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랍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다. 예상보다 세다. 끈질기고, 계산에 밝고, 불리해도 흔들리지 않고, 이길 수 있다면 약간의 손해는 감수하는 게 이창호 9단과 비슷하다.”
국수(國手) 조훈현 9단(사진)은 9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감각적으로 약간 이상한 수가 몇 개 눈에 보였지만 이 정도 둔다는 건 정상적인 프로기사 수준으로 볼 수 있다”고 알파고의 실력을 높게 평가했다.
조 9단은 이날 대국 알파고의 승리 비결로 이창호 9단 같은 끈질김과 과감성도 꼽았다. 그는 “알파고가 좌하귀에서 실패한 뒤 형세가 불리하다고 느껴지자 끈질기게 버티며 기회를 노렸다”며 “이후 우변 흑 진에 쳐들어가는 승부수를 던졌는데 그런 곳을 찾아낼 수 있는 감각은 일류 프로기사 못지않다”고 감탄했다.
이세돌 9단에 대해선 ‘방심’이 패착이 된 것 같다고 진단했다. 초반 행마를 볼 때 알파고의 실력을 경시한 것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고 했다. 초반부터 ‘알파고, 네가 어느 정도 실력이냐, 한번 테스트해 보겠다’는 생각에 유인하는 수를 뒀다가 불의의 일격을 당해 오히려 낭패를 봤다는 것이다.
조 9단은 “이세돌 9단이 초반 실패 이후 알파고가 여러 차례 ‘프로라면 두지 않을 실수’를 두면서 유리해지자 방심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이것이 알파고의 승부수에 걸려 패배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조 9단은 “앞으로 둬봐야 알겠지만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100% 이길 수 있는 수준까지는 아니다”라며 “종종 틈을 보인 걸로 봐선 완벽하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조 9단은 앞으로 남은 대국에 대해 이 9단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우선 1국과 같은 방심이나 테스트하는 느낌에서 벗어나 정상적 프로기사, 특히 형세 판단에 밝은 기사와 둔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더욱 겸허하게 자신보다 성적이 좋은 기사와 둔다는 느낌을 갖는 것도 좋다고 했다.
조 9단은 또 “사람에게 지면 뭐라 하지 않는데 기계에 지니까 충격이 더 클 수 있다”며 “그 충격에서 벗어나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조 9단은 이어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면 마음의 부담이 커지고 실력 발휘가 안 돼 5전 전패를 당할 수도 있다”며 “하지만 이 9단은 그동안 큰 경기를 많이 했기 때문에 마음의 평정심을 빨리 찾는 방법을 알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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