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하변 단수 칠 절호의 기회 놓쳐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9일 03시 00분


[이세돌이 복기한 알파고와의 일주일]<2>“경솔했던 2국”

1국을 놓친 뒤 많은 상념이 떠올랐다. 프로 기사의 대국에선 볼 수 없는 이상한 수와 프로 정상급의 수를 번갈아 두는 알파고의 습성이 명확하게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다’고 느껴지는 수를 나쁜 수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알파고가 수마다 승리 확률을 계산해 착수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나름의 의미를 담고 있다고 봤다.

1국 때와 마찬가지로 딸 혜림이와 같이 대국장에 들어섰다. 딸과 있는 동안은 마음이 편했다. 그러나 대국이 진행될 때의 긴장감은 여전했다.

내가 백번인 2국에서도 초반 흑의 이상한 수(○)와 좋은 감각으로 칭찬받은 수(○)가 나왔다. 나는 1국 때의 경험을 살려가면서 알파고의 수법이 어떤지 파악하려고 했다. 흑 ○를 보면서 어렴풋이 알파고가 복잡해질 수 있는 모양을 꺼린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흑을 든 알파고가 포석 끝 무렵 좌하 쪽에서 적극적으로 나왔다. 알파고가 흑일 경우 48%의 승률로 출발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승률을 높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둘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알파고의 작전이 무리해 우세를 차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봤다. 그런데 기분이 좋은 나머지 내 바둑이 느슨해졌다. 백 1로 그냥 나가서 끊은 게 실전인데 이것이 문제였다. 먼저 ‘가’로 단수치고 나가야 했다.

내가 ‘가’의 단수를 생각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충분한 수읽기를 하지 않고 실전 모양이 좋다고 쉽게 단정했던 게 경솔했다.

개인적으론 여기서 승부가 갈렸다고 본다. 다른 프로 기사들은 아직도 백이 유리하다고 했지만 나는 확실히 유리해질 수 있는 상황에서 거의 이득을 보지 못했다는 점에서 흐름이 상대에게 넘어갔다고 본다.

이후 중반과 종반에 더욱 정교해지는 알파고의 수읽기는 대단했다. 마지막에 우상에서 왜 패를 안 했느냐고 밖에서는 의혹을 제기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하지만 의미 없는 얘기다. 패를 해도 승부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링에 오르지 않은 사람들은 링 위의 상황을 모른다.

문제는 2국마저 진 뒤 내가 너무 큰 압박감에 시달렸다는 점이다.
※ 바둑 용어

불계패(不計敗·resign)
한쪽이 불리해 끝까지 두지 않고 도중에 패배를 선언하는 것. 상대편은 불계승을 거두게 된다. 알파고가 4국에서 크게 불리해지자 화면에 ‘resigns’라는 표시를 올리며 돌을 던졌다.

돌가리기(choosing color)
덤을 주는 바둑일 때 누가 흑과 백을 잡을지 결정하는 것. 보통 한 기사가 백돌 여러 개를 손에 쥐고 다른 선수가 흑 돌 하나를
바둑판에 올려놓는다. 백돌이 홀수면 흑 돌을 올려놓은 선수가, 짝수면 백돌을 쥔 선수가 돌 색깔을 선택할 수 있다.

패(覇·pae)
흑백이 서로 단수된 상태에서 동형반복을 거듭하는 것. 알파고가 복잡한 패를 잘하지 못한다는 전망이 나왔으나 3국에서 알파고는 프로 수준의 패싸움을 보여줬다.

화점(花點·flower point)
바둑판 맨 모퉁이에서 각각 4번째 선이 만나는 곳으로 점이 찍혀 있다. 알파고는 첫 수로 늘 화점만 뒀다.

덤(compensation)
먼저 두는 흑이 유리하기 때문에 백에게 일정한 집을 주는 것. 한국은 6집 반, 중국은 7집 반이다. 이번 대결에선 중국 덤을 썼다.

복기(復棋·replay) 바둑이 끝난 뒤 어떤 수가 좋고 나빴는지 검토해보는 것. 이세돌 9단은 대국 상대와 복기를 열심히 하는 기사인데 알파고와는 복기를 할 수 없었다.

정리=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이세돌#알파고#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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