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9일 1국] 이세돌, 인공지능 ’알파고’에 충격적 패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9일 13시 49분


한국기원 제공
한국기원 제공

이세돌 9단은 돌가리기에서 흑번을 선택했다. 한국 룰보다 덤이 1집 많은 상황에서 백을 잡는 것이 보통인데 흑을 선택한 것은 포석에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 9단은 짙은 감색 양복에 하늘색 와이셔츠를 입고 딸 혜림이와 함께 낮 12시 55분경 대국장으로 향했다. 평소 이 9단은 딸 바보로 불릴 정도로 끔찍하게 딸을 아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9단은 컨디션 조절을 위해 일요일부터 대국장이 있는 포시즌스호텔에서 아내 딸과 함께 묵어왔다. 이 9단은 대국이 끝날 때까지 이 호텔에 묵을 예정이다.

이 9단은 흑 6의 수를 평소 프로들이 전혀 두지 않는 수법으로 구사했다. 김성룡 9단은 “이 9단이 미리 준비해온 수 같다”며 “패턴에 의해 두는 알파고를 상대로 혼란을 주기 위한 것일 뿐 아니라 실제 불리하지도 않는 수”라고 해석했다.

알파고는 백 10의 수 역시 프로로서는 두지 않는 수였다. 이 수는 좋은 수가 아니라는 평가로서 두지 않는 수. 이어 16역시 프로 감각으로는 악수로 평가받는 수였다. 김성룡 9단은 “실망스럽다. 지난해 10월 이후 실력이 늘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날 1국 심판위원장인 한철균 9단은 “알파고가 해킹 등으로 낙아웃이 되지 않는 것 외에는 반칙패 규정이 없는 것으로 구글 측과 합의했다”고 말했다.

한 9단은 “알파고 대신 착수를 하는 아자 황의 실수로 잘못 놓으면 다시 무르고 둘 수 있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대국장에는 지난해 10월 알파고와의 공식대국에서 5대0으로 진 판후이 2단도 심판단 일원으로 들어갔다. 판 2단은 중국 룰로 두는 이번 대국을 위해 중국식 계가를 해주는 심판 역할을 맡았다. 중국식 계가는 대국자 본인이 하지 않고 심판이 한다.

이날 대국에 앞서 국내 정치인들도 이 9단 격려를 위해 포시즌스호텔을 찾았다. 새누리당 원내대표인 원유철 의원, 더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박영선 의원 등이 찾아와 대국 전 환담을 나눴다. 에릭 슈밋 구글 회장도 자리를 함께 했다.

이 9단과 같이 호텔에 묵고 있는 부인 김현진 씨는 “남편이 대국 전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편인데 이번에도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 속내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 김성룡 9단 “알파고 실력에 깜짝…이세돌 67수 그곳에 놨으면 바둑 끝

알파고는 초반 포석에서 두 세 수 정도 프로가 두지 않는 완착성 수를 뒀지만 이세돌의 강수에 같이 강수로 맞받아치면서 초장부터 큰 전투가 벌어졌다. 우상에서 시작된 전투는 바둑판 전체로 번져나갈 조짐이다. 알파고는 포석보다 부분적 전투에 강하다는 평을 받고 있고, 이 9단 역시 전투에 있어서 세계 최강 실력이기 때문에 서로 양보하지 않고 있다.

알파고는 대국 상황과 관계없이 거의 1분에서 1분 30초 안에 착수를 했다. 이는 제한시간을 고려해 개발진이 세팅해놓은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경우 당연히 둬야할 수는 빨리 두고 어려운 대목은 오래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셈.

기존 예상대로 전투가 벌어지자 알파고가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 바둑을 지켜본 프로기사들의 말이다. 김성룡 9단은 “60수까지 봤는데 초반 완착이 있었지만 결코 이 9단이 유리하지 않다”며 “알파고의 실력에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김 9단은 “알파고의 실력을 파악하려면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초반 실망스런 모습과는 사뭇 대비되게 전투를 잘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튜브 해설을 하던 김성룡 9단도 알파고의 전투 실력에 놀란 듯 “앉아서 해설하던 저를 일어서게 하네요”하며 얼굴을 붉혔다.

