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2학년생 이지원 양은 기자 지망생이다. 대학에 진학한 뒤 가족과 떨어져 지내고 있는 그는 동아일보를 구독 중이다. 스마트폰으로도 동아일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구독하고 있다. 그는 “동아일보 페이스북 페이지에 틈틈이 접속해 속보를 확인하고 주말이면 종이신문을 펼쳐들고 한 주간 놓친 소식이 없는지 확인한다”며 “신문은 정보의 홍수 속에 심도 있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매체”라고 말했다.
이 양은 어머니가 스크랩한 동아일보를 읽으며 꿈을 키워왔다. 어머니는 딸이 일곱 살 때부터 신문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알려주고자 스크랩을 해왔다. 서재에 보관 중인 스크랩북만 15권. 딸을 위해 신문을 읽다보니 동아일보 애독자가 됐다는 어머니는 아침마다 신문을 펼칠 때가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했다.
그런 이 양이 지령 3만 호(1월 26일)를 맞은 동아일보에 보내온 인증샷에는 그 애뜻한 마음이 오롯이 담겼다. 이 양 뿐만이 아니다. 수십 년 독자, 신문으로 공부하는 꼬마, 동아 홍보를 자처하는 택시운전사 등 각계 각층의 다양한 독자들이 카카오톡과 이메일(30000@donga.com)로 동아일보 관련 사진과 따뜻한 이야기를 전해왔다.
취업준비생 이고은 씨의 하루 마지막 일과도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동아일보 페이스북에 접속하는 것이다. 게시물을 훑어보다 같이 보고 싶은 친구가 떠오르면 댓글에 태그로 소환하고 곱씹어보고 싶은 게시물은 공유한다. 덕분에 친구들 사이에 ‘동아일보 공유왕’으로 불린다고 밝혔다.
‘직장인 3년차’ 장대진 씨는 취업 성공 비결로 동아일보를 꼽았다. 대학에 입학하며 동아일보를 구독하기 시작했다는 장 씨는 “대학생이 되니 다양한 사람을 만날 일이 잦아졌고 대화소재가 필요해 신문을 찾게 됐다”고 했다. 그는 밑줄을 그어가며 신문을 봤고 기억하고 싶은 문장은 필사하며 외우다시피 했다. 장 씨는 “최근 이슈와 사회 흐름을 줄줄이 꿰고 있어 취업 면접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며 취업준비생들에게 “어느 직종에 가든 글을 쓰고 설득할 일이 많다. 신문이 좋은 교재임을 기억하라”고 조언했다.
●공부 친구 동아일보
초중고교생들에게도 동아일보는 빼놓을 수 없는 ‘공부 친구’다. 태안여고 2학년 1반 박원빈 고민정 양은 어렸을 때부터 신문을 즐겨 읽었다. 고교에 진학한 두 사람은 서로 ‘읽기 습관’을 갖고 있다는 걸 알고 의기투합했다. 고교 기숙사로 동아일보 배달을 신청해 하루를 동아일보와 함께 시작한 지 2년. “신문을 읽으면서 새로운 시사이슈 등을 알 수 있어 도움이 된다”는 게 두 사람의 설명이다.
둘은 ‘신문 전도사’ 역할도 하고 있다. 자습시간에 반 친구들과 함께 신문을 읽고 토론을 하거나 스크랩을 하는 등 신문활용교육(NIE)을 한다. 박원빈 고민정 양은 “아침마다 우리 반에 최신 정보통 역할을 해주는 동아일보에 감사하다”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전했다.
인천 강화중 1학년 학생들도 단체 사진과 사연을 보내왔다. 지난해 2학기 활동 수업으로 진행한 ‘뉴스로 세상 읽기’에 참가한 학생들이다. 구미숙 교사는 “인터넷만 들여다보던 아이들이 종이신문을 읽어가면서 뉴스를 알고 세상을 파악하게 되는 과정을 몸소 체험한 시간”이었다고 귀띔했다. 구 교사는 “교재로 삼은 여러 신문 중에서도 동아일보와 함께 한 시간이 가장 많았다”면서 “정치 경제 문화 등 사회 각 분야의 뉴스들이 한데 담긴 신문을 통해 여러 학생들의 관심사가 한꺼번에 해결됐다”고 밝혔다.
●‘우리는 동아일보 가족’
동아일보 사랑에는 나이가 따로 없다. 김창열 씨(76)는 매일 저녁식사를 마친 뒤 용인서원초 1학년 학생인 외손주 민시후 군을 부른다. 그는 민 군을 무릎에 앉히고 동아일보를 함께 보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가난한 고학생이었던 김 씨는 고려대 법학과에 진학한 뒤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동아일보를 구독했다. 동아일보 정기구독자가 된 지 60여 년째. 그는 “동아일보는 날선 비판 정신을 갖고 있고 앞으로도 정의로운 언론이 돼 줄 것이라고 믿는다”고 밝혔다. 김 씨의 둘째딸 주미 씨가 아버지와 아들의 신문 읽는 모습을 담은 ‘인증샷’을 보내면서 “아버지가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셔서 시후에게 계속 동아일보를 읽어줬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우리는 동아일보 가족’이라는 제목의 메시지를 보낸 독자도 있다. 역사논술 강사인 김문경 씨는 교재 자료로 쓰기 위한 동아일보 기사를 꼼꼼하게 스크랩하고 있다. 사회 이슈에 부쩍 관심이 많아진 아들 초등학교 5학년 최승민 군도 신문 읽는 엄마를 따라 아침마다 동아일보를 챙겨본다면서 학급에선 ‘시사왕’으로 통한다고 김 씨는 자랑했다. 여기에다 어린이동아를 읽고 있는 초등학교 1학년 딸 최윤서 양은 날마다 지면에 소개되는 한자를 따라 쓰면서 ‘한자왕’이 됐다고 덧붙였다.
