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와 신하의 긴밀한 협력과 상호 존중을 의미하는 말로서, 정관정요(貞觀政要)에 나오는 말이다. ‘정관정요’는 당나라 왕조의 기틀을 마련한 태종 이세민(李世民)의 정치 철학을 기본 내용으로 한 정치토론집 같은 성격의 책이다. 이 책의 첫머리만 보더라도 당태종이 얼마나 백성의 관점에서 정치를 하려고 했는지 알 수 있다. “군주의 도리는 먼저 백성을 생각하는 것이오. 만일 백성들의 이익을 손상시켜 가면서 자기의 욕심을 채운다면, 마치 자기 넓적다리를 베어 배를 채우는 것과 같아서 배는 부를지언정 곧 죽게 될 것이오. (중략) 또 만일 군주가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한마디라도 한다면, 백성들은 그 때문에 사분오열할 것이고, 마음을 바꾸어 원한을 품고 모반하는 이가 생길 것이오. 나는 항상 이러한 이치를 생각하고 감히 나 자신의 욕망을 따르는 행동을 하지 않았소.”(‘군도(君道)’편)
이러한 생각에서 출발했기에 태종은 ‘군주는 배이고, 백성은 물(君舟人水)이다.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또한 배를 뒤엎을 수도 있다. 君舟人水, 水能載舟,亦能覆舟’(정관정요 ‘논정체(論政體)’편)는 위징(魏徵)의 말을 늘 마음속에 새기면서 다스림의 지침을 삼고자 했다. 여기서 ‘인(人)’자는 ‘민(民)’자와 같은 말로 당태종의 이름이 ‘세민(世民)’이라 피휘(避諱)하여 ‘인’자로 ‘민’자를 대체한 것이다. 그는 창업 과정에서 피비린내 나는 형제의 난을 겪으면서 제위에 올랐으면서 문치를 실행하고 철저한 자기관리와 겸허의 리더십으로 신하들과 허심탄회하게 상의하면서, 백성들과 모든 고락을 함께하려고 노력했던 군주였다. 때로는 위징처럼 300번 이상 간언한 신하를 내치지 않고 사심 없이 간언을 받아들여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으려 했으며, 특히 민생 안정에 온 정성을 기울여 부역과 세금을 가볍게 하여 백성들을 아꼈으며 형법을 신중하고 가볍게 사용하여 법제를 보존시켰던 것이다.
당태종이 다스린 23년여 기간을 ‘정관의 다스림(貞觀之治)’이라고 하여 그 치적을 높이 평가하는 데는 열린 정치라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군주인수(君舟人水)’. 대선을 불과 5개월도 남지 않은 오늘 그가 유독 그리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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