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은 내니(nanny), 즉 유모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거리로 나가 30만 장의 사진을 찍은 사진작가 비비안 마이어(1926∼2009). 생전에 사진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고, 사람들과 교류하지 않아 알려진 바도 없었던 인물이다. 마이어는 베일에 싸인 채 세상을 떠났고 그의 수많은 필름은 창고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부동산 중개업자 존 말루프가 임대비용이 연체된 이 창고를 사들이면서 마이어의 사진들은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마이어가 카메라에 담은 것은 그저 뉴욕과 시카고의 거리 풍경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통찰이었다.
모델은 주로 아이와 여성, 그리고 자신이다.
거울 속 나, 쇼윈도에 비친 나, 그림자 속 나, 실루엣만 보이는 나…, 이렇게 자신을 많이 찍어서 그는 ‘셀피(self-photography)의 여왕’이라고도 불린다. 큰 키에 단발머리, 남자 셔츠, 무표정한 얼굴의 자화상은 ‘나는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묻는 듯하다. 흑백사진 뿐 아니라 컬러사진도 독특하고 자유로우며 유머가 넘친다.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깊은 관심이 담겨 있어 사진 속 이야기에 금세 몰입하게 된다.
성곡 미술관에서는 비비안 마이어 ‘내니의 비밀’ 전과 함께 게리 위노그랜드(1928∼1984)의 ‘여성은 아름답다’ 전도 열리고 있다. 위노그랜드는 마이어와 동시대를 살았던 남성 사진작가로, 거리에서 마주친 개성 넘치는 여성을 담아 스트리트 사진을 예술 사진으로 바꿔놓은 인물이다.
마이어와 위노그랜드는 여성과 남성, 무명의 아마추어와 엘리트 출신의 성공한 사진작가로, 서로 다른 작품세계를 선보인다. 감동의 크기와 차이는 관람자의 자유다. 9월20일까지. 관람료 1만 원. 문의 02-737-7650(성곡미술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