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인재에게 달려 있다는 의미다. 예기(禮記)의 편명인 중용(中庸)의 ‘애공문정(哀公問政)’에 나오는 말이다.
“정치를 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다. 사람을 취하는 것은 자신으로 하며, 몸을 수양하는 것은 도로 하며, 도를 수양하는 것은 인으로 한다(爲政在人, 取人以身, 修身以道, 修道以仁).”
노나라 군주 애공이 정치를 물었을 때 공자의 답변은 이처럼 명쾌했다. 방책(方策·목판과 죽간)에 기록돼 있는 문왕과 무왕 같은 성군의 정치력이 힘을 발휘한 것도 따지고 보면 현신(賢臣)에 달려 있으며, 그 반대의 경우 정치를 그만둘 수밖에 없다는 논지다. 여기서 말하는 ‘인(人)’은 바로 현신을 의미하므로, ‘위정재신(爲政在臣)’이라고 써도 무방하다.
당 태종(唐太宗) 역시 ‘정관정요(貞觀政要)’에서 “정치를 하는 요체는 오직 사람을 얻는 데 있으니, 재목이 아닌 자를 등용한다면 반드시 (제대로 된) 정치에 이르기 힘들 것이다(爲政之要, 惟在得人, 用非其才, 必難致治)”라고 단언했다.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는 대목이다.
문제는 왜 현신만을 강조하고 성군의 여부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임명권자는 군주이지 신하가 아니고, 신하가 군주를 선택할 확률은 거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더군다나 적장자 계승 원칙이 엄존하는 봉건제하에서 아무리 무능하다 해도 대부분 통상적인 경우에서는 능력보다는 서열에 따라 군주 자리가 정해졌으니 말이다. 그러니 제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명대의 장거정(張居正)이나 척계광(戚繼光) 같은 현신들도 성군을 만나지 못해 그들의 탁월한 역량을 발휘할 수 없었고 곤욕을 치렀던 게 아닌가.
그러니 이 성어를 ‘위정재주(爲政在主)’, 즉 정치를 하는 것은 군주에게 달려있다는 표현으로 수정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국정의 안정을 위해 현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하의 능력을 알아보고 등용하는 군주의 역량이다. 군주의 수준이 곧 신하의 수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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