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지 않은 사람들이 스파클링 와인을 샴페인(Champagne)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 샴페인은 프랑스 파리 동쪽에 있는 상파뉴(Champagne) 지역에서 생산한 스파클링 와인을 일컫는 말이다. 우리가 쓰는 샴페인이라는 표현은 상파뉴의 영어식 발음이 각국에 전파되면서 굳어진 것이다.
상파뉴 지역은 포도를 재배하기엔 평균기온이 다소 낮은 편이다. 하지만 이런 기후는 신맛이 강하면서도 독특한 맛이 나는 와인이 태어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이러한 상파뉴 지역의 대표적인 샴페인 하우스가 바로 ‘크루그(Krug)’다. 조셉 크루그는 1843년 이 지역에 샴페인 하우스를 세우면서 ‘샴페인을 통해 경험하는 최상의 즐거움’을 궁극적인 목표로 내세웠다.
샴페인으로 최상의 즐거움을 경험하라
상파뉴 지역에 있는 포도농장(cru)은 모두 319곳. 이를 좀 더 잘게 쪼갠 구획(parcelle)으로 따지면 총 27만5000여 개나 된다. 조셉 크루그는 포도밭 안에서도 구획에 따라 각기 재배방식이 조금씩 다르다는 점을 인식한 뒤 이를 생산 과정에 적용했다. 개별 구획의 포도를 조금씩 달리 관리해 최상의 맛을 내는 데 활용한 것이다.
샴페인의 핵심은 맛이다. 강렬함과 우아함이 적절한 대조와 균형을 이뤄야 조화로운 긴장감을 완성할 수 있다. 기포의 섬세함에서 느껴지는 풍미와 신선함, 다른 와인과 차별화되는 여운은 샴페인이 갖춰야 할 기본 미덕이다. 이러한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나는 대표작이 바로 ‘크루그 그랑 퀴베’다.
6대째 내려오는 장인정신
크루그 그랑 퀴베는 크루그 하우스의 시음단(tasting committee)이 매년 제일 먼저 준비하고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샴페인이다. 시음단은 약 400종의 베이스 와인을 2, 3회 반복해 맛 본 뒤 취합한 5000여 개의 시음노트를 토대로 이상적인 블렌딩 레시피를 만든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크루그의 샴페인 제조 과정을 보르도 지역의 특급 레드와인 제조 과정에 견주기도 한다. 최대 10여 가지 빈티지를 아우르는 120여 가지의 와인을 최종 선택해 블렌딩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크루그의 리저브 와인(reserve wine·양조장에서 가장 좋은 와인을 의미)은 최대 15년 숙성된 것이다. 또 대개 15개월 동안 숙성시키는 일반 논 빈티지 샴페인과 달리 크루그는 최소 6년의 숙성 과정을 추가로 거친다.
이러한 제조 과정을 통해 크루그 그랑 퀴베는 여러 빈티지의 블렌딩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독특한 풍미를 얻게 됐다.
세계적인 와인 전문잡지 ‘와인 스펙테이터’가 발표하는 샴페인 평가 점수에 따르면 크루그 하우스는 지난해까지 19년 연속으로 최고점을 받았다.
현재 크루그 하우스의 6대 계승자는 올리비에 크루그다. 그는 최근 아시아 시장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인 진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크루그 하우스는 아시아 고객들에게 최고의 와인을 선보이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나는 약속을 자주하지 않는 편이지만 망설이거나 지체 없이 약속할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크루그의 첫 모금을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올리비에 크루그)
▼크루그 그랑 퀴베 시음단 6명, 사고 우려 같은 비행기 안타▼ 크루그 하우스 샴페인에 관한 몇가지 팁
시음단(tasting committee)
‘크루그 그랑 퀴베’에는 100종 이상의 베이스 와인이 사용되지만 정해진 제조법이 없다. 대신 매년 전 세계에 흩어져 지내는 크루그 가문 사람들과 와인 메이커로 구성된 시음단이 모여 크루그 그랑 퀴베의 맛을 결정한다. 6명의 시음단은 매년 9월부터 그 이듬해 4월까지 400여 종의 와인을 시음한다. 이후 100여 종의 베이스 와인을 골라 매년 색다른 크루그 그랑 퀴베를 재창조한다. 시음단 6명은 함께 같은 비행기를 탈 수 없다. 불의의 사고로 제조법이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크루그 ID
샴페인 레이블에 적힌 6자리 숫자를 홈페이지(krug.com)에 입력하면 샴페인에 관한 간단한 소개와 함께 블렌딩에 쓰인 베이스 와인과 리저브 와인 수, 현재 마시고 있는 샴페인의 출시 연도 등 각종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크루그 그랑 퀴베
크루그의 ‘우주’라 불리며 크루그의 정신을 표현하는 샴페인. 와인 스펙테이터에서 97점을 받은 최고의 샴페인이다.
유럽에서는 특별한 날이면 “크루그 그랑 퀴베를 마시자”고 할 정도다. 간단한 요리부터 정교한 요리까지, 잘 숙성된 파르마산 치즈부터 생선 요리까지 다양한 먹거리에 잘 어울린다. 가격은 30만 원대.
크루그 로제
1976년 상파뉴의 여름은 예년보다 더 덥고 건조했다. 품질 좋은 포도가 대량으로 수확되자 당시 크루그 하우스의 5대 계승자 앙리 크루그는 실험적으로 로제 샴페인을 만었다. 이 제품이 세상에 선보여진 때는 1983년. 첫 로제 샴페인을 마신 이들은 “오랜 기다림이 헛되지 않았다”며 즐거워했다고. 거위 간(푸아그라), 양고기, 휜 살코기 등과 잘 어울린다는 평을 듣는다. 가격은 60만 원대.
크루그 빈티지 2000
지금까지의 크루그 빈티지 중 가장 강력한 캐릭터를 지닌 샴페인 중 하나. 세분화된 수백 여 곳의 포도밭에서 수확한 포도로 만든 베이스 와인을 사용했다. 10년 간 지하 저장고에서 인내의 시간을 거치면서 섬세함과 깊이를 더했다.
파인애플을 곁들인 졸인 관자, 구운 과일을 더한 디저트에 잘 어울린다. 가격은 40만 원대. 박창규 기자 k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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