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서슬퍼런 설악산 ‘칼바위 능선’ 리지등반, 떨리는 마음으로 내딛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7일 03시 00분


네파 아웃도어스쿨과 함께하는 속초 설악산 노적봉에서 암릉등반
‘한 편의 시를 위한 길’
이 낭만적 바윗길을 걸었다… 주변 절경에 탄성이 절로 난다

네파 아웃도어스쿨 참석자들이 설악산 노적봉에 이르는 능선을 오르고 있다. 길은 가파르고 때론 거대한 바위가 앞을 가로막지만 동료들을 믿고 꿋꿋이 한 걸음씩을 내딛는다.
네파 아웃도어스쿨 참석자들이 설악산 노적봉에 이르는 능선을 오르고 있다. 길은 가파르고 때론 거대한 바위가 앞을 가로막지만 동료들을 믿고 꿋꿋이 한 걸음씩을 내딛는다.
서울을 출발한 버스는 오후 1시 강원 속초중앙시장에 닿았다. 예상보다 도착이 조금 늦었지만 그래도 마음이 한결 가벼웠던 건 하늘을 가득 덮고 있던 회색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어떤 아웃도어 활동이 그렇지 않겠느냐마는 네파 아웃도어스쿨 시즌2, 그 네 번째 도전인 리지등반(Ridge Climbing·간단한 장비로 바위 능선을 타는 등반)처럼 날씨에 예민한 아웃도어 활동도 없을 테니 말이다.

암릉등반이라고도 부르는 리지등반은 말 그대로 바위로 이뤄진 능선을 타고 올라야 한다. 처음 리지등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땐 난생처음 접해보는 도전 앞에서 조금 걱정이 됐다. 중요한 건 두려움을 넘어서는 일이다. 그렇지 못하다면 평생 그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야 할 테니까.

리지등반은 일반 등산에 비해 분명 난도가 높은 산행이다. 사방이 트인 암릉 구간을 지나야 하고, 가끔은 직벽에 가까운 암벽도 올라야 한다. 특히 우리가 오를 설악산 노적봉의 ‘한 편의 시를 위한 길’에는 칼바위라 부르는 거대한 바위 봉우리를 옆으로 지나야 하는 코스도 포함돼 있다. 때문에 안전을 담보해줄 장비 사용법과 나름의 기술은 반드시 숙지하고 산행에 나서야 한다. 이번 산행에 네파 홍보대사이자 설악동산악구조대 대장이었던 전서화 대장이 동행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장비 사용법과 리지등반에 필요한 기술 교육은 산악구조대원들이 훈련장으로 사용하는 바위 구간에서 진행됐다. 리지등반에 사용되는 개인장비는 로프와 헬멧 그리고 카라비너(로프를 연결하기 위한 고리)와 하강 시 속도 조절을 도와주는 8자 모양의 하강기 정도다.

기본 훈련은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카라비너와 8자 하강기의 사용법을 익히는 것에서 시작한다. 단순해 보이는 장비들이지만 처음 접하는 사람에겐 안전벨트를 착용하는 것부터가 만만치 않다. 탈착 식으로 이뤄진 안전벨트의 잠금 부위를 고리에 다시 한 번 돌려 끼워야 한다거나, 카라비너의 개폐 부위는 로프 연결과 동시에 반드시 잠가야 한다는 등의 설명이 이어질 때마다 참가자들의 눈은 교실에 앉아있는 학생들처럼 반짝거렸다.

헬멧과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됐다. 30여 m는 족히 돼 보이는 바위 구간은 올라서는 것만으로도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었다. 보조 강사진들이 안전 줄로 사용할 로프를 설치하는 동안 전서화 대장은 안전의 중요성을 다시 강조했다. 카라비너의 잠금 상태, 8자 하강기의 사용법 등등. 하지만 무엇보다 가슴에 와 닿았던 말은 동료를 믿고, 강사를 믿고 무엇보다 스스로를 믿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강훈련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로프를 잡고 있는 강사를 믿고 몸을 뒤로 누일수록 몸은 아래로 내려갔다. 하강 속도는 뒤로 뻗은 손의 힘을 이용해 조절했다. 살짝살짝 로프를 풀어주다가 속도가 조금 빨라진다 싶으면 로프를 꽉 쥐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오르는 건 또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손을 짚을 곳이라고는 보이지 않는데, 그곳을 맨손으로 오르라니. 이건 도저히 사람이 오를 수 있는 곳이 아닐 성싶었다.

그래도 포기는 없다. 일단 바위에 몸을 바짝 붙이고 손을 뻗어 잡을 곳을 찾아보지만 쉽지가 않다. 머릿속에선 ‘상체를 세우고 팔이 아닌 발의 힘으로 올라야 한다’는 전 대장의 설명이 맴돌았지만 상체는 자꾸 앞으로 쏠렸고, 발보다는 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그렇게 몇 번을 미끄러지고 떨어지는 사이, 몸은 조금씩 바위에 적응해 가고 있었던 모양이다. 팔을 뻗어 상체를 세우고 발끝에 힘을 줘 몸을 조금씩 위로 밀어올리기 시작했으니까. 매끈하게만 보이던 바위 면의 작은 돌기들이 보이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었던 것 같다.

