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얻는 행운은 없다. 최근 ‘자주’ 보이는 배우 김원해(47)가 누리는 인기도 그저 생긴 게 아니다. 1991년 뮤지컬로 데뷔해 10년간 넌버벌 퍼포먼스 ‘난타’로 세계 무대를 누비고, 다시 대학로 극단으로 돌아가 연극에 몰두한 그는 최근에야 대중에 각인되고 있다. 배우로 살아온 지 꼭 25년 만이다. 김원해가 출연한 영화 ‘아수라’는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출연 중인 tvN 드라마 ‘혼술남녀’도 인기다.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을 통해서는 10∼20대 팬까지 사로잡았다. 모든 상황이 그의 ‘전성기가 도래했다’고 알리고 있다. 곡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배우를 관두겠다고 마음먹고 아내와 김밥장사를 한 적도 있다. “백수나 다름없이, 매일 아침 아내에게 1만원 받아 PC방을 전전하던” 때도 있다. 그래도 무대와 카메라를 떠날 수 없었다. ‘아수라’의 200만 관객 돌파 소식이 전해진 뒤 4일 오후 김원해를 만났다. “얼마 전 장만한 맞춤양복”이라며 매끈한 슈트를 입고 나타났다.
- 드라마 ‘시그널’부터 영화 ‘아수라’까지 연이어 인기다. 올해 유독 기운이 좋다.
“주변 반응에 사실 큰 감흥이 없다. 10년만 젊었다면 모를까. 지금은 (인기보다)중요한 가치가 따로 있으니까. 송사에 휘말리지 않고 고비를 잘 넘겨야지 싶다. 하하! ‘기대주’니, ‘이제 네 차례’니, 그런 말을 20년 가까이 들으면 나처럼 무감각해진다.”
- ‘아수라’ 속 모습은 우리가 알던 김원해가 맞나 싶을 정도다.
“원래 내 역할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아수라’가 제작되는 걸 관심 있게 지켜보며 부러워하고 있었다.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역할이 공석이 됐고, 황정민이 제작진에 나를 추천해줬다. 그렇게 오디션 기회를 얻었다.”
김원해에게 ‘아수라’의 김성수 감독은 “젊은 시절의 로망”이다. “연봉 60만원 받던 연극배우”이던 시절에 본 김성수 감독의 ‘비트’, ‘태양은 없다’가 그를 사로잡았다.
원래 김성수 감독은 몸집이 큰 배우를 구상하고 있었다. 마른 체형의 김원해와 이미지가 정반대다. 그래도 어떻게든 역할을 따내고 싶었다. 영화사 사무실을 자주 찾았고, 거기서 고민 없이 머리카락까지 ‘밀었다’. 마약중독자라는 설정에 맞춰 손톱과 발톱을 5개월 동안 자르지 않았다. 김원해는 “발톱이 너무 길어 잠 잘 때 아내 다리를 긁어 상처까지 냈다”고 했다.
“김성수 감독님과 작업은 마치 대학생 때로 돌아가 교수님을 모시고 기말고사 준비하는 기분이었다.(웃음) 영화사에 계속 불려갔다. 신기한 건, 갈 때마다 그 곳에 정우성이 있더라. 대사까지 다 맞춰주는 정우성을 보니까, 그래서 ‘충무로 천사’라고 불리나 싶었다.”
- 정우성에게 얼굴을 가격당하는 장면은 보기에도 아찔하다.
“영화에서 10대쯤 맞으면 실제 촬영에선 200대 정도 맞는다고 보면 된다. 감독님이 진짜처럼 보이길 원했다. 액션에는 타협과 양보가 없다. 많이 맞았다. 입 안이 피범벅이 됐다. 아내가 보더니 누가 그랬냐고 묻더라. 우성이한테 맞았다고 했더니, 정말 정우성에게 맞았냐면서…, 좋아하더라. 하하!”
- 김원해에게 황정민은?
(대학 선후배 사이인 두 사람은 영화계에서 손꼽히는 우정으로 똘똘 뭉쳤다. ‘히말라야’부터 ‘검사외전’, ‘아수라’는 물론 뮤지컬 ‘오케피’를 함께 해왔다.)
“내가 88학번, 황정민이 90학번이다. 황정민이 먼저 극단 학전에서 공연을 시작했고 그 뒤에 내가 합류했다. 황정민의 아내(뮤지컬제작자 김미혜)와도 1991년부터 친하게 지내왔다. 그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군함도’에도 잠깐 출연하게 됐다. 옆에서 본 황정민은 괴물이다. 치열하고 치밀하게 준비하는 그 과정을 보고 새삼 존경하게 됐다. 나는 아직 멀었지.”
- 25년간 연기하며 고비는 없었나.
