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2국에서 211수만에 불계패…최고수 반열 오른 알파고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0일 13시 42분


이세돌 9단이 거푸 컴퓨터에게 무릎을 꿇었다. 이 9단은 10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즈호텔에서 열린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2국에서 211수만에 불계패를 당했다. 이로서 종합전적 2패가 됐다. 이날 승리로 알파고는 사실상 세계 최고수의 반열에 올랐다. 이 9단이 1국에선 상대를 잘 모르는 상태여서 적응이 덜 된 탓에 패했다고 할 수 있지만 오늘 바둑까지 지면서 실력에서 이 9단에 버금간다고 볼 수 있다는 해석이다.

이날 대국은 초반부터 신중하게 출발했다. 어제 대국에서 초반에 실패를 맛본 이 9단이 두터움을 중시하는 수법으로 나온 것. 이 9단은 두텁게 두다가 알파고가 실수를 할 때 응징하겠다는 뜻이었다. 이 9단의 의도대로 알파고가 좌하귀에서 싸움을 걸어갔다가 실패하면서 백이 우세해졌다. 그러나 이후 이 9단은 평소 기풍과는 달리 지나치게 안전한 행마로 일관하다가 알파고가 승부수에 휘말려 역전패당했다. 이현욱 8단은 “1국과 달리 이세돌 9단이 본인의 실력을 충분히 발휘했는데도 졌다”며 “이젠 알파고가 최소한 인간 프로기사 정상급과 같은 실력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유창혁 9단은 “이 9단이 중반 흑(알파고) 중앙의 엷은 곳을 추궁해서 더 많은 우세를 확보했어야 했다”며 “알파고가 1국에서 끝내기 실수가 있었는데 오늘은 완벽하게 이 9단을 따라 잡아 역전시켰다”고 말했다.

3국은 하루 쉬고 12일 토요일 오후 1시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17보(178~195)

끝내기가 진행되고 있지만 흑 집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인다. 좀 흑이 엷다고 생각한 곳에서 흑 집이 계속 붙고 있는 것. 이젠 어렵다는 것이 프로기사들의 진단이다. 미세한 것도 아니다. 점점 차이가 벌어졌다는 뜻이다.
○16보(155~177)

이세돌 9단의 얼굴이 점점 붉어지고 있다. 턱을 괴는 빈도 수도 높아졌다. 손도 미세하게 떨린다. 알파고가 정확한 끝내기로 중앙 집을 키우고 있다. 흑 165까지 예상 밖의 중앙 집이 생겨났다. 이현욱 8단은 “이젠 흑이 좋아보인다”고 말했다.

그런데 또 알파고의 뜻밖의 수가 등장한다. 백 166 때 흑 167로 중앙 백 넉점을 잡은 것이 예상을 빗나간 것. 11집 끝내기. 대신 우상에서 끝내기를 한 것은 12집에 선수 넉 집 끝내기를 한 것. 그런데 이게 선후수가 바뀌기 때문에 흑이 173으로 둔 것이 커서 흑에게 손해가 없다는 진단이 나온다. 유창혁 9단은 “알파고의 끝내기가 무섭다”며 “이길 수 있다면 약간의 손해는 감수하는 1국 때의 모습이 또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젠 이현욱 8단은 흑 177 시점에서 “흑이 이겼다”고 선언했다. 이 단계에선 끝내기의 변화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15보(143~154)

바둑이 점차 혼돈에 빠지고 있다. 백 우세 설도 어느덧 많이 사그라들었다. 중앙이 많이 어지러워진 탓이다. 이세돌 9단은 백 144의 시점에서 제한시간 2시간을 다 쓰고 1분도 남지 않았다. 이젠 1분 초읽기 3회에 의존해서 둬야 한다. 초읽기를 잘 모르시는 분을 위해 설명하면 1분 초읽기 3회라는 것은 1분을 세 번 준다는 것이다. 1분 안에 두면 3번의 1분이 계속 남아있다. 그러나 1분을 초과하면 1분 하나가 없어지고, 또 1분을 초과하면 1분 하나가 없어서 마지막 1분만 남게 된다. 이때는 1분 안에 무조건 두지 않으면 시간패를 당한다. 흑 145의 시점에서 초읽기에 들어갔다.

