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은 바둑의 아름다움을 택했다. 알파고와의 마지막 대국인 5국에서 이기기 위한 바둑이 아닌, 그만의 바둑을 들고 나온 것이다.
주위의 많은 바둑계 인사들은 최종국에서 4국처럼 복잡한 난전을 이끌어 알파고의 실수를 유도하라고 조언했다. 4국에서 알파고는 이 9단의 묘수(백 78)을 당한 뒤 갑자기 난조에 빠졌다. 이는 형세판단과 끝내기가 강한 알파고를 상대로 한 유일한 승리공식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 9단은 1, 3, 5의 소목 굳히기 포석을 쓰며 난전 대신 실리를 차지하는 방향으로 나갔다. 계산 바둑. 상대가 가장 잘하는 전법으로 이겨보겠다는 뜻이었다. 그가 백일 때 잘 두는 알파고를 상대로 흑을 잡은 것과 마찬가지 발상이었다.
초반은 이 9단이 순풍에 돛단 듯 나아갔다. 특히 우하에서 40집 가까운 대가(大家)를 만들며 실리에서 훨씬 앞서갔다. 대신 알파고는 우변과 상변에 튼튼한 세력을 만들며 버텼다.
그런데 초반 많은 실리를 확보한 게 독이 됐을까. 상변에서 흑 돌을 살리기 위해 지나치게 웅크린(흑 79) 탓에 박빙의 형세가 됐다. 흑 79는 백 80의 곳으로 뻗었으면 중앙 백 진이 실전처럼 커지지 않을 수 있었다. 고근태 9단은 “80의 곳에 둬도 상변 흑은 크게 공격당할 말이 아니었다”고 했다.
알파고는 4국 때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4국에서 예상하지 못한 수를 당한 뒤 초보자나 하는 실수를 연발했던 것과 달리 이날은 정상급 프로기사의 행마처럼 매끄러운 수를 연달아 선보였다.
이 9단이 대국 뒤 가장 아쉬워했던 수는 흑 147. 이 9단은 이 수를 가볍게 선수하고 154의 곳을 이으려고 했으나 알파고가 역으로 선수를 잡은 뒤 154를 둬 좌하 중앙에 졸지에 20여 집의 백 집이 생겨버렸다.
이 9단은 이후 흑 169 등으로 좌하 중앙 백 집에서 수를 내려고 했으나 알파고는 적절히 대응하며 바꿔치기를 해 우세를 지켰다.
이후 이 9단은 초읽기에 몰리면서도 여기저기서 형세 역전을 위해 노력했으나 한번 계산을 마친 알파고의 끝내기는 ‘명불허전’이었다. 알파고는 백 236 등 가끔 인간의 시각에선 불필요한 수를 두는 ‘옥의 티’를 보였으나 승부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이날 유튜브를 통해 5시간의 혈투를 공개 해설한 김성룡 9단은 “다섯 번의 대국 중 이 9단이 가장 잘 둔, 가장 멋있는 대국”이라며 “승리에 집착하지 않고 상대의 장기인 형세판단과 끝내기를 통해 이기려고 한 이 9단의 도전이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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