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적을 만나거나 곤경에 처했을 때는 맞대응하기보다 회피하거나 떠나버리는 것이 좋다는 뜻이다. 제서(齊書) 왕경칙전(王敬則傳)에 나오는 말로 주위상책(走爲上策)이라고도 한다.
남북조시대 제나라의 5대 황제인 명제(明帝)는 고제(高帝) 소도성(蕭道成)의 종질(從姪·사촌 형제의 아들)이다. 그는 천명에 따라 황제 자리에 오른 게 아니라 고제의 증손자인 3, 4대 황제를 시해하고 찬탈했다. 즉위 뒤에도 고제의 직계 혈통을 살해하는가 하면 자기 생각을 거스르는 자는 모두 사형시켰다.
명제의 포학한 행위가 계속되자 고제 이래의 옛 신하 중 불안에 떨지 않는 이가 없었다. 특히 제나라의 개국공신으로서 대사마(大司馬)요 회계태수(會稽太守)로 있던 왕경칙(王敬則)의 불안은 더했다. 명제도 왕경칙을 비롯한 고제의 신하들이 늘 마음에 걸렸다. 명제는 궁리 끝에 대부 장괴(張壞)를 평동장군(平東將軍)으로 임명해 회계군과 인접한 오군(吳郡)으로 파견했다.
왕경칙은 명제가 자기를 없애려는 것을 눈치 채고 먼저 병사 1만 명을 이끌고 진군해 수도 건강(建康)과 흥성성(興盛城)을 점령하려 했다. 명제에 대한 불만이 컸던 탓에 병력은 삽시간에 10만 명으로 늘어났다.
그때 병석에 누워 있는 명제 대신 정사를 살피고 있던 태자 소보권(蕭寶卷)은 왕경칙과 싸워서 졌다는 보고를 받자 달아날 준비를 했다. 태자의 이런 모습이 곧바로 왕경칙에게 보고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단공(檀公)의 서른여섯 가지 계책 중 달아나는 게 좋은 계책이라고 하였다. 너희 부자는 오직 급히 달아나는 것일 뿐이다(檀公三十六策, 走是上計, 汝父子唯應急走耳).” 단공은 위진남북조시대 송(宋)나라 무제(武帝)의 건국을 도운 단도제(檀道濟) 장군으로 그는 북위(北魏)와 싸울 때 물러나 달아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왕경칙의 이런 호기(豪氣)에도 불구하고 그는 관군에게 포위당해 죽었으니 명철보신(明哲保身)에 실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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