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멸망의 길로 내쫓는 노래로서 음란하고 사치스럽거나, 곡조가 슬픈 음악을 가리킨다. 망국지성(亡國之聲)이라고도 한다. 본래 이 말은 예기(禮記) ‘악기(樂記)’편의 “망하려는 나라의 음악은 슬프고 생각에 잠겨 있으며 그 백성은 곤궁하다(亡國之音, 哀以思, 其民困)”에서 나온 말로, 망국의 시기에는 노래도 시대적 울분을 담고 있다는 뜻이다. 한비자 ‘십과(十過)’ 편에도 나온다.
춘추시대 위(衛)나라 영공(靈公)이 진(晉)나라로 가는 길에 복수(복水)가에서 하룻밤 묵게 됐다. 그런데 한밤중에 처음 듣는 새로운 곡조의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영공이 사람을 시켜 그 음악을 알아보도록 했지만 아는 이가 없자, 왕실의 악사인 사연(師涓)을 불러 그 음악을 악보로 만들도록 했다. 사연은 이틀이 걸려 완성했다. 영공 일행이 진나라에 이르자, 진나라 평공(平公)은 이들을 위해 시이(施夷)의 누대에서 주연을 베풀었다. 모두 취기가 올랐을 때 영공이 새로운 악곡이 있는데 들려주겠다고 하고는 사연을 불러 진나라의 음악가 사광(師曠) 옆에 앉아 거문고를 뜯게 했다. 그 곡을 끝마치기도 전에 사광이 사연의 손을 잡고 연주를 막으며 말했다. “이 곡은 망국의 소리이니 끝까지 연주하면 안 됩니다(亡國之聲, 不可遂也).”
그러나 평공은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연주해 달라고 요청했다. 사광이 마지못해 거문고를 끌어다가 연주를 했다. 평공은 다시 이보다 더 슬픈 곡조의 노래를 듣고 싶다고 했다. 사광은 어쩔 수 없이 청치(淸緻)의 곡을 연주했고, 다시 청치보다 더 슬픈 곡인 청각(淸角)의 곡조마저 연주했다. 그러자 한 번 연주할 때에는 검은 구름이 서북쪽으로부터 일어났고, 거듭 연주하자 큰바람이 불고 큰비가 쏟아져 휘장이 찢기고 그릇이 날려 깨지며 기와가 떨어져 박살났다. 앉아 있던 사람들이 혼비백산하여 달아났고 평공도 궁정의 내실로 가서 숨었다. 그 뒤 진나라는 삼 년 동안 밭에서 작물이 나지 않았으며, 평공도 심한 질병에 걸려 나라를 다스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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