92주년을 맞아 진행한 기획 ‘10년 뒤 한국을 빛낼 100인’에 선정된 것을 계기로 처음 만났다. 두 사람은 특히 청춘들로부터 높은 기대를 받고 있다. 한 여학생은 “고민이 많은데 나만 아픈 게 아니란 생각에 위로를 받았다”, 다른 여학생은 “도전하는 열정을 동경한다”고 말했다. 이들도 젊은이들에게 무한신뢰를 보냈다. “믿는다, 청춘.”
○ 사색 통해 길 찾아야
“요새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느끼는 게 있어요.” 요즘 이화여대에서 초빙교수로 강의하는 한 위원이 말문을 열었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대학에 진학한 뒤 비로소 사춘기를 겪는다는 것. “공부! 공부! 하다가 막상 진로를 결정할 때가 되면 그때서야 고민을 시작해요.”
한 위원은 진단과 함께 해법으로 ‘사색’을 제시했다. “개인이라는 나무가 뿌리를 내리는 게 중요해요. 그러려면 사색을 많이 해야 해요. 요즘 검색은 많이 하죠? 그런데 사색하지 않고 그 ‘정보과다의 재난지역’에서 어떻게 좋은 정보를 찾겠어요.”
“공감합니다.” 김 교수는 상담 e메일을 보내온 한 고등학생에게 조금 전 답장을 썼다고 했다. 유명 컨설턴트가 되고 싶은데 어떤 전공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 잠도 오지 않는다는 하소연이었다. “그 친구의 문제는 너무 조급하다는 거예요.”
한 위원이 이어받았다. “그런 강박 때문에 20대 할 일, 30대 할 일, 죽기 전에 할 일 리스트까지 나오고 있잖아요. 남 생각대로 살거나, 내 생각대로 살거나 선택은 두 가지예요. 그런데 지금 꾸는 꿈이 내 것인지, 부모 것인지, 사회 것인지 그걸 알아야죠.”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모르겠다는 사람들… 많죠.” 김 교수 역시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맞아요. 스스로 생각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찾으라고 한참을 강연했는데 어떤 학생이 묻는 거예요. ‘근데 제가 뭘 하면 좋을까요?’ 어휴….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네가 찾아라, 이것아.’” 한 위원은 요새 젊은이들을 보면 레고 블록 쌓기를 보는 것 같단다. 툭 치면 와르르 무너져버리는.
“생각을 대신 해주는 사람은 엄마죠.” 김 교수의 원인 분석이다. 많은 청춘이 좋은 대학만 가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세뇌되지 않았던가. “저는 그걸 에스컬레이터적인 사고라고 불러요. 첫발만 디디면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에스컬레이터. 에스컬레이터를 타느냐 못 타느냐가 아니라 어떤 계단을 올라야 할지 생각하는 게 중요한데. 청년들의 사색하는 역량이 거세되는 느낌이죠.” 김 교수의 말에 한 위원이 거든 한마디. “아, 슬프다.” ▼ “세계 누빌 대한민국 청춘들, 10년뒤 오늘 다시 뭉쳐볼까요” ▼
○ 열정에 불을 붙여야
한 위원도 사색이 만능열쇠가 아니라는 점을 알고 있다. “솔직히 저도 고민이에요. 사색 끝에 용기를 내 도전했는데 실패하고 돌아오면? 저도 대학 진학에 실패한 적이 있어요. 가족의 수치고 인생의 낙오자였죠. 한 번의 실패가 너무 치명적이에요. 도전에서 실패한 이들을 사회가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우리의 숙제죠.”
그래도 김 교수는 칠전팔기(七顚八起)를 믿는다. “성공한 분들을 봐도 한 번의 성공이란 없어요. 당장 돈이 안 되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 그 일이 나를 행복하게 할 것이라는 믿음. 그 내면의 열정에 불을 붙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봐요.”
한 위원이 반색했다. “어느 날 며칠 밤을 새워 글을 쓰다가 창밖을 보니 날이 밝아오더라고요. 속으로 ‘독한 것’ 하고 웃었죠. 그러곤 거울을 봤는데 초췌한 내 얼굴이 그렇게 맘에 드는 거예요. 뜨겁게 몰두했던 순간이니까.”
