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누군가가 내 몸을 빨래 짜듯 비트는 기분. 하체는 왼쪽, 상체는 오른쪽으로 돌아가는데 순간 척추가 휘는 줄 알았다. 고통스러우면 탭(상대방, 자신의 몸, 바닥 등을 두드리는 행위. 종합격투기에서 항복을 의미)을 치라던 조언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냥 ‘컥컥’거리며 얼굴을 찡그렸다.
전체 기술이 들어가는 데 걸린 시간? 모르겠다. 하지만 체감시간은 과장 좀 보태 1초쯤 됐다. 그는 내 찌그러진 얼굴을 보고서야 기술을 풀었다. 창백한 얼굴로 가쁜 숨을 몰아쉬는 나를 보곤 얄밉게 한마디 툭 던졌다. “실전에서 쓰는 힘의 20% 정도만 준건데….”
○ 충격은 무릎을 거쳐 발목까지 타고 넘어
그 기술은 바로 ‘트위스터’(사진 ①)였다. 상대의 다리를 고정시킨 뒤 반대 방향으로 목을 돌려 비트는 트위스터는 종합격투기(손 발 등 다양한 부위를 이용해 타격과 그라운드 기술을 넘나들며 승자를 가리는 격투 스포츠) 기술 가운데서도 상당히 고난도에 속한다. 미국의 스포츠 전문 매체인 ‘블리처 리포트’는 최근 ‘종합격투기 역사상 가장 고통스러운 서브미션 기술(관절을 꺾거나 경동맥 등을 조이는 등 상대의 탭을 받기 위한 기술) 20’을 뽑았는데 트위스터는 그 가운데 3위에 올랐다.
기자가 트위스터를 당하게 된 것은 순전히 원초적인 호기심이 발단이었다. 얼마 전 TV에서 종합격투기를 보다 한 ‘당하는 사람은 얼마나 아플까’란 생각이 기자를 ‘무모한 도전’으로 이끌었다.
기술을 걸어줄 상대로는 누구를 정할까. 고민할 필요도 없이 ‘코리안 좀비’(좀비처럼 끈기 있다 해서 붙여진 별명) 정찬성(24)을 택했다. 정찬성은 11일 캐나다에서 열린 UFC(미국에 있는 세계 최대의 종합격투기 단체) 대회 페더급(66kg 이하) 경기에서 정상급 강자인 마크 호미닉을 단 7초 만에 눕혀 화제가 된 선수. 그는 바로 이전 대회에선 UFC 사상 처음으로 트위스터를 실전에서 성공해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정찬성과 만난 건 14일 오후. 그가 훈련하는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의 코리안탑팀체육관에서였다. 그는 기술을 보이기에 앞서 간단한 설명을 해 줬다. “종합격투기 기술은 자세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요. 선 자세에서 상대와 싸우는 기술, 서 있는 상대를 넘어뜨리는 기술, 그리고 누운 자세에서 쓰는 기술이죠.”
그가 가장 먼저 선보인 기술은 ‘로킥’(사진 ②·발로 상대방의 다리를 공격하는 기술). 사실 로킥 만큼은 맞아도 아프지 않을 줄 알았다. 경기를 보면 선수들이 복싱에서 잽을 던지듯 툭툭 차는데, 충격이 그다지 큰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방심하던 순간 그의 오른발이 번쩍였다. 넓적다리 부분을 살짝 맞았는데도 다리가 풀려 푹 쓰러졌다.
정찬성은 “보통 차는 수준의 절반도 힘을 주지 않았다”고 했는데 맞은 부위엔 멍이 시퍼렇게 들어 있었다. 묵직한 충격은 무릎에서 발목을 타고 넘어 발끝까지 전달됐다. “골반을 축으로 강한 원심력을 이용해 쭉 밀어 찹니다. 상대의 다리를 뚫고 지난다는 기분으로 힘을 실어 차기에 제대로 맞으면 근육이 찢어질 수도 있어요.” 듣고 보니 오싹한 생각이 들어 바로 ‘겸손 모드’에 들어갔다. 그리고 소리쳤다. “자, 다음 동작으로 넘어가죠.” ○ 그가 힘을 줬다. 신음조차 안나왔다
다음은 조르기. 순간적으로 경동맥(목 부위의 동맥), 기도(호흡할 때 공기가 지나가는 통로) 등을 압박해 상대를 질식시키는 기술이 모두 조르기에 해당한다.
