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다보면 완전히 몰입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작두를 타는 느낌이 그럴까요?(웃음) ‘나’와 ‘일’이 혼연일체가 되어 황홀경을 느끼는 순간이죠. 저는 ‘카스’ 브랜드의 신제품을 출시할 때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내가 카스인지, 카스가 나인지 모를 정도로 빠져들었죠. 쉬는 날 없이 매일 12시간 이상씩 일을 했는데도 전혀 힘든 줄 몰랐어요.”
서울 강남 오비맥주 본사에서 만난 남은자(42) 이사. 그는 ‘맥주 전문가’로 통한다. 남 이사는 카스, 오비, 카프리 등 오비맥주에서 생산하는 모든 브랜드들의 마케팅을 총괄하고 있다.국내 맥주 시장 점유율 60%가 넘는다. 수많은 맥주가 그의 손을 거쳐 태어나고 판매되었다. 제품 콘셉트를 잡고 맛, 용기 디자인, 마케팅 전략 등 전 과정을 체크한다. 그는 맥주문화체험관을 열고 비어 클래스도 운영하고 있다.
“어떻게 그렇게 몰입했나, 스스로 궁금했어요. 그래서 제가 하는 일의 본질이 무엇인지 파고들었습니다. 결론은 ‘내 일은 단순히 맥주를 파는 것이 아니다’라는 사실이었죠. 술은 고대로부터 사람들의 정신적 친구였습니다. 또 술은 시간이 빚어내는 것으로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매개체입니다. 제 일에 남다른 가치를 부여한 거죠.”
남 이사는 후배들이 자신의 일에 대해 고민하면 다음과 같이 말해준다고 한다.
“네가 그 일을 하는 의미를 찾아라. 월급 받는 것보다 한 단계 높은 가치를 찾고 스스로 세뇌하라. 자신의 일에 대해 스스로 부여하는 가치가 명함보다 더 중요하다고요.”
빨리 가는 것 vs 멀리 가는 것
남 이사는 20년 직장생활 중 가장 잘 한 일의 하나로 신입사원 시절, 과감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한 것을 꼽았다.
“삼성전자 공채로 입사해 재무팀으로 발령받고, 10개월간 전국 사업장을 돌며 재무 전문가 교육을 받았습니다. 당시 삼성에서 재무팀은 상당히 유망한 부서였죠. 하지만 전 마케팅 업무가 하고 싶었습니다. 인사부에 가서 마케팅을 하고 싶다고 요청하니 신입사원은 안 되고, 영업 경력이 있어야 마케팅 부서로 갈 수 있다고 하더군요. 당시 대졸 여사원이 영업을 하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모두들 우려했지만, 전 과감하게 영업직을 지원했습니다. 1년 후 마케팅 부서에서 일하게 됐죠.”
그는 직장을 옮길 때도 늘 최대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도전할 만한 곳인가를 먼저 생각했다고 얘기한다.
“빨리 가는 것과 멀리 가는 것을 비교하면, 빨리 가는 것이 매혹적으로 보이죠. 그래서 다들 빨리 가려고만 하다 보니 멀리 갈 수 있는 시도를 못하게 돼요. 저 역시 처음엔 좌충우돌했지만 다행히 주위에 조언을 해주시는 분들이 많아 ‘멀리 갈 수 있는’ 시도를 하게 된 것 같습니다.”
남 이사는 “직장생활에서 멀리 가기 위해서는 우선 업무의 완급을 조절하고 커뮤니케이션을 잘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 당장 일의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주변을 살펴보지 않고 마구 싸워서 성과를 낼 수 있겠죠. 그런데 그게 과연 현명한 걸까요? 일은 혼자 하는 게 아닙니다. 특히 관리자가 되니 ‘내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 해야 하는 것’이더군요. 팀 내부, 관련 부서, 위아래 등 관계를 잘 맺어야 직장 생활에서 멀리 갈 수 있습니다. 투쟁적인 잔 다르크 스타일이나 나만 아는 독불장군 스타일은 경쟁력을 약화시킵니다.”
그에게는 멀리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소중한 세 그룹이 있다고 말한다. 첫째, 이전 직장 상사들이다. 사회 초년생 시절부터 그를 지켜보며 장단점을 모두 알고 있는 사람들이므로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적절한 조언을 해준다. 두 번째 그룹은 직장 내 가까운 동료, 후배들이다. 예전엔 윗사람들에게만 조언을 구했는데 최근 동료와 후배들에게도 배울 게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회사에서 매일 마주하며, 특별한 설명 없이 속내를 알아주고,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세 번째는 초등학교 1학년인 아들의 친구 엄마들 그룹. 모두 일하는 엄마들이다.
