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사람이 각자 제멋대로 행동하여 전체적인 조화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기원전 722년부터 기원전 481년까지를 다룬 역사서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선공(宣公)’ 2년에 따르면, 춘추시대 초(楚)나라 장왕(莊王)은 실력을 과시하기 위해 동맹국인 정(鄭)나라에 송(宋)나라를 치도록 했다. 정나라 목공(穆公)은 즉시 출병했다. 결전을 하루 앞둔 날 밤, 송나라의 화원(華元)은 특별히 양고기를 준비하여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우며 싸움에 대비하였다. 그런데 화원의 수레를 모는 양짐(羊斟)만은 양고기를 먹지 않았다. 까닭을 묻자 그는 이렇게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수레를 모는 사람에게까지 양고기를 줄 필요는 없습니다. 수레꾼하고 전쟁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튿날 싸움이 시작되자, 양쪽 병사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웠으나 승패가 나지 않았다. 화원은 양짐에게 적군이 드문 오른쪽으로 수레를 돌리라고 명했다. 그런데 양짐은 화원의 명령과는 반대로 왼쪽으로 수레를 몰았다. 당황한 화원이 방향을 바꾸라고 소리치자 양짐이 말했다.
“어제 저녁 양고기는 당신께서 다스린 것이고, 오늘 이 일은 제가 다스린 것입니다(疇昔之羊 子爲政 今日之事 我爲政).”
그러고는 정나라 병사들 쪽으로 있는 힘을 다해 달려갔다. 화원은 결국 정나라에 붙잡히고 그 병사들은 전의를 잃고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정나라가 대승을 거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양짐이 화원의 지휘에 따르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였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군자들의 혹평처럼 양짐은 ‘그 사사로운 감정 때문에 나라를 패망하게 하고 백성들을 죽게 만든(以其私憾 敗國殄民)’ 것이다. 융통성이 부족하고 아집이 강하여 전체적인 균형을 생각하지 못해 결국 국가의 대사를 그르치게 만든 것이다. 사소한 일에서 비롯되었지만 결과가 이렇게 심각한 경우는 늘 존재해 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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