정찬성은 먼저 자신의 대표 기술 가운데 하나인 ‘리어 네이키드 초크’(사진 ③)를 시작했다. 오른팔로 기자의 목을 완전히 감은 뒤 오른손은 자신의 왼팔 관절 쪽에 올려 올가미처럼 단단하게 조였다. 왼손과 머리는 기자의 머리가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하는 역할을 했다. 그 자세에서 그가 ‘흡’ 하는 기합과 함께 팔에 힘을 줬다. 순간 정신이 아찔해졌다. 나사가 꽉 조여진 듯 약간의 틈도 없어 목에 가해지는 압박이 장난이 아니었다. 신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제대로 정신도 차리지 못한 상태에서 다음 조르기 동작이 이어졌다. 바로 ‘트라이앵글 초크’(사진 ④). 누운 상태에서 상대의 머리와 한 팔을 가랑이 사이에 넣고 조이는 기술이다. 동작이 제대로 걸린 상태에서 그가 기자의 머리를 앞으로 당겼다. 정찬성이 상체까지 비트니 당하는 사람이 느끼는 압박은 배가 됐다. 호흡이 턱 막히며 2초도 되지 않아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조르기 기술을 당하고 나니 오기가 생겼다. 당하고만 있을 순 없었다. “나도 한번 해보자”고 했다. 흔쾌히 돌아온 ‘OK’ 사인. 기자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정찬성의 뒤로 갔다. “준비됐다”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가장 쉬워보였던 리어 네이키드 초크로 공략했다. 온 힘을 다해 목을 졸랐 다. 10초쯤 지났을까. 기자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랐지만 정찬성은 미동도 없었다. 결국 힘이 빠져 기자가 포기하고 말았다. 그는 목을 한번 어루만지더니 씩 웃으며 말했다. “가르쳐 드린 대로 하지 않았네요. 팔과 목 사이에 공간이 너무 남던데…. 그래서 압박이 덜했어요.”
○ 처음 느껴보는 고통에 두려움까지 겹쳐
이 말을 들으니 멋쩍은 미소만 나왔다. 바로 복수를 포기하고 다음 기술로 넘어갔다. 마지막 기술은 관절기. 말 그대로 상대의 관절을 가동 범위 이상으로 꺾거나 비틀어 관절과 인대 등을 공략하는 기술이다. 관절기는 여러 기술 중 부상 위험이 가장 크고, 기술을 당하는 사람이 느끼는 고통 역시 가장 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르기의 경우 순간적으로 실신할 수는 있어도 후유증은 그리 크지 않은 반면 관절기가 깊게 들어갈 경우 인대가 찢어지거나 뼈가 부러지는 등 큰 부상을 입을 가능성이 크다.
첫 번째 관절기는 ‘암바’(사진 ⑤)였다. “조금이라도 아프면 바로 탭을 치라”는 당부를 가슴에 꼭 품은 채 정찬성의 암바를 맛봤다. 그는 먼저 누워서 버둥대는 기자의 오른팔을 다리 사이에 꽉 끼었다. 이어서 움직이지 못하게 기자의 손을 꼭 붙든 뒤 양다리로 목과 가슴을 압박했다. 이제 오른팔을 그에게 완전히 내준 상황. 그는 기자의 팔꿈치를 자신의 넓적다리 쪽으로 가져간 뒤 손목을 시계 방향으로 비틀었다. 그가 허리를 살짝 들어 기자의 팔과 자신의 상체를 밀착시키니 팔꿈치에 더 묵직한 압력이 전달됐다. 그가 힘을 조금 가했을 뿐인데도 입에선 외마디 신음이 터져 나왔다. 처음 느껴본 고통이라 익숙지 않은 데다 팔이 돌아가 부러질지도 모른다는 심리적인 위기감까지 겹쳐 두려움이 배가 됐다.
암바 뒤로는 ‘니바’(사진 ⑥)가 이어졌다. 암바와 원리는 같지만 팔이 아닌 상대의 다리를 비틀어 무릎 관절에 손상을 입히는 기술이다. 그런데 직접적인 통증은 암바보다 덜했다. 무릎이 웬만큼 돌아갈 때까지도 크게 아프지 않아 참을 만했다. 바로 그때 지켜보던 하동진 감독(코리안탑팀)이 크게 “그만!”이라고 외쳤다. 하 감독은 “무릎에는 통증을 느끼는 세포가 팔꿈치보다 적어 아픔을 덜 느낄 뿐”이라며 “괜히 아프지 않다고 좀 참다가 기술이 깊게 들어가면 큰 부상을 입을 수 있다”고 했다.
사실 몇 가지 기술이 더 이어질 계획이었지만 그냥 중단시켰다. 잠깐씩 당했을 뿐인데도 몸이 휘청거려 버틸 여력이 없었다. 괜히 ‘플라잉 니킥’(뛰어올라 무릎으로 상대를 가격하는 기술)이라도 맛보면 후유증이 꽤 오래 남을 듯했다.
아픈 몸을 어루만지면서 정찬성에게 물었다. “신체 단련을 많이 한 선수들은 상대에게 맞아도 일반인보다 덜 아프지 않느냐”고. 의외로 “우리도 엄청 아프다”는 싱거운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경기 중에는 웬만한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단다. “관중의 환호 속에서 경기에만 집중하면 어느 정도 고통은 그냥 몸을 자극하는 영양제 정도로 느껴져요. ‘한판에 인생을 건다’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경기장에 들어서면 인대가 끊어져도 참을 수 있죠.”
하지만 경기가 끝난 뒤엔 물론 많이 아프다. 정찬성은 라커룸에 들어서는 순간 “온 몸이 운다”며 그 고통을 표현했다. “한 번은 무릎 안쪽 인대가 끊어진 적이 있었어요. 손목 관절이 부러진 적도 있고요. 이 코도 수술만 세 번 한 코거든요. 그런데 사실 어디가 아파도 그 절반은 경기 중 언제 당한건지 기억도 안 나요. 그만큼 집중을 하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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