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중의 한자로 읽는 고전]<122>축록(逐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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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18일 03시 00분


逐: 쫓을 축 鹿: 사슴 록

사슴을 쫓는다는 말로 제위나 정권을 다툼을 뜻한다. 중원축록(中原逐鹿)의 준말이며, 축록중원(逐鹿中原)이라고도 한다. 각축(角逐)과 같다. 사기 ‘회음후(淮陰侯) 열전’에 나오는 말이다.

한(漢)나라 10년에 진희(陳희)가 모반하자 고조는 군사를 이끌고 토벌에 나섰다. 하지만 진희와 내통하던 한신은 병을 핑계로 치러가지 않았다. 오히려 가신들과 짜고 밤에 거짓 조서를 내려 각 관아 죄인과 관노들을 풀어 주고, 이들을 동원해 여태후(고조의 황후)와 태자를 습격한다는 모의를 꾸몄다. 이때 한신의 가신이 죄를 지은 것이 발각돼 한신이 그를 잡아 죽이려 하자, 그 가신의 동생이 여태후에게 한신의 모반 음모를 몰래 알려주었다. 여태후는 한신을 은밀히 잡아 들여 목을 베었다. 한신이 죽으면서 한 말은 이러했다. “괴통(괴通)의 계책을 쓰지 못한 게 안타깝다. 아녀자에게 속은 것이 어찌 운명이 아니겠는가?”

한신의 삼족도 멸해졌다. 진희를 토벌하러 갔던 고조가 돌아와 여태후에게 “한신이 죽을 때 무슨 말을 했느냐”고 물었다. 여태후가 사실대로 말하자 고조는 제나라에 있던 괴통을 잡아오게 하고는 한신에게 모반하도록 가르쳤느냐고 캐물었다. 괴통은 “그렇다”고 말하고는 “한신이 저의 계책을 썼다면 결코 그를 이기지 못하셨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조는 이 말에 화가 나 괴통을 삶아 죽이라고 명했다. 그러자 괴통이 말을 이어갔다.

“진(秦)나라의 기강이 느슨해지자 산동 땅이 크게 어지러워지고 영웅호걸들이 까마귀 떼처럼 모여들었습니다. 진나라가 사슴을 잃자, 천하는 다 같이 이것을 쫓았습니다(秦失其鹿, 天下共逐之). 이리하여 키 크고 발 빠른 고조께서 먼저 이것을 얻었습니다. 도척이라는 도적이 있었는데 도척이 기르는 개가 요 임금을 보고 짖은 것은 요 임금이 어질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개는 본래 자기 주인이 아닌 사람을 보면 짖습니다. 당시 저는 한신만을 알았을 뿐 폐하는 알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사슴은 황제의 자리를 뜻한다. 고조는 괴통의 죄를 용서했다.

김원중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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