“한 번. 29살부터 39살까지 했던 ‘난타’ 공연을 2008년 즈음 끝냈다. 오래 했고, 애착도 컸다. 청춘을 다 쏟아 부었으니까. 에너지를 다 썼다. 관두고 나니까 내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난타’가 세운 브로드웨이 진출이니, 1000만 관객이니 그런 화려한 기록도 내 것이 아니다. 허탈했다. 관두고 장사했다. 한 1년 동안 김밥 팔았다.”
- 어떻게 털고 일어났나.
“3살 아래의 연극연출가 윤정환이 있다. 장사하느라 바빠서 전화를 못 받다가 받았더니 한껏 취해서 욕을 하더라. ‘김원해가 왜 김밥 말고 있느냐’고, ‘배우 아니냐’고. 그 말을 듣고 올라오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윤정환과 손잡고 연극 ‘짬뽕’을 올렸다. 5·18 광주 이야기를 다룬 작품인데 10년 동안 하고 있다. 올해 6월에도 했다. 이번엔 김혜수가 보러 왔다. 김혜수가 와주다니!”
김원해는 “나를 수렁에서 빼준 사람은 윤정환, 나를 알려준 사람은 장진 감독”이라고 했다. 그는 2011년부터 장진 감독이 연출한 케이블채널 tvN의 ‘SNL코리아’에 참여하며 얼굴을 알렸다. 3년간 함께 했다.
- ‘SNL코리아’에서 보여준 깐족대는 연기는 정말 최고다.
“어떤 연기라도 그 끝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니까. ‘SNL코리아’ 속 모습으로 내 이미지가 굳어지는 게 아닌가, 그런 걱정은 한 번도 안했다. 맡은 역할의 끝을 표현하는 게 목표다.”
- 신기하게도 악성 댓글이 없는 배우다.
“기대치가 없어서 그렇지 뭐. 하하! 연기를 스무살 무렵 시작해 지금까지 해왔는데 나라고 왜 질투가 없겠나. 잘 되는 사람들이 왜 부럽지 않겠나. 내게도 ‘한’이 서려 있다. 요즘 여러 작품에 참여할 수 있어서 행복하지만 한편으론 내 심장에는 ‘한’과 ‘부러움’이 있다. 절실함이 커 ‘이러다 화병 나는 것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나를 불러주면 정말 잘 할 수 있다. 그런 오기가 생긴다.”
- 연극배우 출신답지 않게, 술을 마시지 못한다는데. 사실인가?
“잘 마시게 생겼지? 한 잔도 못한다. 술 대신 커피 마시며 수다 떠는 20년지기 친구들이 있다. 한때 우리는 ‘술 못 마셔 성공 못하나’ 그런 생각도 해봤다. 하하! 술자리 잘 따라다니는 녀석들도 있지만 그렇게 해도, 잘 될 놈은 되고 안 될 놈은 안 되더라.”
김원해는 ‘기러기 아빠’다. 고교 1년생과 중학 1년생인 두 딸을 지난해 아내와 함께 캐나다 벤쿠버로 보냈다. 좋은 환경에서 공부시키려는 목적이 아니라고 했다. “공부가 전부가 아닌 환경에서 각자 원하는 진짜 행복을 찾게 하려고” 내린 결정이다.
- 딸이 연기를 하겠다고 하면, 허락할 수 있나.
“무조건 허락한다. 아이들에게 ‘안돼’, ‘하지 마’ 같은 말은 안 한다. 다른 집에선 우리 가족을 실험적으로 쳐다본다. 한 번은 작은 아이가 캠핑 때 쓰는 슬리핑백을 집 거실에 펼쳐놓고 들어가서 3일 내내 나오지 않고 스마트폰만 들여다 본 적이 있다. 그만하라고 하지 않았다. 딸이 행복해 하는데 ‘그만 하라’고 말한 뒤에 부모가 어떤 대안을 줄 수 있을까. 내가 PC방 전전할 때, 나를 걱정한 건 우리 어머니였다. 그때도 아내는 어머니께 ‘바쁘면 가고 싶어도 못 가니 놔두자’고 했다.”
- 캐나다에 있는 가족을 위해 ‘다작’을 하는 건 아닌가.
“그렇지 않다. 작품으로 만난 인연, 내가 어려울 때 찾아준 사람들을 외면할 수 없잖아. 배우는 수동적이다. 나는 들어오는 것 위주로 연기하기 바쁘다. 또 모르지. 모험 즐기는 감독이 나를 캐스팅해서 멜로 주인공으로 쓸 수도. 연기 안 했으면 어쩔 뻔했을까. 내가 정우성과 한 스크린에 걸릴 줄 누가 알았겠어?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