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가의 성인’으로 평가받는 존 보글의 ‘인덱스펀드 비교우위론’이 현실에서도 입증되고 있다.
자산 운용 전문가인 펀드매니저가 시장 평균 수익률보다 높은 수익률을 올리려고 적극적으로 운용한 펀드(액티브 펀드)의 성과가 코스피200 등 특정 지수를 추종해 지수 상승률만큼의 수익률을 추구하는 패시브펀드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난 것.
보글은 1974년 뱅가드그룹을 설립해 다음해 세계 최초로 인덱스펀드를 개발 보급한 투자계의 거장. 그의 투자 철학은 한마디로 “건초더미에서 바늘을 찾으려 하지 말고 건초더미 전체를 사라”는 주장에 담겨 있다. 높은 수익률을 올리는 특정 주식이나 펀드(바늘)를 찾으려 하지 말고 광범위하게 분산된 포트폴리오(건초더미)를 매수하라는 얘기다.
최근 글로벌 펀드 평가 회사 모닝스타의 한국 법인 모닝스타코리아가 개최한 ‘액티브 대(對) 패시브’ 포럼에서 이봇슨 어소시에이츠(모닝스타의 자회사) 일본 법인 야마구치 가츠나리 회장은 보글의 주장을 입증하는 조사 결과를 발표해 주목을 끌었다. 야마구치 회장에 따르면 한국과 일본에서 액티브펀드는 패시브펀드에 뒤진 투자 성과를 보였다.
야마구치 회장은 2007년 7월부터 올 7월까지 운용된 펀드 가운데 총보수비용과 성과 정보가 있는 액티브펀드 713개(한국)와 402개(일본)를 분석 대상으로 삼았다. 6월 말 기준 이들 펀드의 과거 1년, 3년, 5년, 10년 수익률은 각각 패시브펀드에 비해 저조했는데 한국은 그 정도가 더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령 한국의 경우 1년 수익률이 패시브펀드 평균보다 좋은 액티브펀드는 8.2%에 불과했다. 반면 일본은 이 비율이 30.9%로 한국보다는 높았다. 3년 수익률의 경우도 패시브펀드보다 더 좋은 성과를 보인 액티브펀드 비율이 각각 44.0%(일본, 22.3%(한국)였다. 각 기간별로 패시브펀드보다 성과가 좋은 액티브 펀드는 10개중 각각 3~5개(일본), 2~3개(한국)였다.
상대 수익률(액티브펀드 수익률에서 패시브펀드 수익률을 뺀 수치) 역시 한국이 일본에 뒤졌다. 한국은 최근 1년 간 액티브펀드 수익률이 패시브펀드보다 평균 10.23%포인트나 낮은 반면 일본은 2.73%포인트 낮았다. 한국의 경우 3년, 5년, 10년 수익률 역시 액티브펀드가 패시브펀드보다 각각 2,28%포인트, 0.85%포인트, 0.87%포인트 낮았다.
야마구치 회장은 이날 “한국이나 일본보다 자본시장 역사가 긴 미국에서는 이는 이미 검증된 결과”라고 말했다. “미국 시장에서는 평균적으로 액티브펀드보다는 패시브펀드가, 액티브펀드 중에서는 총보수비용이 낮은 저비용 펀드가 고비용 펀드보다 높은 성과를 내는 경향이 있다”는 것.
야마구치 회장의 발표 내용은 보글의 주장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보글은 액티브펀드의 경우 패시브펀드보다 더 높은 운용 보수, 적극적 운용에 따른 포트폴리오 거래 수수료 등 총보수비용이 장기적으로 수익을 갉아먹기 때문에 패시브펀드보다 불리하다고 강조한다. 보글의 주장에는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경제학자 폴 새뮤얼슨도 동의한다.
당연히 세계 펀드 시장에서 자금은 패시브펀드로 꾸준히 이동해 왔다. 모닝스타코리아 리서치 담당 정승혜 이사는 “2006년 미국 펀드 시장의 16%를 차지한 패시브펀드는 지난해 36%로 성장했다”면서 “5년 후엔 패시브 자산이 절반에 육박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투자자들이 비용 대비 성과에 그만큼 더 민감해진 결과라는 것.
한국 역시 인덱스펀드의 일종인 ETF(상장지수펀드, 주식시장에 상장된 인덱스펀드)가 꾸준히 성장해 왔다. 2002년 10월 국내 증권시장에 처음 상장된 ETF의 순자산가치는 10월 13일 기준 30조3774억원으로, 15년 만에 88.26배나 늘어났다. 액티브 주식형펀드가 2009년 말 순자산액 61조8000억원에서 현재 27조6000억원으로 크게 감소한 것과 대비된다.
물론 야마구치 회장의 발표나 보글은 주장은 ‘과거’ 펀드 수익률을 근거로 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과거 실적이 미래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워런 버핏 같은 투자의 대가도 장기간에 걸쳐 주기적으로 인덱스펀드에 불입하는 투자 방식을 추천하는 만큼 한번쯤 귀를 기울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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