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말 이탈리아 중부 산간지역에서 규모 6.2의 지진이 발생해 30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슬픔은 이탈리아 전체를 뒤덮었지만 피해 규모는 지역별로 갈렸다. 진앙에서 20km 떨어진 아마트리체는 마을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반면 진앙에서 17km 떨어진 노르차는 일부 건물이 금 간 것을 빼면 멀쩡했다.
결정적인 차이는 내진설계였다. 노르차는 과거 두 차례 지진을 겪은 후 모든 건물에 내진설계를 적용했고, 공사 과정에서 철저한 관리 감독이 이뤄졌다. 하지만 아마트리체는 건물 대부분이 내진설계가 적용되지 않았고, 심지어 부실시공으로 피해를 키운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에서 지진이 발생하면 어떤 모습일까. 노르차를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다. 6월 국민안전처가 실시한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서울을 지나는 남북단층이 있는 중랑교를 진앙으로 설정했을 때 규모 6.0의 지진에는 서울시민 1433명, 규모 6.5의 경우엔 1만2778명이 숨지는 것으로 예측됐다.
이는 1988년에야 내진설계 기준이 도입되면서 이전에 지어진 건물 대부분이 지진에 무방비 상태이기 때문이다. 내진설계 의무대상 건물도 안심하기는 이르다. 동아일보가 내진설계 및 시공 현장을 취재한 결과 구조설계 비전문가가 내진설계를 맡거나, 설계대로 시공되지 않은 사례가 적잖은 것으로 파악됐다. ▶본보 4일자 A1·3면 참조
‘설마 우리나라에 지진이 날까’라는 생각에 내진설계에 관심을 두지 않은 탓이다.
이 때문에 내진설계 의무 대상만 확대할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내진설계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누가 내진설계를 맡을지에 대한 해묵은 논쟁도 해결해야 한다. 현재는 지상 6층 이상은 구조기술사가, 5층 이하는 건축사가 주로 내진설계를 맡는다. 하지만 5층 이하이지만 지하로 깊이 파내려간 건물, 1층은 비우고 기둥만 배치한 건물 등 구조가 복잡한 건물은 누가 맡아야 할지 애매하다. 층수보다는 내진설계의 복잡성에 따른 기준이 필요하다.
과거처럼 ‘허위 내진설계확인서’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도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 시공 과정에서도 무자격자 시공, 부실 자재 반입 등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모니터링할 필요가 있다.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4일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구조안전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건축구조기술사의 협력 범위 및 등록 건설업체의 시공 범위에 대해 관련 업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확대 여부를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아마트리체가 되느냐 노르차가 되느냐는 지금부터 우리의 노력에 달려 있다. 이제라도 내진설계의 재설계를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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