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부서가 수평적이고 유기적으로 일할 수 있는 넓고 개방된 사무실을 갖고 싶었어요. 마침 영화 ‘인턴’을 보고, 영화 속 사무실 분위기와 비슷하게 만들었죠. 15년간 함께 일한 직원이 영화를 보고 와서 제게 공간 뿐 아니라 사람도 닮았다고 하더군요(웃음).”
JNG코리아 김성민 대표(54)는 영화 속 C.E.O처럼 직접 자사 제품을 주문해서 택배로 받아 보고, 마네킹 착장도 한다. 30년 가까이 현장에서 익힌 감각을 지금도 현장에서 풀어내는 셈이다.
“업무가 어느 곳에서도 정체되지 않고 빠르고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애씁니다. 대표인 저와 이사 등 관리자가 직원들과 늘 함께 하면서 의사 결정이 필요할 때 그 자리에서 신속하게 하고, 결재도 지체되는 법 없이 바로바로 하다 보면 늦어질 일이 없어요.”
이 회사에는 야근이 없다. 오후 6시면 대표부터 솔선해서 퇴근한다.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일 많기로 소문난 패션업계에서 보기 드문 일이 아닐 수 없다. 대신 근무 시간 만큼은 시간 낭비 없이 철저하게 일한다. 그가 종횡무진 사무실을 누비며 바쁘게 다니는 모습을 보고 직원들은 “영화 속 C.E.O처럼 자전거까지는 아니더라도 킥보드라도 타라”고 농담을 던질 정도다.
“C.E.O는 지휘자라고 생각합니다. 연주자들과 악기 하나하나를 아우르며 지휘하는 지휘자처럼 직원들과 한 공간에서 소통하며, 회사라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거죠.”
김 대표는 디자이너 출신의 경영자다. 그는 “내 생각이 브랜드와 제품에 그대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잠시도 소홀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특히 흐름이 빠른 패션업체 경영자는 디자인 기획, 생산, 유통, 영업, 협력업체 관리, 사내 시스템, 인사 관리까지 회사 전반의 일을 철저히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김 대표의 첫 직장은 태평양화학(현 아모레퍼시픽)이다. 미술을 전공한 그는 당시 드물었던 남성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메이크업 쇼의 피날레를 도맡을 정도로 인정을 받았지만 2년 만에 퇴사하고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주변에선 승승장구할 때 왜 회사를 그만 두느냐고 말렸어요. 하지만 당시 제겐 패션 공부를 제대로 해보고 싶은 강한 열망이 있었어요.”
그는 이탈리아 마랑고니 패션스쿨과 BCM(Beauty Center Milano)에서 패션과 메이크업을 배웠다. 또한 현지 방송국에서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스타일리스트로도 일하며 유학 생활을 보내고 4년 만인 1993년 귀국해 패션계에 입문했다. 그가 디자이너로 일하는 브랜드마다 성공시켜 ‘패션계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기도 했다.
“당연히 될 거란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자리에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처음이자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최선을 다했죠. ‘남과 다르게 한다’는 각오로 집중하며,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었어요. 그러다보면 기회가 오더군요. 디자인 실장에서 본부장, 이사, C.E.O까지 정신없이 올라갔고, 결국 더 이상 갈 데가 없게 됐죠(웃음).”
2008년 그는 직장생활을 끝내고 자신의 회사, JNG 코리아를 설립한다. 세계적인 금융 위기로 경제 상황이 최악이던 시기, 사업을 시작하는 그를 모두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봤다.
“먼저 세계적인 인지도가 높은 지프(JEEP) 브랜드를 론칭하고 다음 제 브랜드를 론칭했죠. 3년쯤 지나니, 기업이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게 실감나더군요. 처음 시작할 때보다 더 무거운 책임감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13명의 직원으로 시작한 회사는 800명 가까운 직원이 일하는 중견 기업으로 성장했다. 패션 뿐 아니라 화장품과 F&B(식음료) 부문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해가고 있다.
“패션은 어릴 때부터 동경의 대상이었습니다. 어려서 옷 잘 입는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고, 주위 사람들에게 조언도 많이 해주었어요.”
그는 패션은 자신에게 꿈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패션 비즈니스 사에 이름을 남길 만큼 가치 있는 브랜드를 만들고자 늘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인다.