이 9단은 흑 67 수 때 바둑 판 위에 돌을 거의 놓았다가 황급히 거둬들인 뒤 멋쩍게 웃기도 했다. 이 9단이 두려고 했던 자리에 뒀다면 대실착이었다. 김성룡 9단은 “이 9단이 알파고의 전투 실력에 당황해 순간 착각한 듯 하다”며 “실제 그곳에 놨으면 바둑은 끝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 (77~90) 알파고 난조…“팽팽하던 긴장감 풀려” ▼

우하귀 백 77의 협공에 이세돌 9단이 손을 빼고 좌하귀를 선착하며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여기서 알파고가 난조를 보이며 갑자기 바둑이 이세돌 9단 쪽으로 기울었다. 특히 백 88, 90이 큰 실착. 김성룡 9단은 “팽팽하던 긴장감이 갑자기 탁 풀렸다”며 “알파고가 뭔가 문제였는지 모르지만 대 손해수를 둬버린 꼴”이라고 말했다.

▼(91~104) 이세돌, 장고 뒤 강력한 한 수…알파고, 인공지능의 한계?▼

좌하에서의 알파고의 실패에 대한 프로기사들의 반응은 아직까진 인공지능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후 알파고는 우상 흑 대마를 한번 건드려본 뒤 백 102로 승부수를 던졌다.

이세돌 9단은 지금까지 가장 오래 장고한 뒤 가장 강력한 수로 맞받아쳤다. 김성룡 9단은 “이세돌 9단이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뭔가 결단을 내리고 둔 것 같다”며 “이건 이 9단이 완벽히 계산을 마쳤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김 9단은 이어 “바둑이 일찍 끝날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이 9단이 이 순간을 마지막 고비라고 생각하는 듯 꼼꼼히 수를 읽었다.
▼ (105~136) 종잡을 수 없는 알파고? 우하귀서 손빼 두집 손해 ▼

우변 알파고의 승부수에 대해 이세돌 9단이 바꿔치기를 하면서 쉽게 정리했다. 형세는 아직 흑이 앞서고 있다. 그런데 흑 127수가 느슨한 수였다는 지적이다. 이 수로 인해 우하 귀에서 흑 집이날 곳이 백집으로 변하면서 실리 차이가 생각보단 많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알파고가 백 136으로 우하귀에서 손을 뺀 것 역시 실수. 선수로 우하귀를 정리해 갔어도 괜찮았는데 끝내기에서 손해를 보게 됐다. 김성룡 9단은 “알파고가 여기서 두 집 정도 손해를 봤다”며 “알파고가 끝내기에 강하다고 하는데 이런 대목에서 실수한 걸 보면 아직 종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 (137~163) 이세돌, 열세 속 마무리 국면…‘미세한 계가 바둑’ ▼

(137~163) 지금 형세는 어떨까. 김성룡 9단이 계가를 시작했다. 김 9단은 “아주 정밀하진 않지만 러프하게 계산해보니 백집은 72집, 흑집은 80집 넘게 납니다”며 “생각보다 미세한데요, 어떻게 된 겁니까”라고 말했다.

이상한 수를 많이 둬서 당연히 흑이 유리할 거라고 봤는데 묘하게 균형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볼 땐 실수인데 컴퓨터는 계산을 해서 두기 때문에 인간이 실수로 보는 수도 사실은 그게 정수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백 162가 또 한번의 백의 실수. 여기서도 손해를 봤다. 김성룡 9단은 “만약 알파고가 정밀한 계산으로 이정도면 이긴다고 본다면 확실한 길로 가는데 이게 인간에겐 실수로 느꺼질 수 있다. 정말 그렇다면 진짜 무서운 일”이라고 말했다.

김성룡 9단은 다시 계가를 시작했다. 지금 집 수는 백이 79집, 흑이 80집 남짓. 흑이 덤을 내기 힘든데요라고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164~186) 이세돌 9단, 인공지능 ‘알파고’ 에 패배…186수만에 돌 던져▼

이세돌의 입가에 묘한 웃음이 걸렸다. 어떻게 이렇게 됐지하는 열패감과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의문이 담겨 있었다. 그는 186수만에 돌을 던졌다.

끝내기 단계에 접어든 지금 흑을 잡은 이세돌 9단이 덤 7집반을 낼 수 없는 상황. 유튜브 해설을 하고 있는 김성룡 9단은 “진 것 같다”며 “믿겨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9단은 “알파고가 프로의 눈으로는 정말 실수를 많이 했는데도 이겨간다는 건 그만큼 정밀한 계산을 바탕으로 뒀다는 뜻으로 밖에는 해석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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