“행복은 그런 열정이 밑바탕이 돼야 해요. 숯불처럼….” 김 교수가 맞장구쳤다.
한 위원은 ‘무작정 열정’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모두 100도로 펄펄 끓는 건 아니니까 미지근한 삶의 태도도 존중해요. 그런데 전 밥이 아니라 꿈을 얘기하는 사람이에요.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꿈을 꾸라고 말할 수 있는 거죠.” 그러면서 덧붙였다. “도전해야 성공할 확률이 50%라도 있지, 아예 시도조차 안 하면 성공 확률은 0%잖아요.”
다행히 희망이 보인단다. “요즘 아이들은 우리 세대와 달라요. 안정된 직장이 행복을 보장해 주나? 의심하기 시작했어요. 저나 김 교수님한테 상담 e메일을 보내는 것도 그런 몸부림이라고 봐요.” 한 위원은 최근 한 학생에게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선생님은 행복하세요?’ 한 위원은 질문이 고마웠다고 한다. ‘아이들이 사색하기 시작했구나.’ ○ 한국 넘어 세계로, 세계로
김 교수는 한발 더 나아가 도전 무대를 지구촌으로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기업에 입사해 주말에 노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그게 세계인 거예요. 그런데 글로벌 시대가 됐잖아요. 통 큰 생각을 했으면 해요.”
국제화 얘기가 나오자 이내 한 위원 목소리가 높아졌다. “많아야 70억 인구인데 지구가 다 우리 집인 셈이잖아요. 옆에서 아프면 나도 아프다고 생각하는 거, 이런 게 세계시민이고 시대정신이죠.” 김 교수 역시 같은 생각이다. “지금은 대기업 중심으로 글로벌 무대에 진출하고 있지만 중소기업이나 개인할 것 없이 세계로 더 뻗어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글로벌 마인드를 가진 젊은이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이 대목에서 두 사람은 글로벌 무대로 나설 청년들이 마음에 새겼으면 하는 점이 있다고 했다. 한 위원이 먼저 나섰다. “사람의 성숙도를 가늠할 때 전 그 사람이 약자를 대하는 모습을 봐요. 사회도, 국가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보다 못한 나라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국격이죠.”
“그럼 전 강자에 대한 시선을 얘기할게요.” 김 교수가 이어받았다. “우리 세대만 해도 미국 일본 하면 기가 죽었어요. 미제, 일제가 최고였죠. 그런데 지금은 국산이 더 좋잖아요. 젊은 사람들이 강자에 주눅 들지 않았으면 해요. 국가적으로 봐도 우리가 영원히 극복 못할 나라가 없어요.” 김 교수가 즉석에서 구호를 만들었다. ‘약자에겐 따뜻한 시선을, 강자에겐 도전을.’
“10년 뒤 두고 보자고요.” 한 위원이 밝아진 얼굴로 단언했다. “제가 구호활동을 하니까 요즘은 길에서 아이들도 날 만나면 돈을 줘요. 어려운 데 써달라고. 이런 얘기하면 선진국에서도 부러워해요. 사실 10년 전만 해도 왜 다른 나라를 돕느냐고 했잖아요. 10년 뒤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정말 기대돼요.”
김 교수가 깜짝 제안을 했다. “10년 뒤 오늘 다시 만납시다. 두고 보자고요.” 두 사람은 우리 청년들이 지구촌을 무대로 펼칠 활약상에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 듯했다. ■ 특별취재팀 명단
▽팀장 이진 경제부 차장 leej@donga.com ▽주말섹션O2팀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정치부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산업부 정세진 기자 mint4a@donga.com ▽문화부 곽민영 기자 havefun@donga.com ▽오피니언팀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인력개발팀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사회부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사회부 정지영 기자 jjy2011@donga.com ▽김태원 인턴기자 한국외국어대 프랑스어과 4학년 ▽송지은 인턴기자 연세대 아동가족학과 졸업 ▽이다은 인턴기자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재학 ▽이용우 인턴기자 동국대 법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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