그의 취미는 피아노 작곡이다. 정식으로 피아노를 배운 적이 없지만, 건반을 두드리며 작곡한다. “마음 가는 대로 작곡하는데 굳이 분류하자면 뉴에이지 계열입니다. 앞으로 음반까지 내볼 생각이에요(웃음).”
그의 또 다른 목표는 책을 펴내는 것이다. 워낙 책 읽기를 좋아하고, 뭐든지 기록하기를 좋아하다보니 그동안 써놓은 글이 적지 않다.
“미술에서 메이크업으로 또 패션으로, 새로운 장르에 계속 도전하며 제 스토리를 만들어왔습니다. 수많은 색깔의 브랜드를 기획하고 만들면서 패션에 대한 제 나름의 철학도 갖게 됐죠.”
그는 이러한 이야기들과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유년의 기억들을 모아서 한 권의 책을 엮어내고 싶다고 말한다. 주위에서 책을 내자고 권하는 사람들도 많아 서점에서 그의 책을 보게 될 날도 그리 멀지 않은 듯하다.
그는 요즘 늦둥이 아들에게 푹 빠져 있다. 네 살 아들이 주는 행복은 상상 이상이라고 말한다. 퇴근 후는 물론 휴일도 모두 아들 차지다.
“개인적으로 요즘 가장 큰 프로젝트는 ‘아들과의 인생 만들기’입니다. 아들과 함께 하는 매 순간의 감정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어요. 아들에 대한 제 마음, 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등을 일기처럼 쓰고 있는데, 아이가 그것을 자주 읽어달라고 합니다. 나란히 앉아 읽어주면 아이가 가만히 귀 기울이며 듣고 있어요. 겨우 네 살짜리가요(웃음).”
주말마다 대가족이 모여 북적이는 것도 김 대표 집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어머니와 형제, 조카들까지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함께 모여서 식사하고, 영화도 보고, 때로 여행도 간다.
“제가 5남매의 막내예요. 형제들 가족 모두 모이면 스무 명이 훌쩍 넘는 대가족이죠. 매 주말마다 열 명 이상은 우리 집에서 모입니다. 그리곤 무엇이 되었든 함께 합니다. 요즘 보기 드문 모습이죠? 저는 가족들과 함께 지내는 것을 정말 좋아합니다.”
그의 친가족적인 성향은 회사 경영에도 그대로 묻어난다. 출퇴근 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유연 근무제를 실시해 아이를 둔 직원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회사 건물 내에 위치한 카페도 처음에는 직원들의 복지를 위해 만든 공간이었다. 유기농 빵과 질 좋은 커피를 제공하다 보니 입소문이 나 가맹점 사업까지 하게 되었다.
그는 업계의 소문난 패셔니스타다. “자연스러운 세미 캐주얼을 좋아합니다. 정장을 입어야 할 때도 개성을 표현할 수 있도록 포인트를 주는 스타일을 선호하죠. 바쁠수록 ‘블랙’이 더 좋아져요. 어떤 것과도 잘 매치되고, 몸매도 커버되고요(웃음).” 김성민 대표는…
1962년생. 강릉대 미대를 졸업하고 1987년 아모레퍼시픽(구 태평양)에 입사. 1989년 이탈리아로 유학, 로카텔리, 뷰티센터밀라노(BCM), 마랑고니 패션스쿨에서 공부했다. 1993년 귀국해 디자이너 부티크에서 컬렉션을 담당하면서 패션계에 입문했다. 1994년 내셔널 브랜드로 옮겨 레노마 스포츠(F&F)를 성공적으로 론칭하면서 시작된 그의 패션 행보는 2007년까지 다수의 브랜드를 성공적인 론칭, 리뉴얼, 폭발적인 성장으로 이끌었다. 루이네이(신원), 나인식스뉴욕(네티션닷컴) 디자인 실장, 쿨독, 스톰, 보이런던, 헐리우드(보성어패럴) 디렉터, AM하우스(F&F) 디렉터, 콕스(닉스인터내셔널) 이사, ASK, DOCH(리얼리더스) C.E.O, 크리스크리스티(세정과미래) C.E.O 등을 역임했다. 2008년 JNG코리아를 설립하여 ‘지프’, ‘홀하우스’, ‘시에로’ 등 패션 브랜드를 론칭했으며, 2015년에는 ‘시에로 코스메틱’ 브랜드로 화장품업계에 진출했다. 편집 숍과 식음료를 결합한 ‘존화이트 카페’를 열어 식음료 사업까지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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