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브랜드의 마케터를 꿈꾸며 첫 직장에 입사했는데 비서직으로 발령이 났어요. 적성에 안 맞았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1년을 견뎠습니다. 드디어 원하는 부서로 갈 기회가 생겼는데, 제 후임이 뽑히지 않아 마냥 기다려야 했어요. 결국 회사를 그만두었죠.”
현재 향수 브랜드 조 말론 런던을 총괄하는 브랜드 제너럴 매니저인 김정미 상무(47). 그는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오래 회사를 다니지 못했던 직장 초년생 시절을 떠올렸다. 그는 세 번째 직장을 다니다가 영어 공부가 더 필요하고 외국 문화도 직접 체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과감히 호주로 어학연수를 떠났다. 그런데 귀국했을 당시 우리나라는 IMF 경제위기 상황이었다.
“헤드헌터 사무실을 무작정 찾아갔어요. 영어 인터뷰는 잘 치렀는데, 너무 자주 직장을 옮겼다는 지적을 하더군요. 느낀 게 많았습니다. 이직 때마다 이유야 있었지만 좀 더 길게 보는 안목이 필요함을 깨달았어요.”
김 상무는 기회 있을 때마다 다음과 같이 후배들에게 조언한다고 했다.
“한 자리에서 일단 3년은 견뎌라, 2년쯤 지나 성과도 내고, 시야가 넓어졌을 때 자기가 하고 싶은 업무를 어필하라.”
그는 이직의 조건을 ‘내 노하우와 경험으로 기여할 수 있는가? 내가 더 배울 수 있는가? 조직문화가 나와 맞는가?’ 를 기준으로 삼는다고 말했다.
사소한 일은 없다! 모든 경험은 헛되지 않아
“창고에 가서 화장품 샘플 3천개를 송장과 일일이 확인하라는 지시를 받았어요. 급히 처리해야 할 다른 일도 많았는데, 너무 막막했죠. 눈물이 났지만 꾹 참고 다 해냈어요. 직장생활 2년차 때의 일이에요.”
김 상무는 “그 땐 속상하기만 했는데 지금은 ‘사소한 일이란 없다. 모든 경험은 헛되지 않다’고 후배들에게 얘기해주는 좋은 에피소드가 되었다”고 웃는다.
“직장생활 초기에는 어떤 일이 제게 맞는지 몰라서 우왕좌왕했어요. 그러다 교육 업무를 맡았는데 정말 잘 한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어떻게 하면 판매 사원들이 주목할 수 있을까 강의 방법을 늘 연구했어요. 제품 교육도 ‘고객의 입장에서 궁금한 게 뭘까?’라는 생각에 몰두했고요.”
바비 브라운 교육 매니저 시절의 일이다. 파운데이션 신제품이 나왔는데, 일반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이름이 너무 어려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궁리 끝에 제품의 특징을 잡아내 ‘물광 파운데이션’이라는 별칭으로 소개했다. ‘물광’이란 용어가 화제를 일으키며 뷰티 용어로 자리 잡았고, 제품은 그야말로 대박이 나서 몰려든 고객들이 백화점 매장을 몇 겹이나 둘러쌀 정도였다.
김 상무는 “현장에서 직원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고객의 입장에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끊임없이 파악하다보면 마케팅 전략이 보인다”고 말했다. “마케팅은 그렇게 현장 속에서, 디테일한 작은 것에서부터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힘들 때마다 외운 주문 ‘이 또한 지나가리라’
직장생활 20년차이던 2013년 김 상무는 다시 한 번 사표를 던졌다.
“한 브랜드에서만 10년을 일했어요. 교육, 마케팅 분야에서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봤고, 성과도 냈습니다. 그런데 더 이상 발전 가능성이 보이지 않았어요. 슬럼프가 왔죠. 마침 딸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이었어요. 아이의 교육을 이유로 온가족이 독일로 떠났습니다.”
하지만 독일에서의 생활은 기대를 벗어났다. 아이는 향수병으로 힘들어했고, 그는 일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마침 전 직장에서 복직하지 않겠냐는 연락이 왔다. 당시 매출 하락으로 돌파구가 필요한 크리니크 브랜드를 맡으라는 제안이었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귀국을 결정했어요. 전화 받고 사흘 만에 아이와 함께 이삿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돌아왔지요(웃음). 독일에서 일하고 있던 남편을 두고요.”
지금도 그 때의 결단력을 떠올리면 스스로 놀란다는 김 상무. 귀국 후 먼저 홍콩에서 브랜드 관련 교육을 받았다. “다시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가 점차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바뀌었다.
“밤 10시 이전에 퇴근한 적이 없을 정도로 일에 매달렸어요. 새벽 1, 2시 퇴근은 예사였지요. 힘든 상황을 헤쳐 나가야 하는 브랜드를 맡고 보니 반드시 성공시키겠다는 의지가 솟구치고 동기부여가 됐지요.”