이세돌 9단은 이젠 시간이 없다. 중앙 백의 엷음을 빨리 봉합하고 우상 쪽으로 달려가고 싶은데 알파고가 놔주지 않는다. 바둑이 점점 꼬이고 있다는 게 유창혁 9단의 진단이다.

흑 153에서 이 9단은 마지막 초읽기에 몰렸다. 좋은 응수가 보이지 않아 이 9단이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어제 한판은 상대를 잘 몰라서 졌다고 할 수 있지만 오늘은 그럴 수없다. 철저히 맞춤형 전략을 들고 나왔는데도 졌다면 더 큰 충격일 수 있다.

어려운 장면에서 백이 손을 빼고 154로 큰 곳부터 차지하고 본다.


1
4보(130~142)

이세돌 9단이 중앙 백 일부를 이어가라는 알파고의 주문(129)을 뿌리쳤다. 백 130으로 아까부터 미해결 지역으로 남아있던 우상 귀에 손을 댄 것. 이 9단이 손을 까딱이며 계속 계가를 하더니 중앙보단 우상 쪽이 크다는 결론을 내린 것. 그렇다면 129는 실수였을까. 국후 검토에서 밝혀지겠지만 이런 계산은 이 9단도 정확한 편이다.

유창혁 9단은 “집으로는 우상이 당연히 큰데 두터움으로 치면 중앙이 크다”며 “이 9단은 중반 이후 계속 쌓아온 두터움을 집으로 바꾸는 과정이라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프로기사들의 해설은 백이 좋다는 쪽이지만 한켠에 불안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어제 하도 알파고의 예상을 뛰어넘는 실력에 당한 탓인지 조심스럽다.

이세돌 9단은 한 수를 둘 때마다 계속 계가를 반복하고 있다.

이상한 일이다. 알파고는 좀처럼 뒤쳐지는 법이 없다. 기분상으로는 많이 따돌렸다 싶은데 돌아보면 바로 뒤에서 씩 웃고 있다. 사람을 질리게 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중앙에서 또 한번 격변이 일고 있다. 백 140으로 먼저 선수활용하고자 했는데 흑이 바꿔치기를 하자면서 141로 끊고 나왔다. 기분 나쁜 수다. 그러자 이세돌 9단도 아예 손을 빼버리고 백 142로 우하 쪽 큰 끝내기를 둔다. 서로 의도를 거스르고 있는 상황. 점점 승부가 미궁 속으로 빠지고 있다.


13보(121~129)

이세돌 9단이 백 126까지 하변을 도려내면서 실리에는 확실한 우세를 차지했다. 오늘 하루 종일 참던 이세돌 9단이 마지막으로 폭발한 것. 타개의 명수인 이세돌 9단이 과연 중앙 백 대마의 생사를 걸고 도발한 것인데 그 결과가 주목된다.

집균형은 완전히 무너졌다. 이제 알파고는 중앙 백 대마 공격에 온 힘을 다 쏟아야 한다. 온 힘은 컴퓨터에 맞지 않고 온갖 계산을 쏟아부어야 한다.

그런데 알파고는 잡을 수 없다고 본 것일까. 중앙 공격 대신에 우하 중앙 흑을 단속한다. 이현욱 8단은 “알파고가 너무 여유롭다”고 지적한다. 즉, 한가한 곳에 뒀다는 얘기.

그렇다면 이세돌 9단의 승부수가 성공했다는 뜻일까. 이현욱 8단은 “지금은 반면 3,4집 정도 차이처럼 보인다”며 “사람 같으면 거의 끝났다고 할텐데 끝내기에 강한 알파고가 어떤 수를 들고 나올지 몰라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현욱 8단은 “이 바둑을 역전당한다면 사람 입장에선 답이 없게 된다”고 말했다. 결국 백이 정상적으로 마무리하면 승리가 눈에 보인다는 것이다. 흑 129도 좀 까다로운지 이 9단이 남은 시간을 물쓰듯 쓰고 있다. 이 9단은 이제 8분여 남았다.