회사원인 워킹맘 임은희 씨는 자녀들이 초등학생 때 썼던 ‘신문일기’를 보내왔다. 아이들이 학교 숙제로 써내는 일기가 내용이 반복되자 임 씨는 ‘신문일기’ 쓰기를 제안했다. 신문 기사를 보고 관련된 경험을 쓰고 생각을 정리하도록 한 것. 임 씨는 “퇴근해서 돌아오면 아이들이 쓴 신문일기를 봐주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 둘이 서로 내용이 겹치면 안 된다고 저마다 1시간 넘게 주제를 찾고 쓰던 기억이 난다”고 돌아봤다. 그는 “아들은 최근 입대했고 딸은 고등학생이 됐다. 신문일기를 쓰면서 생각 깊은 자녀들로 자란 것 같아 감사하다”고 전했다.
●동아일보와의 깊은 인연
박봉숙 씨(79)는 ‘10년차 주부’ 시절 아침에 눈을 뜨면 동아일보부터 찾았다. 1974년 광고 탄압이 한창인 때였다. 그는 “매일 텅 비어있는 광고란을 대할 때마다 가슴에서 울분이 치밀어 올랐다”며 “힘없는 주부였지만 언론수호를 위해 조그만 힘이라도 보태야겠다고 결심했다. 남편 몰래 박봉을 쪼개 작은 성금을 동아일보에 보냈다”고 회고했다. 당시 남편이 동아일보 대구지사 기자로 근무하고 있었기에 비밀로 하고 싶었다. 그러나 며칠 뒤 김상만 동아일보 사장 명의의 감사문과 언론자유수호 격려 메달이 배달되면서 남편도 알게 됐다. “부끄러워서 말하지 않았는데 남편이 많이 고마워했다”는 그는 “나의 귀중품들”이라며 감사문과 메달을 들고 찍은 인증샷도 보내왔다.
박국원 씨(58)는 초등학교 2학년 시절 할머니 동생들과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사진 속 박 씨는 동아일보 로고가 찍힌 반소매셔츠를 입은 모습이다. 그는 “당시 경북 예천에서 할아버지께서 동아일보 지국을 운영하셨는데 신문 배달하는 아이들에게 동아일보 로고가 찍힌 셔츠가 제공됐다”며 “셔츠를 자랑스럽게 입고 다닌 게 유년시절의 큰 추억”이라고 말했다.
42년 전 빛바랜 동아일보 기사를 간직하고 있는 독자도 있다. 이칠용 한국공예예술가협회 회장(72)은 1975년 2월 28일자 3면에 실린 기사 ‘8대 야당위원 12명이 자술한 고문 내용’을 보고 있는 사진을 보내왔다. 기사에는 당시 조윤형 이세규 홍영기 등 국회의원들이 박정희 정권 하에서 당한 고초가 담겨있다. 1970년부터 동아일보를 구독 중인 이 회장은 “당시 정권은 현역 국회의원들에게도 이런 짓을 했는데 힘없는 민주열사들은 어떤 고통을 받았겠느냐”며 “동아일보는 항상 대한민국 민주화의 선봉에 있었다. 용감무쌍하게 보도해 준 동아일보에게 감사하다”고 전했다.
●일상과 함께 하는 동아일보
경기 광명의 광명업사이클센터가 보낸 인증샷은 동아일보 지면을 활용한 가방이다. ‘업사이클’이란 버려진 물건에 예술성을 더해 새로운 작품으로 만드는 것을 가리킨다. 도심과 떨어져 있어 매일 등기우편으로 동아일보를 받아본다는 광명업사이클센터 직원들은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지면 전체를 꼼꼼하게 보는 즐거움은 종이신문만의 매력”이라면서 “디자이너 할리 케이 김현정 씨에게 의뢰해서 만든 이 가방에는 우리 직원들이 신문을 읽으면서 느낀 기쁨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와 일상을 함께 한다는 독자들의 사연도 많다. “모범택시를 운전하면서 10년 째 날마다 뒷좌석에 동아일보를 두고 택시에 탄 손님들이 보도록 한다”는 박성환 씨, “도서관에 방문하는 어른들을 위해 동아일보를, 어린이들을 위해 어린이동아를 비치해 놓는다”는 이태희 담소작은도서관장, 근무하는 약국에 틈이날 때면 동아일보를 읽고 손님들이 신문을 보고 싶다고 하면 동아일보를 건넨다는 약사 최혜원 씨…. 세대를 넘나드는 동아일보 독자들의 애정은 이렇게 훈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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