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라도 문단 스스로 표절기준과 처벌규정 만들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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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10인이 말하는 문학 표절 원인과 근절 방안
등단부터 기성작가로 성장과정서 사적관계로 묶여 의혹에 눈감아
문학상과 작품연재-책출판 통한 대형출판사와 ‘밥벌이 동거’도 한몫
표절백서 제작 도덕성 제고 필요… 과도한 출판 상업주의도 반성해야

《 소설가 신경숙 씨(52)의 표절 논란이 확산되는 추세다. 현택수 한국사회문제연구원장이 지적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18일 신 씨를 검찰에 고발하자 문학계는 “문단 내부에서 해결할 일”이라며 고발 철회를 주장했다. 한국작가회의와 문화연대는 문단의 자정능력을 강조하며 23일 ‘표절사태와 한국문학권력의 현재’라는 주제로 긴급 토론회를 개최한다. 시인 이종섭 씨는 페이스북에 “작가회의를 탈퇴했다. 가망성이 없다”고 문단에 대한 실망을 밝히기도 했다. 표절에 대한 명확한 기준과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동아일보는 19∼21일 문단과 출판계, 저작권 전문가 10명으로부터 문학작품 표절의 근본적 원인과 근절을 위한 제언을 들었다. 》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 진열된 소설가 신경숙 씨의 작품들. 최근 신 씨 작품 중 표절 논란이 불거지면서 문학작품에 대한 표절 기준과 처벌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 진열된 소설가 신경숙 씨의 작품들. 최근 신 씨 작품 중 표절 논란이 불거지면서 문학작품에 대한 표절 기준과 처벌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 문단 내 카르텔, 전무(全無)한 표절 기준이 근본 원인

전문가 10명 중 절반 이상이 국내 문학계에 표절이 끊이지 않는 원인으로 신인 작가로 등단해 기성 작가로 자리 잡는 과정의 폐쇄성을 꼽았다.

계간 ‘작가세계’ 편집위원 박철화 씨(50)는 “과거에 사과하고 인정했다면 이런 사달도 나지 않았을 텐데”라며 ‘문단의 닫힌 구조’를 이야기했다. 그는 1999년 작가세계 가을호에서 신 씨의 소설 ‘작별 인사’가 일본 작가 마루야마 겐지의 ‘물의 가족’을 표절했다며 처음으로 신 씨에 대한 표절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당시 출판사들이 철저하게 신 씨를 감싸면서 이런 의혹이 묻혔다는 게 박 씨의 주장이다.

실제 황석영 등 원로작가부터 유력 문학상을 수상한 권지예, 조경란까지 그동안 문단에서는 유명 작가들의 표절 시비가 여러 차례 있었다(표 참조). 하지만 문단 내부에서만 시끄러웠을 뿐 작가가 부인하고 출판사가 보호해 금세 묻혔다. 출판인 A 씨는 “작가가 되려면 대형 출판사나 신춘문예 같은 좁은 관문을 뚫어야 하는 ‘문학 고시생’이 돼야 한다. 등단 후엔 선후배, 선생과 제자로 묶이면서 서로에 대한 비판이나 표절 의혹에 눈감게 된다”고 지적했다.

또 등단 후엔 창비,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 등 문학 메이저 출판사의 계간지 등에 작품을 연재하고 책으로 묶어 출판해야 ‘밥벌이’가 가능하다. ‘뜨는’ 작가가 되려면 대형 출판사의 편집위원, 평론가가 ‘하사’하는 ‘주례사 비평’과 문학상도 필요하다. 소설가 B 씨는 “많은 작가들이 ‘신경숙은 가더라도 출판사 권력은 영원하다’며 출판사에 밉보이지 않으려 한다”고 했다.

문학평론가인 권성우 숙명여대 교수는 20일 페이스북을 통해 최근 문학동네 편집위원 신형철 권희철 씨가 신 씨를 비판한 것에 대해 “대세에 밀린 사후약방문이다. 창비 이상으로 문학동네의 책임이 크다. 문학동네 지면을 통해 이뤄진 신경숙 소설에 대한 글과 대담, 리뷰는 상당 부분이 확대 해석, 문학적 애정 이상의 과도한 의미 부여였다”고 밝혔다.

표절을 구분하는 명확한 기준이 문학계 내에 존재하지 않는 점도 지적됐다. 한국저작권위원회 김찬동 법제연구팀장은 “‘몇 개 단어, 문장이 겹치면 표절’이란 구체적 기준이 국내 저작권법 조항에는 없다”며 “저작권 침해 여부는 법원에서 원저작물을 봤을 가능성을 의미하는 ‘의거성’과 두 작품의 ‘실질적 유사성’을 기준으로 상황에 따라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음악계와 학술계 등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자체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표절 문제에 대처해 왔다. 음악계는 핵심 부분 두 소절(8마디)이 똑같을 경우, 학계는 여섯 단어 이상의 연쇄 표현이 일치하거나 명제 또는 데이터가 유사한 경우 등을 표절로 인정한다는 기준이 마련돼 있다. C출판사 편집자는 “문학계는 작품 표절에 대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조차 없다. 문단도 표절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 “문인윤리조사위원회서 백서 만들자”

본보의 제언 요청에 응한 전문가들은 ▽대형 출판사의 지나친 이기주의 버리기 ▽문단의 도덕성 높이기 ▽표절에 관한 명확한 기준과 처벌규정 마련하기 ▽표절 문제에 대한 백서 제작하기 등을 제시했다.

박철화 작가세계 편집위원은 “신 씨의 잘못도 있지만 대형 출판사의 상업주의부터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베스트셀러 유명 작가의 표절 문제니까 용서해주겠단 생각은 문단의 낮은 도덕 수준을 보여준다”며 “정치인도 자기 표절로 낙마하는 시대에 문단만 사회의 양심 기준을 못 따라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명원 경희대 교수는 “연구윤리규정이 있는 학술계처럼 문학계도 법률가 등을 참여시켜 명확한 윤리강령과 처벌규정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가칭 문인윤리조사위원회를 만들어 지금까지의 표절 행위를 종합적으로 담은 백서를 제작해야 한다”고 밝혔다.

박훈상 tigermask@donga.com·김윤종 기자
#문단#표절기준#처벌규정#카르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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