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0월 안나푸르나 일주 코스의 무크티 나트까지 헬기로 올라 단독으로 200km 라이딩
2001년 티베트 라싸에서부터 네팔 카투만두 까지 1000km 산악자전거(MTB) 라이딩
2003년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까지 라이 딩 시도하여 로부체(4920m) 도달
2004년 8월 백두산 천문봉까지 라이딩
2005년 7월 투르 드 몽블랑 180km 완주
2006년 7월 투르 드 몽블랑 2차 그룹 라이딩 완주
2007년 에베레스트 쿰부 계곡 라이딩 시 도, 폭설로 실패
2011년 2월 카미노 데 산티아고 생장에서 사 아군까지 미니벨로로 절반 라이딩
2012년 2월 사아군에서 산티아고까지 MTB로 라이딩 마쳐 완주
2014년 5월 대만 타이중에서 화롄까지 240km 횡단 라이딩 산을 사랑하는 남자, 자전거를 사랑하는 남자 최영규 오디바이크 대표(58)가 그동안 했던 자전거 라이딩 일지다.
그는 산에 미쳐 산을 타다가 발가락을 잘라내는 부상을 당했고, 그 사고를 계기로 산악 자전거를 타게 되면서 국내 라이더 1세대가 됐다. 그가 개발한 국내외 라이딩 코스가 여럿이다. 17일 서울 강동구 성내동 오디바이크 사옥에서 최 대표를 만났다. 산이 맺어준 사업의 인연들
연매출 350억 원 규모의 탄탄한 아웃도어 회사 오디바이크의 전신은 최 대표가 1990년 1월 1일 설립한 ‘아웃도어 디자인’이다. 대학에서 섬유공학을 전공하고 코오롱스포츠 과장으로 일하던 30대 초반에 그는 다짐했다고 한다. ‘1980년대에 샐러리맨 생활을 했다면, 1990년대에는 내 사업을 해야겠다.’
고등학교 산악반 활동을 계기로 산에 빠졌던 그가 아웃도어라는 개념이 국내에 없던 시절 아웃도어 디자인을 차리자 사람들은 물었다. “그 회사, 문(door) 열쇠 만드는 회사에요?”
그러나 산이 맺어준 인연은 고비 고비마다 그의 사업을 도왔다. 산을 탈 때 마주치는 듬직한 느티나무와 소나무처럼. 대학 시절 암벽 탈 때 만났던 일본인 친구 덕분에 신생 브랜드 ‘몽벨’을 국내에 들여와 크게 성공했다. 다른 산 친구들 덕분에 미국 아웃도어 ‘폭스’와 ‘트렉’ 자전거도 들여와 팔았다. 사업 아이템이 줄줄이 열매를 맺었다. 요즘엔 대만의 인기 자전거 ‘메리다’의 공식 한국 수입원이다. 자전거가 남자에게 주는 자신감
그는 2000년 안나푸르나 일주를 약속했던 친구들이 여러 사정이 생겨 결국 홀로 산에 올랐다. 너무 힘들어 도중에 자전거를 팽개쳐 버리고 몸만 빠져나오고 싶은 순간이 많았지만 버리기엔 너무 비싼 자전거라 마지막까지 일주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2005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투르 드 몽블랑을 완주했다. 이 완주 후의 성취감은 마음먹으면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이어져 사업에 큰 힘이 됐다. 2011년엔 그동안의 어드벤처 라이딩에서 탈피해 천천히 길을 음미하는 라이딩으로 방향을 틀었다. 20인치 휠의 미니벨로를 타고 카미노 데 산티아고(산티아고 순례길)을 달렸다. 예상치 못한 난관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사람을 성숙시킨다는 것을 깨닫고 이후 회사 직원들이 입사 10년차가 되면 이 길을 홀로 가보는 규정을 만들었다.
그는 나이 60을 앞두고 새로운 꿈을 꾼다.
“오디바이크 사옥이 있는 강동구 일대를 자전거 문화 타운으로 만들겠어요. 자전거가 주는 자신감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요.”
오디바이크 사옥에서는 일반인 대상의 산악자전거 강습과 캠핑 시연이 진행되고, 각종 문화 공연도 열리고 있다. 장애인이 누워서 타는 세 발 핸드사이클도 후원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다가 사무실 벽면에 걸린 오디바이크 사훈 액자를 봤다.
‘열정, 창의, 도전.’
최영규라는 남자를 지금껏 만들고 앞으로도 나아가게 할 동력이리라. 자전거가 그에게 준 인생의 선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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