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이젠 인간이 도전해야 할 ‘바둑의 神’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1일 03시 00분


[인공지능, 겁없는 진화]프로기사 10명이 본 ‘알파고 기력’

씁쓸한 복기



이세돌 9단(오른쪽)이 대국을 마친 뒤 동료인 홍민표 9단 등과 함께 복기를 하고 있다. 보통 복기는 대국 상대와 하지만 말을 할 수 없는 알파고와는 할 수 없다. 한국기원 제공
씁쓸한 복기 이세돌 9단(오른쪽)이 대국을 마친 뒤 동료인 홍민표 9단 등과 함께 복기를 하고 있다. 보통 복기는 대국 상대와 하지만 말을 할 수 없는 알파고와는 할 수 없다. 한국기원 제공
한때 세계 바둑계를 호령했던 대만 린하이펑(林海峰) 9단은 1970년대 그의 전성기 시절 “바둑의 신(神)과 바둑을 둔다면 석 점 정도는 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보통 세계 정상급 프로 기사들의 답변도 마찬가지다.

프로 기사들 사이에서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의 1, 2국 대결에서 잇달아 승리하자 “알파고가 사실상 바둑의 신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10일 서울 성동구 마장로 한국기원 검토실에서 만난 바둑 관계자들은 2국을 지켜보며 “대국 결과가 충격적이다” “불과 5개월 만에 달라진 알파고의 기력 변화가 무섭다”며 입을 모았다. 알파고가 이세돌 9단에게 도전했지만 이번 대국 이후 “세계 정상급 기사들이 알파고에 도전하게 될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이날 취재한 프로 기사 10명 또한 대체로 “알파고의 실력이 이미 세계 최정상”이라며 “지금의 발전 속도를 감안할 때 사실상 바둑의 신의 경지에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동윤 9단은 “1국 때는 다소 허술하다고 판단했는데 2국에서 중후반부는 알파고가 대국을 이끌어 갔다고 해도 무방하다”고 말했다. 그는 “알파고가 대국 초반부까지 유리하게 끌고 갈 프로그래밍을 탑재하게 된다면 인간이 알파고를 공략할 틈은 없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조한승 9단은 “지난해 10월 알파고와 판후이 2단의 대결 때만 해도 알파고가 이 9단은 이길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번에 선보인 수준은 놀랍다”며 “최고수로 평가받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 같다”고 말했다.

김지석 9단은 “바둑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인간이 바둑에서 경지에 이르기는 힘들지만 인공지능인 알파고는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이들은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향후 대국에 대해서도 알파고의 ‘완승’에 무게를 실었다. 2국까지 본 기사들은 대체로 ‘끝났다’는 반응이다.

박정상 최철한 9단을 뺀 8명 모두 알파고의 손을 들어줬다. 박승철 8단은 “사실상 진검승부를 벌인 2국에서도 알파고에 패배한 만큼 이 9단이 해법을 찾기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박영훈 9단도 “이날까지 패배해 심리적으로도 수세에 몰린 만큼 이세돌 9단의 완패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반면 박정상 9단은 “알파고가 생각보다 강한 기량을 보이고 있어 ‘경외심’이 생기기도 한다”며 “그래도 나머지 대국은 이 9단이 가져가길 바란다”는 희망 섞인 응원을 했다.

알파고와 대결할 기회가 생긴다면 기사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현욱 8단은 “이 9단이 경기 후 혼자 쓸쓸히 복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컴퓨터와의 대결은 외로운 싸움이라는 걸 느꼈다”며 “(인간) 고수라면 상대하고 싶겠지만 알파고와의 대결은 피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머지 기사들은 모두 승부사답게 기회가 온다면 피하지 않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조혜연 9단은 “알파고가 판후이 2단과 대결 이후 바로 세계 최강과 대결해 중간이 없어진 듯한 아쉬움이 있다”며 “기회가 주어진다면 언제든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목진석 9단은 “겪어보지 않으면 실력을 알 수 없다”며 “강한 상대라도 겨뤄보고 싶고 (진다고 해도) 한 수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승부사들에게 알파고는 이미 도전자가 아니라 도전해야 할 바둑의 신으로 바뀌고 있다.

김배중 기자 wanted@donga.com
#인공지능#바둑#이세돌#알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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