“아이에게 올인하지 못하는, 같은 처지의 워킹 맘들이 서로 격려하고, 정보도 공유하면서 많은 위로를 받습니다(웃음). 육아 문제도 멀리 길게 보며, 조바심내지 않으려고 합니다.”
여성 리더들에게 가장 아쉬운 것은 ‘깡’
“성공하기 위해서는 ‘꿈’과 ‘끼’와 ‘깡’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들었어요. 정말 공감합니다. 여기에 저는 때와 장소와 상황에 맞게 자신을 관리할 줄 아는 ‘꼴’을 하나 더 넣고 싶어요. 그런데 여성 리더들에게 가장 아쉬운 부분은 ‘깡’이라고 생각합니다.”
남 이사는 “자신이 가진 것은 100인데 70 정도로 말하는 겸손보다는 자신이 낸 성과에 대해 당당하고 세련 되게 표현할 줄 아는 ‘깡’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2016년 마케팅의 화두는 이노베이션입니다. 소비자에게 다가가는 방법의 이노베이션, 제품에 대한 이노베이션을 다 포함하죠. 맥주는 젊음을 상징하는 술로 20대가 주 타깃입니다. 20대는 디지털 세대죠. 어떻게 하면 혁신적인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으로 그들의 관심을 끌어 모을 것인가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는 영화 감상으로 스트레스를 푼다고 한다. 국내에서 상영된 영화는 거의 다 봤을 정도로 영화광이다. “영화 보는 시간은 자신을 다시 채워주는 힐링 타임”이라고 그는 말한다. 또 비틀즈를 워낙 좋아해 그들에 관한 정보와 물건들을 수집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취미생활이다. “이러한 취미는 오비맥주가 여는 콘서트나 비어 클래스 등에 다양한 아이디어를 떠오르게 한다”고 말하며 남 이사는 활짝 웃는다.
글/김경화 (커리어 칼럼니스트, 비즈니스 라이프 코치)
사진/조영철 기자 korea@donga.com
동아일보 골든걸goldengirl@donga.com 남은자 이사는…
1973년생.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보건학 전공. 1996년 삼성전자에 입사, 재무팀과 C&C(computer & cellphone) 세일즈 파트에서 짧게 근무 후 카세트 플레이어 ‘마이마이’와 ‘미니미니’ 브랜드 매니저로 근무했다. 2000년 필립스 코리아로 옮겨, 소비자 가전본부 오디오 마케팅 매니저로 일했다. 2003년 프랑스 패브릭 회사인 DMC(Dollfus-Mieg& Companies) 한국 지사장으로 스카우트돼 마케팅과 영업을 총괄했다. 2007년 오비맥주(주) 마케팅부분 신제품 전략 및 개발팀장으로 입사, 그동안 새롭게 개발한 브랜드만 10여 개, 제품 패키지 개발은 100여 건에 이른다. 2014년부터 카스 브랜드 마케팅을 총괄했고, 2015년 이사로 승진, 현재 오비맥주에서 생산하는 모든 브랜드(카스, OB, 카프리 등) 마케팅을 총괄하고 있다.
오비맥주는…
1933년 소화기린맥주 주식회사로 태동, 83년간 한국 주류산업을 이끌어 온 ‘대한민국 대표 맥주 전문기업’이다. 1948년 회사명을 동양맥주 주식회사로, 상표를 ‘오비맥주’로 바꿨고, 1995년 오비맥주 주식회사로 회사명을 바꿨다. 1998년 벨기에 인터브루사와 합작사를 설립했고, 2014년 200개 이상의 맥주 브랜드를 갖고 있는 세계 1위의 맥주 기업인 ‘AB인베브’에 통합되었지만 ‘오비맥주’라는 이름과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오비맥주는 OB, 카스, 카프리 등을 주력 제품으로 카스비츠, 카스라이트, 카스레드, 카스 레몬, 프리미어 OB 바이젠, 프리미엄 OB 둔켈 등 끊임없이 다양한 서브 브랜드를 출시해 소비자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공략해왔다. 또한 스텔라아르투아, 호가든, 버드와이저, 코로나, 산토리 프리미엄 몰트 등 세계적인 맥주 브랜드도 갖추고 있다. 세계 30여 개국에 30여 종의 맥주를 수출, 우리나라 맥주 수출의 65 % 이상을 차지하며, 국내 맥주 수출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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