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이 사기 ‘여태후본기’에서 여태후를 평한 말이다. 천하에서 가장 독한 여자로 꼽히는 그녀의 이름은 여치(呂雉)다. 효혜제(孝惠帝)와 딸 노원태후(魯元太后)를 낳았으며, 건달 출신의 유방을 그림자처럼 도왔으니, 여후는 유방과 금슬이 좋아 늘 전장을 누비며 유방의 든든한 동지가 되어 주었다. 한때는 항우에게 붙잡혀 시아버지, 심이기 등과 함께 갇혀 2년 반이나 인고의 세월을 보내기도 했다.
여태후는 유방이 민심을 등에 업고 함양으로 들어가 갖은 난관 끝에 패공이 되고, 다시 항우와의 지루한 전쟁 끝에 천하를 거머쥐게 한 조강지처이기도 하다. 그런데 유방이 그녀를 내팽개치고 척희(戚姬)라는 희첩에게 마음을 주자, 그녀는 인간과 세상에 독을 품게 된다. 더구나 척희가 훗날 조나라 왕이 된 여의(如意)를 낳으면서 여태후는 후계자 문제에서도 불안하게 되면서 더 심해진다. 여의가 조나라 왕에 세워진 뒤 태자에 오를 뻔하자, 조왕을 독살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그녀는 척희의 손과 발을 자르고 눈알을 뽑고 귀를 태워 돼지우리에 가두고는 ‘사람돼지(인체·人체)’라고 하면서 자신의 아들 혜제에게 그 흉측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 충격으로 혜제는 제위에 오른 지 7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 그 자리를 그녀가 꿰차게 된다. 유약한 혜제의 재위 기간과 그녀가 7년여 동안 황후의 자리에 있는 동안 그녀는 장벽강, 진평, 주발 등 핵심 3인방의 도움을 받아 여씨 일족을 요직에 앉히고 한신 등 개국 공신을 제거하는 등 혼자만의 제국을 꾸려나갔다. 그러나 강단 있고 굳센 성격으로 불안정한 제국을 안정시키는 등 업적을 세워 “황제의 직권을 대행해 정치가 방 안을 벗어나지 않았어도 천하는 편안했다. 형벌이 드물게 사용되어 죄인이 드물었다. 백성들이 농사에 힘쓰니 옷과 음식은 더더욱 풍족해졌다”(여태후본기 ‘태사공왈’)는 사마천의 극찬을 들을 정도였다.
그러나 여씨 일족만을 등용하는 등 불공정한 인사 전횡과 가차 없는 정치 보복 등을 일삼은 일그러진 정치인이었다는 점을 사마천은 분명 간과한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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