그 작은 돌기들을 딛고 쥐고 정상에 오르는 데에는 제법 많은 시간이 필요했지만 어쨌든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고작 바위 하나 오르고 자신감을 이야기하기는 그렇지만 다음 날 본격적인 산행을 앞두고 암벽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었다는 것만도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결전의 날. 기초훈련장에서의 경험은 정말 많은 도움이 됐다. 리지등반의 ‘ㄹ’자도 모르던 내가 서슬 퍼런 칼바위 능선을 올려다보면서도 ‘한번 해보자’는 마음이 들었으니 말이다. 헬멧과 안전벨트를 착용한 뒤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설악동 ‘한 편의 시를 위한 길’은 비룡교 지나 만나는 출발점부터 노적봉(716m)까지 모두 여덟 개 피치(Pitch)로 이뤄져 있다. 7∼8시간은 족히 걸리는 코스. 하지만 우리는 여러 정황을 고려해 다섯 개의 피치를 지나 만나는 탈출로까지만 다녀오기로 했다.

길은 시작부터 가파르게 이어졌다. 가끔은 흙길이, 또 가끔은 거대한 바위가 앞을 가로막고 섰지만 전날의 기본훈련을 통해 쌓은 자신감 때문이었을까, 누구 하나 어려워하지 않았다. 서로를 위하는 동료애도 큰 힘이 됐다. 경험이 많은 참가자들은 자진해서 로프를 어깨에 멨고, 힘이 부치는 여성 참가자를 위해 자신의 배낭을 내려놓고 기꺼이 손을 내밀었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이어가는 사이 발아래로 설악동 일대의 비경이 펼쳐졌다. 보는 것만으로도 ‘와’ 하는 탄성을 자아내는 그 풍경의 중심에 남성미 물씬 풍기는 울산바위가 있었고, 실타래를 풀어놓은 것같이 허연 물을 연신 토해내는 소토왕골 폭포가 있었다. 소나무 군락의 모습도 절경 중 절경이었다.

노적봉 북면이 보이는 다섯 번째의 피치 구간으로 접어들었다. 출발점에서 본 칼바위가 시작되는 곳이다. 이제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었다고 생각했는데, 이곳에선 다시 한 번 짧은 좌절을 맛봐야 했다. ‘이건 길이 아니야’라며 헛웃음을 터뜨리던 한 참가자의 탄식으로도 그 막막함을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을 듯싶다. 정말 그랬다. 그곳은 길이 아니었다. 시작부터 꽤 많은 바위구간을 지나왔지만 바위 봉우리의 측면을 따라 이동해야 하는 칼바위 구간은 전혀 다른 마음가짐을 요구했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위에서 끌어주는 강사들의 도움을 기대할 수 있었지만 이번만은 스스로의 힘으로 헤쳐 나가야 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한동안 잊고 있던 고소 공포까지 다시금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한데, 신기한 건 막상 그 거대한 두려움 속으로 첫발을 내딛는 순간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던 온갖 잡념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이다. 자신감. 그건 그리 멀리 있거나 거창한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산이 되었든 인생이 되었든 첫발을 내딛는 그 순간이 중요하다. 그러면 모든 두려움은 극복할 수 있는 현실이 되어 버리니까. 미래의 일을 걱정하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그 단순한 진리를 이번 리지등반을 통해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극복하지 못할 두려움은 없다. 내가 지금 발아래 내려다보고 있는 저 칼바위처럼.

네파 홍보대사 전서화 대장이 전하는 초보 가이드

1. 철저한 준비운동

리지등반은 일반 산행과 달리 평소에 사용하지 않은 근육을 이용하기 때문에 추운 겨울에는 충분한 준비운동과 스트레칭으로 근육을 이완시킨 뒤 시작해야 한다.

2. 리지등반에 적당한 등산화를 신자

암벽구간을 올라야 하는 리지등반에서 가장 중요한 장비는 등산화다. 일반 등산화와 리지등산화는 깔창의 구조와 재질에 차이가 있어 접지력이 다르다. 안전을 위해서라도 리지등반 시에는 전문 리지화를 착용하는 게 좋다.

3. 철저한 장비관리를 통한 안전산행

리지등반에는 많은 장비가 사용된다. 특히 안전과 직결되는 로프의 관리가 중요하다. 등반 시 로프를 가급적 밟지 말고, 카라비너의 잠금장치 등도 제대로 작동하는지 수시로 체크해야 한다. 또 자신의 체력을 고려해 루트를 선정하고 휴식 시에는 반드시 보온 의류를 착용해 저체온증이 생기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네파 아웃도어스쿨 시즌2▼

여섯 번 째 여정은 ‘Touring Ski’입니다. 네파 익스트림팀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박경이 강사와 함께 2015년 1월 24∼25일, 강원도 대관령 산양목장 일대에서 진행됩니다. 쉽게 접해 볼 수 없는 산악스키 프로그램을 통해 겨울철 아웃도어의 대표 종목인 스키의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참가 희망자는 네파 아웃도어스쿨 홈페이지(school.nepa.co.kr)를 통해 2015년 1월 18일까지 신청하면 됩니다. 선발 인원은 10명입니다. (6번째 프로그램의 장소는 진행시기의 적설량에 따라 바뀔 수 있습니다.)

네파 아웃도어스쿨

매월 각 분야 최고 전문가와 함께 아웃도어 라이프를 체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school.nepa.co.kr)를 참조하세요.

글·사진=정철훈(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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