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머리카락이 많이 자랐음을 과장되게 표현한 것으로 굴원(屈原) 이후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평가받는 시선(詩仙) 이백의 시구에 나온다. 이백은 시성 두보와 더불어 중국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천재 시인으로, 스스로 취선옹(醉仙翁)이라고 했다. 그도 자인하듯 미치광이요, 사귄 친구만 해도 400명을 헤아린다니 호방한 성격에서 우러나온 낭만주의적 시풍이 주요한 특색이다. 하지만 서정적인 필치로 섬세한 내면을 오언절구로 남긴 사례도 적지 않다.
‘추포가(秋浦歌)’가 그러하다. 추포가는 본래 15수의 연작시다. 만년(쉰다섯 살)에 영왕(永王) 이린(李璘)의 거병에 가담한 죄로 유배됐다가 다시 사면돼 동쪽으로 와서 지었다. 모든 시행이 애수에 젖어 있는데, 추포가의 열다섯 번째 작품이 이것이다. “백발 삼천 장/시름 때문에 이처럼 자랐나니/알 수 없구나/밝은 거울 속의 몰골은/어디서 가을 서리 맞았는지(白髮三千丈, 緣愁似箇長, 不知明鏡裏, 何處得秋霜).” ‘삼천장(三千丈)’이란 시어에서 보듯 시인은 거침없는 과장법을 사용해 내면의 시름을 단적으로 표현한다. 흰빛 가을 서리로 ‘백발’의 자아를 대변하며 노년의 슬픔을 노래하고 있다. 여기서 ‘백(白)’자에는 슬프고 초췌한 감정적 색채가 스며 있다. ‘사개(似箇)’란 시어는 ‘여차(如此)’의 구어적인 표현으로, ‘이처럼’, ‘이와 같이’라는 의미다. 이 작품의 시안(詩眼), 즉 시의 눈은 ‘득(得)’자다. ‘得’은 작자가 반평생 받은 치욕과 고통을 관통하며, 첫 구의 ‘백발(白髮)’ 시어는 맨 마지막 구의 ‘추상(秋霜)’과 인과관계를 맺으며 작품의 분위기를 애상(哀喪)의 극치로 몰아간다.
‘한 번 마시면 삼백 잔이지(一飮三百杯)’라고 할 정도로 풍류 기질이 강한 이백. 이 시에는 술과 달의 이미지가 보이지 않고, 이순의 나이가 되도록 살아온 자신의 삶에 대한 깊은 회한의 모습이 어렴풋이 묻어난다. 이 시를 쓰고 몇 년 뒤에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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