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일정 중 최대 행사인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미사’가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성대하게 치러졌다. 교황이 순교자의 땅에서 직접 시복미사를 집전하는 건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에 광화문광장은 역사적 순간을 함께하려는 가톨릭 신자와 구경 인파로 들썩였다.
30년 전인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방한 당시 정신장애가 있는 한 대학생이 장난감 딱총을 쏘며 교황의 차량으로 돌진하는 해프닝을 겪었던 경찰은 이번 시복미사에서 발생할 수 있는 돌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철통 경호’를 펼쳤다. 이날 투입된 경찰은 3만500명에 달했다. 이 중 저격수 2000명은 광화문광장 인근 245개 고층건물에 배치됐고, 지하철 등 광화문 인근 지하 공간 대테러 활동에도 경찰 2100명이 투입됐다. 그러나 경찰의 우려에도 이날 시복미사는 신자와 시민들의 질서정연한 움직임 덕택에 ‘대형 안전사고’와 ‘쓰레기’ ‘갈등’이 없는 ‘3무(無) 시복미사’로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 질서와 배려로 시복미사를 수놓다
시복미사에 참석한 신자와 시민들은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줬다. 오전 9시경 교황을 태운 차량이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 인근에 나타났다. 경찰은 광화문광장과 서울광장 주변을 4.5km 길이의 방호벽으로 둘러쌌지만 인파가 교황을 보기 위해 한꺼번에 움직일 경우 서로 엉켜 쓰러지는 등 안전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신자와 시민들은 침착함을 유지했다. 교황의 차량을 향해 다른 사람을 밀치며 뛰쳐나가지 않고 제자리에서 “비바, 파파”를 외치며 열광했다. 어르신과 아이들, 수녀가 교황을 더 가까이서 볼 수 있도록 배정받은 구역 내에서 자리를 바꾸는 배려를 보여주기도 했다.
시복미사가 끝난 뒤에도 질서 있는 움직임은 계속됐다. 전국 각지에서 버스와 기차를 타고 올라온 이들은 먼저 집에 가기 위해 서두르지 않았다. 교황방한위원회의 지시에 따라 지방 교구부터 순서대로 퇴장했다. 질서 있는 해산으로 오후 5시까지 예정됐던 교통 통제는 1시간 30분가량 일찍 풀렸다. 교황방한위원회 관계자는 “요한 바오로 2세 방한 때도 가톨릭 신자들의 질서는 큰 칭찬을 받았다. 거기서 나온 자부심이 큰 영향을 끼친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 성당에서는 질서 유지를 당부하고 유의 사항을 담은 자료를 자발적으로 만들었다. 용산성당 안내 자료를 만든 이혁진 씨(31)는 “포용의 정신을 보여주는 교황께서 미사를 하는 만큼 이번 시복미사로 인해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신자들 스스로 질서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 쓰레기 없는 ‘클린 시복미사’
시복미사가 끝난 뒤 광화문광장의 모습은 수십만 인파가 머물렀던 공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깨끗했다. 신자들은 자신들이 머물렀던 자리를 청소한 뒤 각자 가져온 쓰레기봉투에 쓰레기를 담았다. 자원봉사자들은 솔선수범해 쓰레기를 치웠다. 청소원들이 빗자루를 들고 행사장을 돌아다녔지만 바닥에 떨어진 쓰레기가 많지 않아 신자들이 모아둔 쓰레기봉투 더미를 치우는 경우가 많았다. 가톨릭 신자 장지은 씨(63·여)는 “쓰레기가 하나도 보이지 않아 같은 신자로서 자부심을 느낀다. 가톨릭의 위상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위상 자체가 높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 반(反)가톨릭 시위에도 ‘갈등’ 피한 신자들
이날 교황의 시복미사 인근 현장에서는 일부 개신교 신자가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 광화문광장에 입장할 수 없었던 이들은 시복미사 중에는 서울광장 인근을 돌아다니며 반대 시위를 벌였고, 미사가 끝난 뒤에는 광화문광장 안까지 들어와 가톨릭을 비판했다. 이들은 “예수님 믿는다면서 사람(교황) 믿으면 안 돼요” “우상에 절하면 안 돼요. 우상 숭배하면 안 돼”라고 외치며 소란을 피웠다. 종교적인 가치를 건드린 만큼 충돌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시복미사에 참석했던 가톨릭 신자들은 “우리도 예수님 믿어요”라며 지나가는 등 불상사를 막기 위해 자제하고 행사를 끝까지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서울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시복미사 당일 일부에서 가톨릭 반대 시위가 있었지만 이로 인해 경찰에 연행된 시위자는 없다”고 밝혔다.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