김 상무는 기존 매장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우여곡절 끝에 프레스티지 브랜드 최초로 크리니크를 H&B 스토어에 입점 시켰다.
“유통 채널의 다각화만이 살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고객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고객이 있는 곳으로 찾아간 거죠. 시장은 달라지고 있는데 변화를 두려워해선 안 되니까요.”
결과적으로 매출은 급상승했고, 많은 프레스티지 브랜드들이 H&B 스토어에 입점하는 계기가 됐다.
“전 세계에서 다 모이는 본사 마케팅 회의에서 제 자리가 CEO 바로 옆자리로 바뀌더군요. 전에는 구석진 자리였거든요(웃음). 그 해의 ‘베스트 브랜드 매니저’ 상도 받았어요. 크리니크를 맡은 지 3년만의 일이죠. 회사에서는 상무로 승진했고요.”
김 상무는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라는 문장을 주문처럼 외웠다”면서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그 때 실감했다”고 털어놓았다.
새로운 유통 채널 뚫고, 고객의 경험 중시
김 상무는 2017년 11월부터 영국 향수 브랜드 조 말론 런던을 맡고 있다. 그는 “25년간 여러 브랜드를 거치며 쌓아온 경험과 역량을 모두 모아 발휘하고자 한다”며 “무엇보다 고객의 경험을 중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런던 본사의 ‘디테일에 집중하라’는 지침은 김 상무의 생각과도 일치한다. 정교한 포장, 매장의 작은 장식까지 놓치지 않고 신경 쓰는 섬세함으로 고객의 마음을 얻고자 힘쓴다.
“올해는 지방의 소비자들도 서울과 똑같은 조 말론 이벤트를 경험할 수 있도록 지방 행사를 좀 더 많이 마련할 예정입니다. 플래그십 스토어를 통한 고객과의 만남도 더 활성화하고요. 온라인 유통도 더 활발하게 전개할 거예요.”
그는 “SNS를 통한 ‘선물하기’의 매출이 놀라울 정도로 늘어나고 있다”고 밝히며 “고가의 브랜드가 SNS에서 이렇게 잘 팔릴 줄 알았겠나, 고정관념이 깨졌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빠르게 변화하는 요즘, 새로운 유통 채널로 고객층이 확장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빵 구우며 스트레스 해소, 남편이 최고의 의논 상대
김 상무가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빵 굽기’다. 정확하게 분량을 재고, 불 조절을 해가며 빵을 굽다보면 모든 잡념이 사라진다고 한다. 오븐 속에서 부풀어 오르는 빵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지며 저절로 힐링이 된다고.
그는 “스트레스가 풀릴 뿐 아니라 맛있는 빵을 여럿이 나눠 먹을 수 있으니 이보다 좋은 취미가 어디 있겠느냐”며 “식구들은 이제 빵에 질렸는지 그만 만들라고 한다”며 웃는다.
“저를 전폭적으로 지지해주는 남편에게 고마움을 갖고 있어요. 남편은 제가 모든 것을 터놓고 의논할 수 있는 상대죠.”
김 상무는 “오래 일하려면 가족의 협조가 절실하다”고 말한다. 특히 그는 육아 문제로 고민하는 여자 후배들에게 “힘들 때는 주위에 당당히 도움을 요청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조언해준다고.
김정미 상무는…
1971년 생. 상명대 영어교육학과 졸업. 유로통상에서 직장생활을 시작, 일진화장품, 블루벨코리아 등을 거쳐 크리스찬 디올에서 교육 담당으로 일했다. 2003년 에스티 로더 컴퍼니즈의 브랜드 바비브라운으로 옮겨 10년간 교육, 마케팅 업무를 맡아 본격적으로 뷰티업계에서의 커리어를 쌓았다. 2014년 크리니크 마케팅 부장으로 복귀한 후 이사, 상무로 승진했다. 2017년 11월부터 조 말론 런던, 르 라보를 맡아 마케팅, 판매, 홍보, 교육 등 모든 업무를 총괄하는 브랜드 제너럴 매니저(상무)로 재직하고 있다.
조 말론 런던은… 1994년에 영국에서 출시됐으며, 1999년 에스티로더 컴퍼니즈에 인수돼 오늘날 전 세계 55개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향수 브랜드다. 두 가지 이상의 향을 조합해 새로운 향을 만들어내는 프레그런스 컴바이닝TM은 조 말론 런던 고유의 기술로, 조합할 수 있는 향이 최소 400가지 이상이다. 라이프스타일 향수를 표방하며, 디퓨저, 캔들, 배스 & 바디, 차량용까지 전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국내에는 2012년 8월부터 정식 수입, 판매되고 있다.
글/김경화(커리어 칼럼니스트·비즈니스·라이프 코치) 사진/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동아일보 골든걸 goldengir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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