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의 아버지 이수오 씨는 어린 시절 주위 사람들에게 이렇게 장담하고 다녔다. 그 예상은 맞았다. 그러나 이 씨는 그 모습을 보진 못했다.
이 9단은 1983년 전남 신안군 비금도에서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위로 큰누나 상희, 큰형 상훈, 둘째 누나 세나, 둘째 형 차돌이 있었다.
아버지 이 씨는 교대 졸업 후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하다가 고향으로 내려가 농사를 지었다. 아마 5단 실력인 그는 자녀들에게 바둑을 가르쳤다. 상훈이 기재(棋才)가 있어 서울로 유학을 보냈고, 6세 때 처음 바둑돌을 잡은 세돌은 곧 형 차돌을 뛰어넘었다. 차돌은 이후 공부로 전향해(?) 나중에 서울대 컴퓨터공학과에 들어갔다. 두 누나는 모두 이화여대 국문과를 졸업했고 세나는 현재 한국기원 공식 월간지인 월간바둑 편집장으로 일하고 있다. 바둑을 좋아한 아버지 덕에 프로기사가 된 상훈 세돌 외에 나머지 형제들도 모두 아마 3∼5단 실력이다. 상훈과 세돌은 2000년 신예10걸전에서 동시에 결승에 올라 상훈이 2-1로 승리했다. 형제끼리 최초이자 마지막 결승전이었다.
세돌은 9세 때 서울로 상경해 권갑룡 사범 도장에 들어갔다. 당시 형 상훈은 16세 때 입단한 상태였고 함께 서울에서 지냈다.
세돌은 12세 때 입단해 조훈현(9세), 이창호 9단(11세)에 이어 세 번째 최연소 입단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같이 살던 형 상훈이 입대하면서 돌봐줄 사람이 없어지며 방황했고 스트레스로 실어증에 걸릴 정도였다. 그 여파로 기관지염을 심하게 앓게 된 뒤 그의 목소리는 지금처럼 가늘어졌다.
더구나 16세 때 그의 정신적 지주인 아버지 가 별세했다. 그는 이때부터 정신을 차렸다. 2000년 32연승을 거둬 ‘불패소년’으로 불리며 정상급 기사 반열에 올라섰다. 2002년 후지쓰배에서 세계대회 첫 우승을 이끌었고 2003년 LG배에선 이창호 9단을 꺾고 3승 1패로 우승컵을 안았다.
그러나 2009년 중국리그 대국료 일부를 나누는 문제로 동료 기사들과 갈등을 빚자 이 9단은 사상 초유의 휴직을 결정했다. 그는 6개월이 지나고 복귀한 뒤 24연승을 거두며 녹슬지 않은 기량을 과시했다. 그는 2014년에는 라이벌인 중국 구리 9단과의 10번기에서 승리하는 등 승부사의 면모를 여지없이 보여줬다.
그는 지금까지 18번의 세계대회 우승과 30여 차례의 국내 대회 우승을 하며 10년 넘게 세계 정상을 지키고 있다. 국수전에서도 2007, 2008년 두 차례 우승한 바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