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토요일) 오후 서울 노원구의 이탈리안 레스토랑 ‘블랙스미스’에 들어서는 기자의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입구에서 인사를 건네는 직원 두 명과 눈을 마주치기가 어려웠다. 애써 당당한 척 어깨를 펴 보았다. ‘내가 갑(甲)이다, 내가 갑이다….’ 머리 속에서 주문을 외웠다.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직원 중 한 명이 매장 가운데 널찍한 자리를 권했다. 주변 좌석에 손님도 별로 없고 밝기도 딱 좋은 자리였지만 왠지
부담스러웠다. 사방에서 날 쳐다보며 감시할 것 같다는 불안이 엄습했다. 결국 매장 가장 안쪽 창가 자리에 앉았다. 흡사 창과 방패의 대결. 그들은 막아야 하고 나는 찾아야 한다. 그들은 눈치 채야 하고 나는 은밀해야 한다. 마른 침을 삼켰다.》 시저샐러드와 크림파스타, 칼초네 피자를 주문했다. 매장에 들어오기 전 이미 마음속으로 정해 둔 메뉴였다. 그래도 종업원 앞이라 메뉴를 펼치고 신중하게 고르는 척했다. 시저샐러드에 파르메산 치즈를 듬뿍 뿌려 달라는, 미리 준비한 멘트도 잊지 않았다. 음식을 시킬 때 추가 요구를 하는 것은 기자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필요한 절차였다. 앉은 자리가 괜히 불편했다.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며 함께 온 동료 기자에게 종이 두 장을 건넸다. 뒤에서 쳐다볼지도 모르는 직원의 눈을 의식하며 조심스레 설명했다. “식사를 다 끝내면 너도 이 평가지 두 장을 작성해야 돼. 한번 훑어 봐 둬.” 그때 멀리서 직원이 다가왔다. 황급히 평가지를 가방에 넣었다.
샐러드가 나왔다. 요구한 대로 치즈가 듬뿍 뿌려져 있었다. 휴대전화를 꺼냈다. 메모 앱을 켜고 ‘샐러드 추가 요구를 잘 들어줌’이라고 적었다. 그때 한 종업원이 스치듯 옆을 지나쳤다. 순간 손이 굳었다. 혹시 휴대전화를 본 걸까. 내 정체를 눈치 챈 것은 아닐까.
“그냥 자연스럽게 들어가서 식사하고 나오시면 돼요.” 전날 들은 조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상대가 눈치 챘을 때의 대응 방법을 물어보지 않은 걸 후회했다. 생각이 복잡했다. 고개를 돌려 아까 그 종업원을 다시 찾았다. 그는 묵묵히 할 일을 계속했다.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거나 귓속말을 하지는 않았다. 한숨을 내쉬었다.
‘블랙스미스 맛 평가단’의 미스터리 쇼퍼 개별 미션은 쉽지 않았다. 식사하는 한 시간 반 내내 긴장은 계속됐다. 맛 평가단은 때로는 미식가가 되고 때로는 미스터리 쇼퍼가 된다. 신분을 밝히지 않고 매장을 몰래 방문해 메뉴와 서비스 수준을 평가한다. 이를 통해 매장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을 찾고 때로는 매장에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매달 등장하는 신메뉴의 출시 여부도 이들의 손에 달렸다.
소심남에게는 무리
가장 어려운 미션, ‘고객 불만’을 제기할 때가 됐다. 평가단은 ‘식사 도중 도움을 요청했을 때 신속하게 대처했는가’ 항목 평가를 위해 의무적으로 불만을 제기해야 한다. 평소 음식에서 머리카락이 나와도 별말 없이 묵묵히 밥을 먹고 나왔던 기자에게는 부담 그 자체였다. 달콤한 크림 파스타가 목으로 넘어가질 않고 입안을 맴돌았다.
“저도 할 때마다 창피하죠. 무리한 요구를 할 때는 정말 손발이 오그라들 지경이에요.”
맛 평가단 팀장 민석환 씨(24)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직원이 황당한 고객에게 대응하는 태도도 평가의 일부”라고 했다. 평가단은 괜한 트집을 잡는 무리한 요구를 해야 할 때도 있다. 그래야 매장이 매뉴얼대로 행동하는지 알 수 있다. 9월에는 한 평가단원이 “파스타가 너무 많이 익었으니 덜 익힌 것을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단다. 아예 새 제품으로 바꿔 달라는 것 아닌가. ‘그런 건 절대로 못하겠다.’ 기자의 간은 이미 작아질 대로 작아져 있었다.
피자가 희생양이 됐다. 도(dough·밀가루로 만든 피자의 바닥 부분)가 덜 익어서 밀가루 냄새가 나니 화덕에 다시 익혀 달라고 요구하기로 했다. 손을 들어 종업원을 불렀다. 막상 종업원이 다가오자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결국 같이 온 동료 기자에게 바통을 넘겼다.
잠시 후 종업원이 돌아왔다. “죄송하지만 오븐에 다시 익히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저희 셰프께서 새 제품으로 다시 구워 주시겠다고 하는데 괜찮으실까요?” 이미 양손에 땀이 가득 찬 기자에게 매장의 호의는 부담스러웠다.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웃는 종업원의 표정에 다시 얼굴이 달아올랐다. 어쨌든 고객 불만을 친절하게 해결하고 있지 않은가. 결국 새 피자를 받지 않고, 남은 피자는 포장해 가져가기로 하고 상황을 매듭지었다.