12보(108~120)

이세돌의 인내가 과연 결실을 맺을까. 오늘 어찌보면 비굴할 정도로 참아왔던 이세돌 9단이 점점 승리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중앙에서 공방이 벌어지고 있지만 국면의 초점은 우상귀. 누가 먼저 손을 대느냐가 관건이다. 물론 손을 대는 쪽이 유리하다. 지금 흐름으로 보면 이세돌 9단이 먼저 착수할 가능성이 크다. 백 112가 선수의 곳. 그런데 흑이 이곳을 받고 있어서는 당연히 우상귀는 백의 차지가 된다. 불리할 수 있다고 본 알사범(알파고)는 계속 강수를 날린다. 흑 113도 그럴 듯하다. 물론 당장 성립한다고는 볼 수 없지만 이렇게 받기 까다롭게 둬 놔야 변수가 생긴다는 것이다.

유창혁 9단도 “날카롭다”는 감탄을 여러차례 하고 있다.

119을 두기 전에 알사범의 장고가 길어지고 있다. 드디어 둔 119. 그러나 여기서 흑이 뭔가 해내기는 어려워보인다. 이세돌 9단, 참고 참던 그가 여기서 참지 않고 화를 낸다. 하변에 선착한 것. 중앙은 살아 있다는 뜻일까. 아니면 그냥 중앙을 받고 있다간 질 수도 있다는 뜻일까. 살 떨리는 승부처를 맞이했다.
11보(101~107)


흑 101이 또 한 번 의의의 수. 그런 수를 어떻게 생각해내는지가 궁금한 상황이다. 이런 수는 수읽기로 두는 수가 아니다. 30분 씩 장고를 해도 찾기 힘든데 고작 1분도 안걸려 둘 수 있다는 게 놀랍다는 것이다. 일단 상상을 초월한 수여서 일단 나쁘게 보인다. 하지만 유창혁 9단은 “전혀 일리가 없는 수는 아니다”라며 “묘한 수인 건 분명한데 막상 응수하려고 하면 까다롭다”고 말했다.

여기서 알파고는 또 흑 103이라는 놀라운 수를 선보인다. 이미 프로기사들이 좋지 않다고 결론 내린 수. 이세돌 9단도 이미 수읽기를 마쳤는지 바로 104로 끊어간다. 여기서 이 9단이 또 한번 득을 본다면 승부는 거의 결정될 것 같다. 마지막 승부처로 보인다. 어쨌든 백이 기분 좋은 싸움이다.
여기서 백 106은 인내의 수. 오늘 이세돌 9단 정말 많이 참는다. 확실히 이겼다고 할 정도는 아닌데 우세를 더 확보하기 위한 수보다는 현재의 우세를 지키는 수를 두고 있다.
흑 107이 날카롭다. 유창혁 9단은 “몇 번의 실수가 있었지만 지금은 일류프로처럼 두고 있다”며 “107과 같은 수는 이세돌 9단이 평소 즐겨두는 수”라고 말했다.
○ 10보(91~100)

흑이 91로 칼을 뽑았다. 알파고의 공격이 시작된 것. 부분 수읽기가 강하다고 알려진 알파고의 실력을 제대로 가늠해볼 시점이다.

유창혁 9단은 “감각적 대목에는 약간 문제가 있는 듯 하지만 부분 수읽기는 역시 강하다”고 진단한다. 처음부터 감각 이상으로 잘못된 길로 접어들지 않는 한 실수가 없다는 것이다.

상변 흑 97 때가 어려운데 이세돌 9단은 상변 백 한 점을 살리지 않고 백 98로 중앙으로 달아나며 타협을 택한다. 아직 자신이 유리하다고 보는 것. 이어 백 100으로 두텁게 두며 중앙을 정리한다. 이세돌 9단이 돌부처 이창호 9단처럼 두는 장면이다.
○ 9보(80~90)

이세돌 9단이 드디어 상변을 뛰어들었다. 백 80. 이 돌이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중반의 골격을 결정지을 듯 하다. 그런데 흑 81이 아마 이 9단의 머리 속에 없던 수. 유창혁 9단은 인공지능이 이런 수를 둔다는 것이 놀랍다고 감탄한다. 그냥 백을 몰아가면 불리할 것으로 보이니까 멀리서 포위하며 크게 공격하겠다는 뜻이다. 일류급 프로만이 가질 수 있는 안목이라는 것이다. 어려운 장면이 계속 되고 있다.

