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은 바뀌고 세월은 흐르며, 시대와 세태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초당(初唐)시인 왕발(王勃)의 ‘등왕각(騰王閣)’에 나오는 말이다. 왕발은 초당사걸(初唐四傑)로 불리며, 왕통(王通)의 손자다. 용문(龍門) 사람으로 약관의 나이에 과거에 급제해 괵주참군(괵州參軍)을 지냈으나, 두 차례나 면직당하는 우환을 겪기도 했다. 그는 교지령(交趾令)으로 좌천된 부친을 찾아가다 27세라는 젊은 나이에 물에 빠져 죽었다. 그의 대표작 ‘등왕각’을 한번 음미해 보자.
“등왕이 세운 높은 누각 장강 기슭에 서 있으되/패옥 소리와 말방울 소리에 가무는 사라졌도다/아침에는 채색된 기둥에 남포의 구름이 날고/저녁에는 구슬로 만든 발을 걷고 서산의 비를 바라본다/한가로이 떠가는 구름과 연못의 짙은 물빛은 언제나 유유한데/만물은 바뀌고 별 운행한 지 몇 해가 지났던가/누각에 계시던 황태자는 지금 어디 계시는지/난간 밖엔 장강만 부질없이 흐른다(등王高閣臨江渚, 佩玉鳴鸞罷歌舞. (화,획)棟朝飛南浦雲, 珠簾暮捲西山雨. 閑雲潭影日悠悠, 物換星移幾度秋. 閣中帝子今何在, 檻外長江空自流).”
등왕각은 당고조(高祖) 이연(李淵)의 아들 등왕(騰王) 이원영(李元영)이 홍주도독(洪州都督)으로 있을 때 지은 누각이다. 1연에서 시인은 인생의 허무함을 시공(時空)과 흥쇠(興衰)를 대조시켜 표현하면서 등왕각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담한 필치로 표현해 나간다. 그 옛날 등왕의 생전에 들리던 패옥 소리와 방울 소리가 이미 사라진 데서 시인은 인생무상을 느낀다. 높게 솟아 있는 등왕각의 모습이 오히려 외딴 곳에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어서 위용보다는 쓸쓸함만 휘몰아친다. 등왕각의 어제, 그리고 오늘의 모습은 단지 한가롭고도 유유하게 떠다니는 저 구름과 부질없이 흘러가는 장강만이 알 뿐이라는 푸념조의 마무리를 통해 어찌 보면 마음껏 누렸던 부귀영화가 세월이 지나고 나면 얼마나 덧없는 것임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논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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