아직도 평가할 것은 산더미처럼 남아 있었다. 이번에는 유리잔에 담긴 물을 조금만 남기고 모두 들이켰다. 잔을 내려놓고 시계를 들여다봤다. 1분, 2분, 3분… 10분. 아무도 빈 잔을 채워 주지 않았다. 다시 휴대전화를 꺼냈다. ‘물 10분 동안 안 채워 줌’이라고 적었다. 또 가슴이 뛰었다.
매장을 방문한 평가단은 작은 행동도 조심해야 한다. 행동이 어색하거나 무리한 요구를 해 눈에 띄면 바로 직원들의 ‘의심’이 시작된다. 매장도 평가단의 방문을 항상 신경 쓰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매장과 평가단 사이에 신경전이 펼쳐지기도 한다. 점원들이 갑자기 1분에 한 번씩 테이블을 점검하고, 물을 수시로 채워 주거나 인위적인 미소를 날린다면 평가단 신분이 들통 났다고 봐야 한다. 그러면 그 매장에 대한 평가는 거의 포기해야 한다. 물론 얼굴이 노출된 평가단은 다음 달부터는 해당 매장을 다시 방문하지 않는다.
셰프도 울고 갈 독설
“같이 갔던 친구의 유리잔이 깨져 있어서 바꿔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직원분이 미안하다는 사과도 없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응하셨어요. 기분이 나빴습니다.”
“피크타임(하루 중 매장이 가장 바쁘게 운영되는 시간대)이라 직원이 너무 바빠서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다신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기분 푸시기 바랍니다.”
한 직영점 점장이 20대의 어린 평가단원에게 고개를 숙였다. 기자의 개별 미션 수행 이틀 전(지난달 25일) 참석한 월간 정기 평가 자리에서였다. 이날 평가단은 10월 한 달간의 활동을 종합하고 서로 의견을 교환했다. 이 자리는 김선권 대표도 매달 빠지지 않고 참석할 만큼 진지한 행사다. 이날 김 대표는 지방 일정이 겹쳐 참석하지 못했다.
평가회에 참석한 4명의 지점장들은 좌불안석(坐不安席)이었다. 한 지점장은 합장하듯 모은 손끝을 무릎 사이에 끼운 채 고개만 빼꼼히 들고 앉아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입술을 깨물고 심호흡을 해 댔다. 이들은 자기 매장에서 어떤 칭찬과 지적이 나왔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김소라 씨(22·여)는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외모에 서글서글한 눈매를 지녔지만 평가에서는 거침이 없는 ‘독한’ 단원이다. 그는 “상대방 눈앞에서 지적을 할 때는 미안한 마음이 들지만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제가 지나치게 까칠(예민)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도 고객을 대변하고 다양한 의견을 전달하는 게 제 역할이니까 최선을 다해야죠.” 친구와 있어도 눈과 귀 따로 놀아야
이들의 ‘독한 충고’는 기자도 피할 수 없었다. 기자는 지난달 26일에는 민 씨, 김 씨와 함께 종로구에 있는 매장에서 조별 미션을 진행했다. 조별 미션은 단원 3명이 함께 수행하는데, 미리 정해진 중점 평가 사항을 더 눈여겨봐야 한다. 기자는 미션이 끝난 뒤 평가 설문지를 작성해 조장인 민 씨에게 건넸다. 기자 나름대로는 면밀하게 관찰했건만 몇몇 문항에는 제대로 대답할 수 없었다. 결국 아무것도 적지 못한 채 모호한 중간 점수를 줬다. 역시나 바로 지적이 들어왔다.
“항목이 만족스럽지 않으면 가차 없이 점수를 깎아 주세요.”
“답변 포인트를 잘못 잡으셨어요. 이 항목은 주관적인 느낌을 적는 게 아니라 다른 점을 찾는 게 핵심인데요.”
“여기에서 ‘이도저도 아닌 맛’이라는 표현은 좀 모호해요. 구체적으로 말해 주시면 좋겠어요. 예를 들면 ‘느끼해서 먹는 사람들이 원하는 단맛을 느끼기 어렵다’라는 식으로요.”
반면 두 사람의 평가지에는 ‘직원이 적고 한쪽에만 집중적으로 배치돼서 아쉬웠다’, ‘누룽지 파스타에서 해산물보다 청경채가 더 눈에 띄어 주인공(해산물)이 덜 강조됐다는 느낌이 들었다’처럼 세심한 관찰 결과가 담겨 있었다. 기자에게 평가단의 임무를 설명해 주느라 바빴던 두 ‘스승님’은 어느 틈에 이 많은 항목을 점검했을까. 두 사람은 평가단을 오래하면 자동으로 ‘멀티태스킹(두 가지 이상의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이 된다고 입을 모았다. 민 씨가 말했다.
“이걸(평가단) 하다 보면 원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주변 상황이 다 보이고 들려요. 친구랑 대화를 하면서도 동시에 눈과 귀는 매장을 향해 있는 거죠.”
맛 평가단에 특별한 자격 요건은 없다. 음식과 서비스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든 도전할 수 있다. 업체로선 전문가가 아닌, 고객의 눈높이에서 평가를 할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최소한의 기준은 있지 않을까. 두 사람에게 평가단의 가장 중요한 자질을 물었다.
“고객 관점에서 생각하는 자세가 가장 중요해요. 거의 1년째 평가단으로 활동을 하니 이제는 다른 레스토랑에 가도 평가단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찾으려고 궁리하게 되더라고요.”(민석환 씨)
“꼼꼼함과 표현력요. 그리고 무엇보다 개인의 감정과 평가를 잘 구분해야 돼요. 종업원 한 사람이 저에게 불친절해서 기분이 상했다고 무조건 그 매장에 최하점을 줘서는 안 돼요. 종업원의 행동 전체를 보는 눈이 필요하죠.”(김소라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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