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자에게 자전거란 무엇일까.’ 도예작가 이헌정 씨, 안헌수 CJ그룹 부장, 남정우 필립스 팀장, 김영식 한화그룹 매니저가 동아일보 MAN섹션에 ‘남자, 자전거’에 대한 글을 보내왔다. 이달 초 이 씨는 딸과 함께 미국 서부를, 안 부장은 아들과 함께 우리 국토를 달렸다. 남 팀장과 김 매니저는 자전거가 남자의 인생길에 긍정적 에너지를 준다고 했다. 자전거는 남자에게 감각적이고 개인적이며 가정적인 요상한 매력을 주나보다. MAN 》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 나는 많은 설렘을 느꼈다. 이달 1∼14일 2주간 딸 열음이와 함께한 미국 서부 자전거 여행이다.
지난해 미국 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Cal Arts)에 입학하는 딸을 학교에 데려다 준 게 올해 여행의 발단이었다.
그때 가족과 함께한 여행은 20여 년간의 시간을 되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샌프란시스코 유학시절 태어난 딸을 데리고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등지를 여행하면서 그 시절 살던 집과 지인들을 방문했을 때 세월의 간극은 느껴지지 않았다. 동네의 모습이나 집의 상태도 그대로 그 자리에 존재하고 단지 나의 가족만이 시간여행을 해 온 듯한 기분이었다.
그런 느낌을 가지고 캘리포니아 101 해안도로의 절경인 빅서(Big Sur)를 운전하고 있을 때 나의 시야를 사로잡은 것은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라이딩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때 나는 아내와 딸에게 “우리 꼭 한번 자전거 라이딩 여행을 하자”고 선언을 했다.
나에게 자전거는 경기 양평에 살면서 누리는 가장 행복한 취미생활이자 건강을 지키는 수단이다. 예전에 자전거에 입문할 때엔 ‘스페셜라이즈드’ 산악 자전거를 타다가 2년 전 ‘캐논데일’ 산악자전거로 바꾸어 타고 있다. 자전거를 고를 때엔 무척 신중해서 열정적으로 검색한 후에 실제로 숍에 가서는 몸이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것으로 결정한다.
평소 아침부터 저녁까지 작업실에서 도예작업을 하다 보면 멍한 상태가 될 때가 있다. 이럴 때 나는 자전거를 타고 강가를 라이딩하면서 자연과 조우한다. 자연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손끝으로 느끼며 피부에 가까이 할 수 있는 시간을 홀로 즐긴다. 이런 나만의 시간은 다시 작품에 전념하게 하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여행에서 돌아온 후 나의 일정은 개인전, 아트페어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만 돌아갔다.
나는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자전거 라이딩 여행을 준비해 나갔다. 여행 준비를 하면서 구글맵으로 일정을 짜고 숙소를 정하고 여행에 참여할 인원도 알아보고. 이 과정 속에서 벌써 여행을 다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여행을 같이 할 사람 중 같이 먼저 떠오른 이는 딸 열음이었다. 딸에게 보다 많은 것을 보고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자전거 라이더의 성지인 모아브, 모뉴먼트밸리, 앤텔로프캐니언, 브라이스캐니언, 빅서 등으로 코스를 짰다. 인류 태초의 모습을 한 자연 환경 속에서 딸과 함께 자전거 라이딩과 트레킹을 하면서 거대한 자연의 모습에 다시 한번 경이로움을 느꼈다.
모아브 근처 아치스 국립공원에서의 자전거 라이딩은 내리막과 오르막의 길들이 우리의 인생살이를 이야기하는 듯했다. 나는 열음이가 자전거를 타면서 느낀 이런 경험들을 통해 인생의 그 어떤 상황들을 만났을 때보다 적극적으로 투쟁해 나가길 기대한다.
나는 고갯길을 올라갈 때 그 과정의 어려움과 고통보다는 앞으로의 내리막을 상상하면서 감내해 나간다. 빅서 해안도로에서 자전거 라이딩을 하며 오르막길에서 너무도 힘들고 고통스러웠지만 내리막에서 비로소 바다와 산과 바람이 나와 하나가 된 황홀한 기분을 맛보았다.
이런 자전거의 라이딩 과정은 나의 작품 제작 과정과도 유사하다. 작품을 제작하기 위한 절대적인 시간과 노동, 그 외 변수의 상황들은 때로는 나를 힘들게 몰아치지만 그럴 때면 나는 모든 일이 완성되었을 그때를 상상하며 이겨 나간다.
딸과 나는 여행을 하면서 앞으로 전개해나갈 서로의 작품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항상 어리게만 생각한 딸의 존재가 동반자, 때로는 보호자로서 훌쩍 커 있음을 이번 자전거 여행을 통해 깨달았다.
나에게 여행은 그냥 떠나는 것이 아니라 돌아올 곳에 대한 기대가 있어 더욱 즐거운 것이다.
::이 씨는 도자기와 콘크리트를 혼합한 가구, 찌그러진 달항아리 등 전통과 현대의 충돌을 꾀한다. 유명 할리우드 배우 브래드 피트, 미국의 설치미술가 제임스 터렐, 영국 건축가 노먼 포스터 등이 그의 도예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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