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쌤소나이트 디자인팀, 서울서 글로벌 감성과 유행을 잡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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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온 세계적 디자이너 7인을 만나다

《 개성 강한 디자이너들이 함께 일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각자의 관심 분야도 다르고 추구하는 디자인도, 패션에 대한 철학도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자기 뜻이 확고한 디자이너일수록 혼자서 대부분의 작품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업계 분위기에서 여러 명의 디자이너들이 한배를 탔다면 어떤 느낌일까. 성별, 나이는 물론이고 국적, 피부색도 제각각인 디자이너들을 모아 성공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세계적인 가방 브랜드 ‘쌤소나이트’다. 쌤소나이트는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기 위해 지난해부터 세계를 유럽, 북미, 아시아 등 세 지역으로 나눠 가방 디자이너를 ‘팀제’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중 아시아팀은 한국을 비롯해 일본, 중국, 홍콩 등 아시아 시장을 주요 무대로 활동한다. 》

쌤소나이트의 아시아 디자인팀. 왼쪽부터 플로렌스 차우, 디렌드라 카카, 헬렌 차, 마에다 노부오, 피터 번스. 카미유 바롱, 헤이 챈 씨.
쌤소나이트의 아시아 디자인팀. 왼쪽부터 플로렌스 차우, 디렌드라 카카, 헬렌 차, 마에다 노부오, 피터 번스. 카미유 바롱, 헤이 챈 씨.
팀원은 모두 7명. 쌤소나이트저팬 출신의 일본 디자이너 마에다 노부오 씨(33)와 영국 출신의 피터 번스 씨(32), 인도에서 온 디렌드라 카카 씨(36) 등 남성 디자이너가 3명이다. 여기에 홍콩 출신의 헬렌 차(32), 플로렌스 차우(32), 헤이 챈 씨(31)와 프랑스에서 온 카미유 바롱 씨(29) 등 4명의 여성 디자이너가 합류해 다국적 팀을 이뤘다.

지난해 5월 처음 손을 맞잡은 이들이 최근 한국을 방문했다. 아시아 시장에 내놓을 신제품 디자인에 대한 영감을 얻기 위해서다. 7인의 디자이너는 서울의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며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1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의 한 호텔에서 7명의 디자이너를 만났다. 디자이너들은 이날 쌤소나이트코리아 관계자들과 만나 한국 시장에 내놓을 제품에 대해 논의를 하던 중이었다. 7명이 한데 어우러진 모습은 마치 해외에서 활동하는 다국적 혼성 팝그룹을 떠올리게 했다.

―패션 업계에서 보기 드물게 ‘팀’을 이뤘는데, 그 계기는 무엇인가.

“쌤소나이트라는 브랜드가 탄생한 지 올해로 104주년(1910년 등장)이 된다. 브랜드의 역사가 오래된 만큼 전통이 있지만 젊은 감각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와 관련해 올해 본사에서 세운 전략 프로그램 중 하나가 ‘유니콘 프로젝트’다. 감각적이고 유행에 민감한 제품을 만들어 젊은 고객을 끌어들이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를 위해 실력 있는 젊은 디자이너들을 영입해 한팀으로 활동하도록 한 것이다.”(마에다 노부오)

―7명이 한팀이 된 과정이 궁금하다. 함께 일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7명이라는 숫자에는 큰 의미가 없지만 디자이너들이 대규모로 모인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최근 쌤소나이트는 여러 브랜드(2012년 ‘하트만’과 ‘하이시에라’ 등)를 인수했는데, 그러다 보니 제품 디자인에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해졌다. 우리 7명 각자는 자기가 하고 싶은 디자인이 있고 개성도 다를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가방 시장에서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을 디자인해야 한다는 ‘공통의 목적’을 갖고 있다. 자유롭게 얘기하면서 의견을 맞추는 과정이 어렵지는 않다.”(헬렌 차)

이들 중에는 ‘이미 아는 사이’도 있었다. 영국 디자이너 번스 씨와 인도 출신의 카카 씨는 2005년 영국 가방 브랜드 ‘칼턴’에서 6개월간 함께 상품 디자인을 했다. 홍콩 출신 여성인 차 씨와 차우 씨는 현지의 유명 디자인 학교인 ‘홍콩 폴리타닉 유니버시티 스쿨’에서 상품 디자인을 함께 공부한 친구 사이다. 챈 씨는 이 학교의 1년 후배다. 이들은 지난해 5월 팀 출범 이후 현재 쌤소나이트 홍콩 지사에서 함께 근무하고 있다.

영국에서 온 번스 씨나 프랑스 출신 바롱 씨 등 유럽에서 활동하던 디자이너들은 홍콩으로 이사를 와야 했다. 두 사람 모두 아시아 지역에서의 생활은 처음이다. “집을 구하는 것이나 휴대전화를 개통하는 것 등 홍콩 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는 이들은 “제품을 디자인하는 데 유럽에서는 1년 정도의 시간을 주는 데 반해 아시아 시장에선 3∼6개월 만에 디자인을 해야 하는 등 업무 속도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하나의 제품을 만들기까지 이들은 ‘분업화’ 방식으로 디자인을 한다. 딱딱한 느낌의 ‘하드케이스’ 디자인은 바롱 씨가, 패션 소품들을 디자인하는 것은 챈 씨가 주로 맡는다. 차 씨와 차우 씨는 아웃도어 제품이, 번스 씨와 카카 씨는 남성용 제품이 전공 분야다. 이들의 협업을 거쳐 탄생한 제품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3일 우리나라에서도 시판된 ‘캡슐(Kapsule)’이다. 이 제품은 전체 틀은 견고하지만 운동화에 주로 쓰이는 나일론(필라멘트 단사) 소재를 사용해 무게를 가볍게 한 것이 특징이다.

―7명이 모여 만든 ‘디자인 혁신’의 실체가 궁금하다. 무엇을 어떻게 바꾸고 있나.

“여행용 가방 디자인에서는 그동안 기술적인 혁신에 초점이 맞춰졌다. 예를 들어 바퀴가 분리된다든지 지문 인식으로 가방을 연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이제는 이런 것들보다는 소비자의 생활 방식(라이프스타일)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식으로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 감성적인 경험이나 재미가 제품 디자인에 녹아 들어가야 한다는 뜻이다. 쌤소나이트 본사도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제품 마케팅에 우선순위를 뒀지만 지난해부터는 디자인부터 먼저 생각하는 분위기다. 이런 다국적 디자인팀을 만든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카미유 바롱)

쌤소나이트는 올해 6월 의자와 가방을 결합한 ‘마시멜로’ 제품을 한국을 시작으로 아시아 시장에 내놓을 계획이다. 마시멜로는 가방 앞부분에 엉덩이 홈이 있어 공항에서 줄을 서거나 기다릴 때 가방을 의자 대신 깔고 앉을 수 있다. 엉덩이 홈이나 컬러를 녹색으로 정한 것이나 모두 기존에 없던 스타일이다. 왜 많은 아시아 국가 중 한국에서 처음으로 제품을 내놓기로 했는지가 궁금했다. 즉각 다음과 같은 답이 돌아왔다.

“실용성을 강조한 제품이 북미 지역에서 인기라면 아시아 시장에서는 유행에 민감한 제품이 강세다. 그중에서도 특히 한국에서는 패션 지향적인 제품이 인기를 얻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한국에 온 것 아닌가. 유행이 빠르게 바뀌는 한국 시장을 경험하기 위해서 말이다.”(피터 번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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