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에 대한 인간의 열망, 인공지능은 절대 계산못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4일 03시 00분


[‘인간’ 이세돌 3패 뒤 첫 승]시민들 “李9단은 갓세돌” 환호

‘인류 대표의 자존심을 지켰다.’

세 번이나 연달아 패한 뒤 얻은 값진 승리였기에 시민들은 더욱 환호했다. 이미 승패가 결정된 뒤였지만 시민들은 이세돌 9단이 ‘인류 대표’로서 자존심을 세워줬다고 칭찬했다.

첫 번째 대국부터 생중계를 빠짐없이 지켜본 전상필 씨(73)는 “정말 값진 승리였다”며 “현존하는 최고의 바둑기사라고 생각했던 이 9단이 3연패(連敗)하는 걸 보면서 인간의 한계라고 생각했지만 이번 승리로 아직은 기계가 인간을 따라올 수 없다는 걸 보여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간호사 이나현 씨(25·여)도 “엄청난 성능의 기계를 인간 이세돌이 이겼다는 점에서 1승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승리”라고 말했다.

시민들은 큰 부담감을 떨쳐내고 승리한 이 9단에게 박수를 보냈다. 대학원생 김병우 씨(30)는 “그동안 마음고생이 컸음에도 불구하고 이겨줘서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회사원 남진용 씨(29)도 “부담감을 떨치고 나니 이 9단의 천재성이 드러난 것 같다. 오늘 이 9단은 자신의 별명대로 창의적인 천재다웠다”고 했다. 누리꾼들도 이 9단을 ‘갓세돌’(신을 의미하는 ‘god’과 이세돌 이름을 합친 말)이라고 치켜세웠다.

이날 대국 초반까지만 해도 알파고가 우세했던 만큼 시민들은 대국 막바지까지 손에 땀을 쥐고 지켜봐야 했다. 열 살 때부터 바둑을 뒀다는 김덕중 씨(70)는 “이번에도 질 줄 알았는데 이 9단이 중반에 형세를 뒤집는 것을 보면서 승리할 수 있으리란 생각을 했다”며 “3연패한 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고 기운이 하나도 없었지만 오늘은 참 기운이 난다”고 말했다.

다행스럽다는 반응도 눈에 띄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었다는 놀라움과 공포감이 커진 가운데 이 9단이 첫 승리를 거뒀기 때문이다. 대학원생 이민주 씨(26)는 “인공지능이 인간의 영역을 잠식하는 것 아닌가 걱정했다”며 “이 9단이 한 번이라도 이겨준 덕분에 아직까지 인간의 잠재력이 더 크다는 점을 알게 해줬다”고 평가했다.

평소 바둑에 관심조차 두지 않았던 바둑 문외한들도 승리의 기쁨을 함께 나눴다. 이재영 씨(28)는 “아무리 인공지능이라도 승리에 대한 이세돌의 열망까지는 계산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민주 씨는 “경기가 끝나자마자 이 9단이 그 자리에 남아 복기하는 모습을 보고 기계는 절대 모방할 수 없는 인간의 치열함을 느꼈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침울했던 바둑계는 비로소 함박웃음을 지었다. 알파고를 공략할 수 있는 ‘해법’까지 찾았다는 분위기에 최종 대국의 승리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졌다. 조혜연 9단은 “3국에서 비록 패배했지만 ‘모양바둑’을 통해 이 9단이 알파고에 대한 해법을 찾았다”며 “마지막 대국에서도 같은 전략으로 이 9단이 승리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9단의 승리는 연이은 패배를 지켜보며 불안감에 사로잡혔던 동료 바둑기사들의 짐까지 덜어줬다. 김지석 9단은 “(프로 바둑기사로서) 알파고를 보면서 두려움 등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었는데 한 판이라도 (이 9단이) 이겨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2국 대결 뒤 이 9단과 함께 밤샘 연구를 했던 박정상 9단은 “이 9단과 알파고의 실력은 비슷하다고 본다”며 “컴퓨터를 상대로 부담을 안았던 이 9단이 4국부터 부담감을 내려놓고 바둑 자체를 즐기면서 제 실력을 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과학계와 정보기술(IT) 업계에서도 환호성이 터졌다.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처음엔 ‘컴퓨터가 인간을 이길 수 있을까’로 시작했지만 이제 이 9단의 승리에 환호를 해야 하는 상황이 돼 이상한 기분”이라고 전했다. 이현중 NHN엔터테인먼트 과장은 “외롭고 힘든 싸움을 이겨내고 있을 이 9단에게 승패를 떠나 진심 어린 박수를 보낸다”고 응원했다.

임창환 한양대 생체공학부 교수는 “직관을 가진 인간만의 고유물이라 여겨졌던 바둑에 인공지능이 도전하는 과정이다. 인공지능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오늘처럼 인간들이 더 이겨야만 한다”고 말했다.

이 9단이 귀중한 1승을 챙기면서 한풀 꺾였던 시민들의 관심도 되살아나고 있다. 이날 이 9단의 승리 직후 ‘이세돌 첫 승’이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취업 준비생 김현영 씨(27·여)는 “경이로운 걸 넘어 공포심마저 들었던 인공지능 알파고를 이 9단이 이겨서 정말 좋다”며 “남은 한 경기를 마저 승리해 다시 한 번 스릴과 기쁨을 주기 바란다”고 응원했다.

김호경 whalefisher@donga.com·곽도영·김배중 기자
#이세돌#알파고#바둑#인공지능#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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