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세계 바둑계를 풍미했던 대만 린하이펑(林海峰) 9단은 1970년대 전성기 시절 ‘바둑 신과의 치수’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보통 세계 정상급 프로기사들의 답은 석 점 정도였다. 물론 패기 넘치는 서봉수 9단은 “요즘 중앙을 제외한 귀와 변의 변화는 거의 규명됐기 때문에 두 점이면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바둑 신과의 치수’는 반상의 무수한 변화를 다 읽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를 의미한다. 그런데 9일부터 구글 딥마인드의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 맞바둑으로 세기의 대결을 펼치게 되면서 종국에는 인공지능이 바둑의 신의 위치를 차지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온다. 알파고는 우선 하루 24시간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무한대의 학습 능력을 갖는다는 점이 이런 전망을 뒷받침한다.
이세돌 9단은 최근 “지난해 10월 판후이 2단에 이긴 알파고의 실력은 아마 정상급이지만 나와 승부를 논할 수준은 아니다”며 “아무리 빨리 실력이 는다 해도 나를 이길 정도까지 올라오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자신감을 피력했다. 특히 하급자에서 상급자까지는 실력이 금방 올라가지만 아마 정상급 실력에서 프로기사가 되고 이어 정상급 프로 기사로 발돋움하는 단계가 가장 어렵다는 것. 프로기사들도 그 단계에서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알파고는 스스로 학습하는 첫 번째 프로그램으로 그 진보 속도를 가늠하기 어렵다.
최근 알파고 개발 책임자인 데미스 하사비스는 인터뷰할 때마다 “승부는 50 대 50”이라고 말했다. 구글 딥마인드 측이 비공식적으로 중국 프로기사들과 겨뤄 좋은 승률을 냈기 때문에 자신감을 피력했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설사 알파고가 지더라도 이를 통해 얻는 데이터베이스는 앞으로 실력을 늘리는데 밑바탕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 실력 뿐 아니라 컨디션에 따른 기복도 없다. 초일류 기사들도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간단한 단수조차 깨닫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는데 알파고는 그럴 일이 없다.
여기에 바둑 격언 중 상대를 의식하지 말라는 ‘반전무인’(盤前無人)의 자세도 알파고는 가능하다. 강한 상대, 뜻밖의 상대 혹은 징크스가 있는 상대를 만나도 인간처럼 주눅 들거나 과잉 투지를 보이다 자멸하는 경우가 없다는 것이다.
명지대 바둑학과 정수현 교수는 “인공지능이 지금과 같은 속도라면 늦어도 2020년까지는 초일류기사와 대등한 실력을 가질 가능성이 높다”며 “시간이 더 지나면 바둑의 신처럼 초일류 프로기사를 두, 세 점 접는 시기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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