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强震’ 쇼크/허술한 대비 실태]만들어놓고 적극 홍보-훈련 안해
시민들 “그런게 있는줄도 몰랐다”… 정작 지진땐 먹통… 불안 더 키워
“재난대비 몸에 배게 반복 필요… 경각심 높아진 지금이 골든타임”
“대체 믿을 만한 지진 국민행동요령은 어디서 찾을 수 있는 거지?”
12일 관측 이래 최대 강진이 한반도를 강타하는 동안 놀란 국민은 우왕좌왕하며 먹통인 스마트폰만 붙잡고 서로에게 의지해야 했다. 부산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지윤 씨(34)는 “지진 발생 시 행동 요령을 읽어 본 적도, 지진 대비 훈련을 받아 본 적도 없다”며 “이렇게 ‘실전’에 갑자기 던져지니 당황스럽고 무서웠다”고 말했다.
올 들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규모 3.0 이상의 지진은 현재(13일 오후 3시 기준)까지 총 31회. 이번 지진이 일어나기 전까지 14회에 이른다. 한반도가 더는 지진 안전지대가 아닌데도 지진 재난에 대응하는 국민의 준비는 ‘0’에 가까운 수준이다. 일반적으로 재난이 일어날 때마다 ‘매뉴얼’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전문가들은 “매뉴얼이 없는 게 문제가 아니라, 매뉴얼만 있고 행동이 없는 게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실제 훈련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안전처는 지진 발생 시 국민행동요령을 홈페이지(www.mpss.go.kr)와 국민재난안전포털(www.safekorea.go.kr) 등에 공개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대부분의 국민이 이 사실을 모르고 있거나, 알더라도 평소에 자발적으로 접속해서 읽어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민안전처가 주관해 5월 16일부터 20일까지 시행한 올해 안전한국훈련에는 울산과 같은 동해안 지역을 비롯해 일부에서만 지진해일 대비 훈련을 했을 뿐 전국적인 지진 대피 훈련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나마 매뉴얼을 볼 수 있는 국민안전처 홈페이지는 12일 지진 이후 먹통이 되면서 원성을 사기도 했다.
방재 전문가들은 재난이 벌어지기 전에 매뉴얼을 숙지할 수 있도록 전 국민이 참여하는 대피 훈련을 철저하게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기환 전 소방방재청장은 “손에 쥐여 주고 입에 떠먹여 줘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이 재난 대비 훈련”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재난 대비는 무조건 몸에 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이라며 “실제 큰 지진이 발생해 경각심이 높은 지금이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했다.
구식 방재 훈련에서 벗어나 국민의 참여를 늘릴 수 있도록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가상현실(VR) 체험이나 TV 공익광고, 재난을 현실적으로 다룬 영화 등 많은 사람이 흥미를 가지고 자발적으로 참여할 만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인의 경우 어린아이들에 비해 지진 대피 교육을 받은 비율이 더 낮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4월 재직자·구직자 92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진 대처 교육을 받아 본 응답자는 전체의 절반도 되지 않는 것(46.3%)으로 나타났다.
부산대 정진환 지진방재연구센터장은 ”스마트폰 시대에 맞춰 사고가 발생할 경우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모바일 매뉴얼을 평상시에 정부 차원에서 미리 보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재는 2002년 우리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든 태풍 루사 당시처럼 전력이 끊어지거나 통신 중계탑이 무너지면 정부 차원의 대응 방법이 사실상 전무한 상황이다.
한편 전문가들은 전국 통합 매뉴얼의 내용 자체는 어느 정도 필요한 구성이 갖춰져 있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다만 매뉴얼 자체가 지진이 많이 발생하는 일본을 벤치마킹했고 10여 년 전에 만들어져 최근 상황에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게 문제다.
서울시립대 권기혁 교수는 “현재 지나치게 혼란스러운 매뉴얼을 직관적이고도 구체적인 문구로 다듬고, 아파트나 동 주민센터 등에서 손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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