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몇 시군이 추진하는 대표적인 전략 사업이다. 전북 무주군은 해발 420m의 향로산 정상에 아파트 12층 높이의 태권브이 로봇 조형물을 구상하고 있다. 예산만 72억 원을 잡았다. 전남 신안군은 189kg의 황금을 사들여 바둑판을 만들려고 한다. 예산만 110억 원이 들어가는데, 바둑기사 이세돌을 배출한 고장이라서 추진한다. 이순신 장군을 놓고는 삼파전이 벌어졌다. 경남 창원시와 통영시, 전남 광양시는 모두 동상이나 타워를 만들겠단다. 창원시는 200억 원을 들여 높이 100m의 ‘이순신 장군 타워’ 건립을 구상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대형 상징물을 탐내는 이유는 뭘까. 대체로 비슷하다. 관광 등으로 지역 경제를 살리려는 취지다. 지난해 고령사회로 진입해 인구가 더 줄어들 수밖에 없는 시군은 그야말로 절박하다. 그렇더라도 혈세가 들어가니 사업성은 꼼꼼히 따져야 한다. 창원시의 한 의원은 상임위원회에서 “환경등급평가 1, 2급이 나오면 못 하나 못 꽂는다. 그런데 100m짜리를 이렇게 설치하겠다는 것이 맞는 건지…”라며 말끝을 흐렸다.
지역 여론은 어떨까. 23일 창원시 진해종합복지관에서 열린 ‘이순신 타워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 “타워 예정지에서 바다를 보면 조선소만 눈에 들어온다.” “효과 검증 절차 없이 사업을 하려는 것 같다.” 비난 여론에 떠밀려 슬그머니 거둬들인 사례도 있다. 월미도 바다 앞에 대형 사이다병 조형물을 설치하려던 인천시는 이를 철회했다.
대형 상징물은 그만한 값어치를 해낼까. 충북 괴산군은 2005년 영국 기네스북에 올리겠다며 5억 원을 들여 지름 5.68m의 초대형 가마솥을 만들었다. 하지만 호주의 질그릇이 더 큰 것으로 확인되면서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흑역사가 있다. 가마솥은 옥수수 삶기, 팥죽 끓이기 등 단발성 행사에 동원됐으나 2007년부터는 이마저도 중단돼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3대 악성 중 한 명인 박연의 고향인 충북 영동군은 2010년 7t짜리 대형 북을 만들었으나 임시보관소에서 수년 동안 방치했다.
왜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것일까. 일단 구상 단계부터 사업성을 꼼꼼히 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술관을 짓는다면 어떤 작가들의 그림과 조각, 설치물을 전시할지 철저하게 따져야 한다. 일정 수준 이상의 방문객을 확보하려면 지역에서 평소 미술관을 찾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도 계산해야 한다. 텅 빈 지자체 미술관, 공연장도 흔하다. 이런 구체적인 조사를 하지 않고 짧은 기간에 눈에 보이는 성과물을 내려고 하니 손쉽게 거대 시설물만 떠올린다. 흉물로 방치되면 관리 예산만 더 들어갈 판이다.
유형보다는 무형 자산이 더 큰 파급력을 지닌 시대에 살고 있다. 굳이 상징물을 만들겠다면 역사, 문화, 이야깃거리 등이 충실해야 빛을 볼 수 있다. 의견수렴이라도 제대로 거쳐야 하는데 보통 내부자들이 졸속으로 결정할 때가 많다. 경기 구리 용인 성남시, 충남 아산시, 경남 양산시 등에선 하수처리장이나 쓰레기소각장의 굴뚝을 고쳐 식당, 화랑 등을 갖춘 훌륭한 전망대로 꾸몄다. 꼭 새로 지어야 사람들이 찾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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