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프랑스의 저명 언론 르몽드, 르피가로 등에서 소설가 신경숙 씨가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 일부를 표절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언론은 표절 여부에 관해 어떤 의견도 표명하지 않은 채 표면화된 사실만 기사화했다.
프랑스 및 해외 언론에서 이를 기사화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한국문학이 이제 세계 문학의 장에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어느 나라의 문학계 전체를 동요시킬 만한 중대한 사안일지언정 프랑스의 저명 언론이 생소한 문학을 하는, 이름도 모르는 작가에게 지면을 할애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랬다면 일말의 관심도 끌지 못하고 흘려버렸을 일이다. 논란의 주제가 안타깝긴 하지만 프랑스에서 한국문학의 기반도 견고하기에 한국문학 작품의 수용에 타격을 주진 않을 것이다.
1990, 2000년대 한국문학이 프랑스에서 처음 주목을 받았고, 2010년대 새로운 작가들이 등장해 새로운 면모의 한국문학을 소개했다. 이후 젊은 작가들의 작품도 프랑스에 선을 보이고 있다. 2009년에는 신경숙 씨, 2014년에는 소설가 김애란 씨가 프랑스의 한 문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도 안았다. 명성에 걸맞은 판매부수를 올리진 못해도 최근 몇 년 사이 프랑스에서 한국문학은 중국, 일본 문학에 견주어 자신만의 고유한 자리를 점유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문학이 프랑스를 포함해 세계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꼭 필요하다.
먼저, 작가의 진정한 작업의 소산이라는 이미지를 줄 수 있는 문체로 주목을 끌 만한 훌륭한 작품들이 계속 나와야 한다. 하나의 소설이 주목을 받으려면 좋은 줄거리만으론 부족하고, 반드시 뛰어난 문학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또한 번역된 한국문학 작품을 읽을 때 해외 독자들은 작가와 번역가의 작업을 그 작품 안에서 느끼고자 한다. 그뿐만 아니라 한국 작품에서는 한국적인 것을 느끼고자 한다. 이러한 점에서 어느 나라 문학에서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의 보편성은 틀림없이 커다란 ‘위험’을 낳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보편적인 소재를 다룬 작품을 모국어나 모국어와 같은 어족(語族)에 있는 언어로 충분히 읽을 수 있는데 굳이 번역된 한국 작품을 읽을 이유가 있을까? 바로 이 점이 현재 한국문학이 도전해야 할 큰 과제 중 하나일 것이다.
한편, 해외의 한국문학 번역가들, 출판 관계자 및 한국학 교수자들은 현지에서 한국문학에 대한 인식의 결핍을 줄이는 일에 보다 적극적이어야 할 것이다. 질 높은 번역, 출판 후 한국문학 전체를 포함한 해당 작품의 홍보, 작가와 해외 독자들과의 활발한 만남, 현지에서의 한국 작품 연구, 한국 문학 교육 등이 절실히 요구된다.
해외에 있는 우리 한국문학 번역가 및 그 관계자들은 한국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연결고리를 계속 만들어 나갈 것이다. 한국의 한 저명한 비평가는 한국문학에 대한 ‘욕망’이 필요하다고 했다. 여기에 나도 한마디 덧붙이고 싶다. 여러분들의 한국문학에 대한 ‘사랑’도 필요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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