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세돌 9단과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의 1주일간의 혈투는 꿈과 같았다. 인간이 기계에 졌다는 좌절감, 그리고 기계가 너무 강하다는 두려움이 세상을 휩쓸 때 오직 1명만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승부사 이 9단은 4국에서 투혼의 승리를 보여주며 온 국민을 감동시키는 대반전을 만들었다. 이 9단은 그 일주일을 어떻게 보냈을까. 그가 생각하는 1∼5국의 승부처와 승패에 얽힌 뒷얘기를 다섯 번에 걸쳐 싣는다. 》
알파고와의 대국 이틀 전인 7일 명인전 우승 시상식에서 나는 “한 판이라도 지면 나의 패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만큼 알파고를 몰랐다.
내가 1국에서 패한 뒤 밖에서는 ‘정보 비대칭에 따른 불공정’ 얘기가 나왔다. 내 기보는 모두 알파고가 알고 있는데 알파고의 실력을 알 수 있는 기보는 내가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이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일반 대회에서도 전혀 몰랐던 신예 기사와 맞붙을 때는 그 기사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둔다. 그래서 뜻밖에 강한 신예를 만나면 질 때도 있는 법이다.
지난해 10월 알파고가 판후이 2단과 둔 기보는 봤다. 여러 번 얘기했듯 그때 알파고는 분명 나의 적수가 아니었다. 하지만 평소에도 기보만으로는 상대를 파악할 수 없다는 게 지론이다. 실제 대국을 두면서 느끼는 수많은 무형의 정보는 기보로는 알기 힘들기 때문이다.
알파고는 인공지능, 기계이지만 나름대로 두는 방식이 있었다. 1국에서 알파고는 인간이 이해하기 어려운 수를 몇 번 뒀다. 대국 전 그런 수들을 기보에서 봤다면 아마 알파고의 실력이 훨씬 떨어진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크다. 어쨌든 정보 비대칭은 변명밖에 안 된다. 모름지기 승부사는 그런 걸 뚫고 나갈 수 있어야 한다.
1국에선 초반에 실패해 내가 유리한 순간이 없었다. 하지만 많이 쫓아가 격차를 좁힌 적은 있었다. 좌하에서 큰 집을 만들었을 때이다. 알려지지 않은 얘기지만 대국이 끝난 뒤 구글 측에 좌하 쪽에서 알파고의 행마는 ‘버그’ 수준이었다고 얘기해줬다.
흔히 알파고의 승착이라고 하는 우변 백 1(실전 102)은 대국이 만만치 않은 승부로 바뀌었다는 점을 입증한다. 알파고가 이런 식의 과감한 수를 던지는 것은 온건한 방식으로는 이기기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백 1이 오기 전에 ‘가’로 먼저 들여다봤으면 백 1의 파괴력이 줄었다는 게 나중 검토였지만 당시 알파고가 이런 수를 둘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이 수를 당해선 이기기 힘들었다. 마지막 우하귀 처리에서 실리를 빼앗긴 것도 실수지만 그땐 제대로 뒀어도 한 집 반 또는 반집 정도 불리했다.
알파고는 이상한 수를 두다가도 정확한 타이밍에 승부수를 던지는 힘이 있었다. 1국은 졌어도 큰 아쉬움은 없었다. 몰라서 졌고, 오판해서 졌고, 초반 근접전에서 실패해서 졌다. 예상 밖으로 진 것 자체는 충격이었지만 인간끼리의 승부에서도 그런 일은 비일비재하니까. 오히려 2국을 정신 차리고 둘 수 있는 보약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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