이세돌 9단은 평소 타개에선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기사다. 이 바둑에서 상변 타개 역시 평소같으면 자신있게 둘텐데 지금은 조심에 조심을 거듭하고 있다. 그만큼 알파고의 부분 수읽기가 뛰어난 것을 의식하고 있다.

지금 백 집은 50집, 흑 집도 50여집 남짓이어서 여전히 덤을 낼 수 없는 상황. 그래서 흑(알파고)도 상변 백 말 공격을 통해 성과를 내지 않으면 안된다.

백 90까지 좌변에서 알파고(흑)가 선수를 한 뒤 이젠 백을 공격할 태세다.
○ 8보(69~79)

이세돌 9단은 형세가 확실히 유리하다고 보고 있다. 중앙 공격은 도외시하고 실리를 챙기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그는 적어도 오늘은 기세의 승부사가 아니다. 해설자들 역시 호의적 평가를 주지는 않고 있다. 아무리 유리하다 해도 공격할 건 공격해야 한다는 것이다. 너무 알사범(알파고의 별명)을 의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세돌이 여러번 공격을 참자 알사범의 흑 73이 참 좋은 수가 됐다. 백 74로 급소를 찔러간 수가 여전히 아프지만 흑 73이 오기 전보단 아픔이 덜하다는 평가다. 지금은 상변 흑 집을 얼마나 지울 수 있느냐가 승부의 관건이다. 형세가 이세돌 9단에게 나쁘진 않은데 좋은 기회를 놓친 것이 어딘지 기분 좋지 않다는 유창혁 9단의 설명이다.

지금은 상변 흑 진으로 쳐들어가 가야할 시점. 백은 78, 흑 79를 교환하고 생각에 골몰하고 있다.
○ 7보(61~68)

백이 유리해진 것은 분명하다. 좌하귀에서 실패한 알사범(알파고의 별명)은 흑 61로 응수를 묻는다. 이세돌 9단이 반발하면 싸움이 커지는데 이 9단은 백 62로 다시 한번 꾹 참는다.

확실히 어제의 학습 효과가 있다. 참고 기다리다가 알파고의 실수가 나오면 응징한다는 것이다. 오늘은 일단 좌하귀에서 그런 효과를 봤다. 흑 63에도 백이 중앙 흑을 공격하면 기분이 좋을 텐데도 백 64로 또 참는다.

기세하면 이세돌인데 오늘은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며 유창혁 9단은 웃는다.

흑이 65로 젖히자 또 받는다. 유창혁 9단은 “여기는 전혀 받고 싶지 않은 곳인데…”라며 말끝을 흐릴 정도다. 과거 이창호 9단이형세가 유리할 때 두는 모습처럼 두고 있다. 이세돌 9단은 원래 이창호 9단과 전혀 기풍이 반대인데 오늘만큼은 이창호 기풍처럼 두고 있다.

알사범은 이곳 저곳을 선수(?) 처리한 뒤 흑 67로 상변을 지킨다. 중앙이 굉장히 엷지만 상변을 빼앗기면 희망이 없다고 보고 이곳 먼저 지킨 것. 확실히 알사범이 전체를 보는 시야는 좋다. 그럼 이제 이세돌 9단의 장기인 공격이 발휘될 때인데, 지금까지 두는 스타일을 보면 과연 공격을 가겠느냐는 지적이다.

집을 세보면 상변 흑 집이 40집이 나면 계가. 역시 이 9단은 공격을 하지 않고 백 68로 정말 두터운 자리를 두어간다. 아, 이세돌의 옛 모습은 사라지고알파고를 이기기 위한 전략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이 9단이 이기면 이 수들은 다 두터운 수가 되고 지면 발 느린 수가 된다.
○ 6보(49~60)

좌하귀 싸움에서 이세돌 9단은 확신을 가진 듯 거의 노타임으로 일관하고 있다. 흑 51에 대해서도 백 52로 단수치는 수를 두는 손길이 힘차다.

유창혁 9단도 “이세돌 9단이 좋은 흐름을 탔다”며 “이 변화에서 백이 유리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러나 유 9단은 “알파고가 실수했다 해도 방심해선 안된다”며 “어제도 알파고의 실수로 유리해진 뒤 마음이 풀어져 실착이 잦았다”고 말했다.

