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중의 한자로 읽는 고전]<92>낙화시절(落花時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7일 03시 00분


落: 떨어질 락 花: 꽃 화 時: 때 시 節: 마디 절

시성 두보의 많지 않은 절구 가운데 감정의 함축이 깊은 시 ‘강남에서 이구년을 만나다(江南逢李龜年)’이란 작품에 나오는 말이다. “기왕(岐王)의 집에서 항상 그대를 보았었네/최구(崔九)의 정원에서 노랫소리 몇 번이나 들었던가/지금 이 강남의 한창 좋은 풍경인데/꽃 떨어지는 시절에 다시 그대를 만났구려(岐王宅裏尋常見, 崔九堂前幾度聞. 正是江南好風景, 落花時節又逢君).”

두보가 현종의 총애를 받던 명가수 이구년을 자주 본 것은 둘 다 젊은 시절이었다. 두보 역시 당시 왕족에게 시재(詩才)를 인정받아 권세가의 집을 드나들면서 바로 그 좋은 시절에 이구년의 노래를 감상하였던 것이다. 그러던 두 사람이 시간이 한참 지나 강남에서 우연히 상봉하게 되었다. ‘낙화시절’은 옛날에 대한 추억과 현재 자신의 암담한 처지가 대비되는 시어로, 유명했던 노가수와 노시인이 시대와 사회를 등지고 강남에서 다시 만난 비참한 현실을 각인시킨다. 3구의 ‘정시(正是)’와 4구의 ‘우(又)’라는 두 단어는 이 시 전체에 무한한 감개를 깃들게 만든다. 화려했던 과거를 뒤로하고 둘 다 떠돌이의 처지에서 만나 느끼는 바로 그 감정 말이다. 두 사람의 화려했던 과거의 모습이 전반 두 구라면 두 사람이 처한 쇠락의 징표는 바로 후반 두 구절이다. 떠도는 나그네의 모습이 ‘낙화시절’인데, ‘호풍경(好風景)’이란 표현과 대비된다.

우리가 눈여겨볼 점은 ‘낙화시절’이 기본적으로는 이구년과 상봉한 때이지만 이구년과 시인 자신의 모습, 현 시점의 당 제국의 모습을 모두 담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여기서 ‘우봉(又逢)’이란 말로 미래에 대한 희망도 어느 정도 표현하고 있기는 하다.

이구년이 그러하듯 잘나가는 시절에 ‘낙화시절’이란 단어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지만, ‘권불십년(權不十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지 않은가.

김원중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한자로 읽는 고전#한자#낙화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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