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자에게 자전거란 무엇일까.’ 도예작가 이헌정 씨, 안헌수 CJ그룹 부장, 남정우 필립스 팀장, 김영식 한화그룹 매니저가 동아일보 MAN섹션에 ‘남자, 자전거’에 대한 글을 보내왔다. 이달 초 이 씨는 딸과 함께 미국 서부를, 안 부장은 아들과 함께 우리 국토를 달렸다. 남 팀장과 김 매니저는 자전거가 남자의 인생길에 긍정적 에너지를 준다고 했다. 자전거는 남자에게 감각적이고 개인적이며 가정적인 요상한 매력을 주나보다. MAN 》
나는 마흔이 넘어 본격적으로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초보 라이더이다.
직장생활하며 특별히 운동할 시간이 없던 차에 2년 전 하이브리드 자전거를 하나 장만했다. 주말에 한강에 나가 경치도 보고, 사진도 찍고 작은 활력소가 되었다. 간혹 그 자전거를 타보던 아들이 어느 날 자전거를 사 달라기에 중고 로드 자전거(GTR5)를 사주었다. 아들은 그 자전거를 애지중지하더니 급기야 클릿신발에 장거리 여행용 페니어까지 구비했다.
아들이 중학교 2학년이던 작년 8월, 갑자기 “아빠, 나 국토종주 하기로 결심했어”라고 했다. 인천에서 부산까지 강을 따라 난 길을 종주하는 것인데 그 길이가 630km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줄다리기 끝에 결국 아들을 혼자 보내기로 했다. 혹시 몰라 자전거보험도 가입해주고 법적 효력이 모호한 여행 동의서도 써 주며 얼마간의 현금을 쥐여 주어 보냈다.
가다가 하루 만에 돌아오리라 생각했는데 아들은 4박 5일 만에 완주를 하고 돌아왔다. 그리고는 폭탄선언을 했다. “아빠, 한국이 정말 큰 나라야. 그런데 더 큰 나라에 가서 공부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어. 미국에 갈래.”
평소 떨어져 지내면 가족이 아니라고 생각하던 나의 고리타분한 사고에 아들의 한마디는 충격이었다. 차라리 자전거를 사주지 말걸 후회도 되었다. 작년 가을, 아들은 결국 미국 캘리포니아의 학교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다.
그 후 카카오톡으로, 스카이프로 연락하며 지내던 아들이 어느 날 “아빠, 방학해서 6월 초에 한국 가면 같이 국토종주 갈까?” 하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주말에 틈날 때마다 국토종주를 목표로 연습하고, 아라뱃길까지 가서 국토종주 수첩도 구입하고 정비공구, 예비타이어 등도 마련해 아들과의 동행을 준비했다. 집 근처 자전거대리점 사장님과도 절친이 되고 자전거 책도 여럿 사보게 되었으며 케이블채널의 ‘지로 드 이탈리아’ 같은 로드 레이싱 프로도 즐겨 보게 되었다.
드디어 아들이 온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약속처럼 떠났다. 직장일로 시간의 제약이 많아 국토종주 절반가량만 할 생각으로 떠났다. 국토종주 자전거길은 한적하여 가끔 나란히 가며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아마 평생 아들과 이야기한 시간보다 이때 이야기한 시간이 더 많지 않나 하는 생각에 반성도 되었다.
양평, 여주의 풍경은 차로 다니며 보던 풍경과는 너무 달랐다. 강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그 풍경은 그야말로 작품들이었다. 첫날 여주에서 1박을 하고, 둘째 날은 충주를 지나 힘겹게 문경새재를 넘었다. 5km의 업힐을 쉬지 않고 오르며 내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졌다. 아들은 아빠보다 10분 빨리 정상에 올랐다며 여유를 부리고 있었다. 셋째 날 낙동강을 따라가다가 구미에서 자전거를 접어 가방에 넣고 고속버스로 상경했다.
국토종주 시 초보의 평균속도는 시속 25km를 넘기 힘들다. 쉬는 시간, 맞바람 구간까지 감안하면 시속 15km 정도로 계산하면 좋을 것 같다. 부자지간, 혹 부부가 같이 종주하시는 분도 많았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아들과 자전거로 미국이나 유럽 일주를 해보고 싶은 꿈이 생겼다. 이번에 유럽 출장을 가게 되면 네덜란드 자전거 지도를 구입해 오려 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일주일에 한두 번이라도 자전거로 출퇴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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