어쨌든 좌하 변화는 알파고의 무리수를 이 9단이 적절히 응징하고 있다. 이현욱 8단도 “흑이 어떤 변화로 가도 백이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알파고의 종잡을 수 없는 실력에 해설은 하는 유창혁 9단, 이현욱 8단도 대략 난감한 표정. 이세돌 9단은 이곳의 변화를 이미 예상하고 있다. 알파고가 둘 때마다 계속 시간을 들이지 않고 즉시 응수하고 있다.

60수까지 좌하 변화가 일단락됐는데 반면 승부, 즉 흑이 덤 7집반을 낼 수 없는 상태라고 한다. 프로끼리의 대국에서 이 정도 차이가 나면 승부가 벌써 끝났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인데 어제 알사범(알파고의 별명)이 보여준 괴력을 감안할 때 아직 속단은 이르다는 것이다.

5보(38~48)

이세돌 9단이 15분 정도의 장고 끝에 백 38로 밀어올렸다. 흑이 어깨 짚은 수(37)의 밑으로 받을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했지만 위로 민 것이 전투적 자세라는 평.

이때 알사범(알파고의 별명)이 드디어 도전장을 내밀었다. 흑 41은 보통 백 42와 교환돼 악수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시각으론 당연히 둘 수 없는 수. 그런데 알사범은 흑 43으로 좌하 흑 두 점을 이어 전투를 원하고 있다. 이런 대목은 인간의 수법에는 없는 방법이니까 스스로 학습한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현욱 8단은 인간 생각이라고 전제하면서 “지금부터 파생되는 몇 가지 변화들을 살피면 흑이 유리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세돌 9단도 이제 맞받아치지 않을 수 없다.

더 이상 물러서는 건 자존심 상 허락하지 않는다. 국면은 점차 복잡한 장면으로 흘러가고 있다. 백 46에 알사범은 흑 47을 노타임으로 둔다. 이를 본 이 9단은 고개를 갸웃거린다. “이건 안되는 수인데 왜 이렇게 두지”하는 표정이다. 그러더니 바로 백 48로 나가 끊는다.
○ 4보(32~37)

오늘 바둑은 어제와는 정반대다. 이세돌 9단이 어제는 초반부터 오버페이스 하듯 전투적인 수를 많이 뒀는데 오늘은 두텁고 침착한 수를 두고 있다는 것. 그러나 유창혁 9단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하변에서 흑이 이상한 수를 뒀는데 그를 제대로 응징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백이 불리하다고 보긴 힘들다고 덧붙였다. 조금 더 좋아질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세돌 9단이 잠시 자리를 비울 때 알사범(알파고의 별명)의 신수가 또 나왔다. 흑 37. 이런 형태에서 어깨 짚는 것은 처음 본다는 설명이다. 좌변 백 집을 굳혀줘서 두기 싫은 수인데 알사범은 어제에 이어 이런 수에 대한 결단이 빠르다. 부분적으로 본다면손해인데 전체적으론 나쁘지 않을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어제 알사범이 이기자 알사범의 수를 이해하려는 분위기가 강하다.

유창혁 9단은 “어제 대국 중에 좀 이상하다고 봤던 수들이 나중에 찬찬히 검토하니 나름 의미가 있었다”며 “그런 게 알파고의 능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현욱 사범도 “인간 바둑계에선 이해하기 힘든 수들이 오늘도 자주 나온다”고 말했다.

흑 37의 의외의 수에 이 9단이 장고를 하고 있다.

오늘 바둑에서 이 9단은 초반부터 시간을 많이 쓰고 있다. 알파고보다 15분 가까이 많이 사용했다. 어제 초반에 빨리 두다가 일격을 맞은 게 역시 의식이 되는 것 같다. 이 9단의 장고가 10분을 넘어서고 있다.

보통 이세돌 9단은 발빠르게 두고 상대가 공격해 오면 맞받아치는 스타일인데 오늘은 두터움으로 일관하고 있다.


3보(21~31)


알파고는 세팅이 돼 있는지 한 수를 1분 안팎에 둔다. 어려운 장면이나 쉬운 장면이나 마찬가지. 어제도 똑같았고 알파고가 제한시간을 5분 남긴 채 끝났다.

좌하귀 정석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세돌 9단은 두터움을 중시하는 정석을 택했다. 어제 초반 전투에서 알파고의 강력함을 깨달았기 때문에 오늘은 신중한 선택을 하고 있다.

이현욱 사범은 “어제 알사범이 보여준 장점은 탁월한 균형감각으로 부분 전투에서 손해보더라도 결국 전쟁에서 승리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알사범은 프로기사들이 알파고에 붙여준 별명.

흑 29가 호수. 유창혁 9단은 이세돌 9단이 여기를 먼저 차지하는 방법을 연구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좌하 정석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얘기다. 두텁긴 한데 흑 29가 오니까 빛이 바랜 느낌이라는 것. 백 30으로 좌변을 지키고 흑도 31로 좌상을 지켜 포석이 거의 일단락되고 있다. 어제 초반 전투와 달리 오늘은 너무 차분하다.


2보 (10~20)


알파고의 흑 13이 처음 보는 수. 보통 흑 11, 백 12를 교환한 뒤에는 하변을 벌리는 것이 보통이다. 만약 13으로 가려면 흑 11, 백 12를 교환하지 않는 것이 상식적이다. 하지만 알파고는 인간의 상식을 넘어서고 있다. 흑 15도 의외의 수. 이렇게 들여다보는 수는 프로바둑에선 맛을 없앤다고 해서 악수로 평가받는다.

유창혁 9단은 “흑 13, 15를 보면 알파고가 약한 것 아니냐는 느낌이 드는데 어제 대국도 그렇지만 이런 수들로 인해 약하다고 방심해선 안된다”고 설명했다.

백으로선 16로 잇는 것은 당연. 알파고 흑 17의 좌하 정석도 옛 버전이다.

사이버오로 해설을 하는 이현욱 8단은 “프로기사들은 알파고를 알사범으로 부른다”며 “알 사범이 오늘도 이긴다면 기존에 프로기사들이 알고 잇는 이론을 전부 다시 써야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알파고는 오늘도 예측하기 힘든 수들을 계속 두고 있다. 최근 바둑계 경향으로 보면 어딘지 어설픈 수들인데 이 9단은 손이 빨리 나오고 있지 않다. 어제 빨리 두다가 당한 경험이 있어서 일 것이라는 유창혁 9단의 분석.

1보(1~10)

대국은 오후 1시 정각에 시작됐다. 이세돌 9단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짙은 감색 양복에 하늘색 와이셔츠를 입었다. 이 9단이 평소 즐겨입는 옷이다.

알파고는 첫수를 우상귀 화점에 뒀다. 알파고는 지난해 10월 판후이 2단 대결 5번을 비롯해 어제 1국까지 첫수는 무조건 화점에 뒀다. 이는 소목 등 다른 곳보단 가장 변화가 적기 때문. 초반이 약한 알파고로선 화점을 최적의 선택으로 판단한 것이다.

이 9단은 좌하귀 화점에 뒀고 이어 알파고는 좌상 소목, 이 9단도 우하 소목으로 뒀다. 혹시 이 9단이 흉내바둑을 염두에 두고 있는 건 아닌지 싶을 정도로 똑같은 모양이다.

해설을 맡은 유창혁 9단은 “어제 이세돌 9단이 평소보다 많이 흔들렸다”며 “컴퓨터라는 걸 염두에 두지 않고 자신의 바둑을 두는 게 좋다”고 말했다. 유 9단은 “그동안 알파고 같은 컴퓨터 프로그램은 초반 약하고 수읽기가 강하다는 평가였는데 어제는 오히려 초반이 강하고 사활에서 살짝 실수하는 모습이어서 예측과는 많이 달랐다”며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백 10까지 진행된 포석은 90년대 초반 유행했던 포석. 알파고의 포석이 옛날 모양이 많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백을 잡은 이세돌 9단은 일단 흑이 하자는 대로 받아주고 있다.

백 10을 둘 때 해설장에 이세돌 9단의 부인 김현진 씨(33)과 딸 혜림 양(10)이 등장해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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